전근대적 왕정 분위기…‘건성건성’ 박수에 처형

[스페셜경제=박고은 기자]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칼부림이 다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집권 6년차에 접어든 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은 ‘공포정치’로 2012년 집권 기간 내내 측근 세력의 대규모 숙청과 무자비한 친족 살해 등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유일체제를 구축하고 고위층 인사들의 충성심을 유도,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40여명, 2015년 60여명으로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고위층 인사 외에 주민 수만 200여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꾸준한 ‘본보기식’ 숙청을 단행하면서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해 온 김 위원장은 올해 초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잠잠해졌다.


하지만 지난 2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국정감사를 통해 김 위원장이 숙청을 재개하고 있었음을 알렸다.


국정원의 ‘최근 북한 주요동향’ 보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간부들에 대한 동향감시 강화와 본보기식 숙청을 재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사 간부들이 미사일 발사 축하행사를 1면에 게재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혁명화 조치했고 평양 고사포부대 정치부장을 부패 혐의로 처형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혁명화 조치는 고위급 간부를 농촌이나 탄광 등 지방으로 좌천시켜 일정 기간 자숙 혹은 노역을 하게 한다. 혁명화 조치 이후 복귀도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실적을 내야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김정은의 쥐락펴락 혁명화 정치


본보기식 숙청 등으로 권력을 공고히 다져놓는 김 위원장은 본인에게 절대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툭하면 혁명화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정‧군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권력 핵심층까지 자기 손바닥 뒤집듯 하기 때문에 고위층 내부에서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위원장의 칼끝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살‧처형에 속하는 숙청과는 달리 절대 충성을 약속한다는 등 본인 노력 여부에 따라 복귀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김 위원장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북한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 집권 초기 2인자로 여겨졌음에도 2015년 한 때 백두산 발전소 붕괴 사고로 혁명화 조치를 당해 농장으로 쫓겨난 바 있다.


최룡해는 2개월 간의 혁명화 조치 이후 복귀, 김정남 암살 사건 전후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한민구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 “최룡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 있을 수 있다 보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한편에서는 중국의 보호를 받아온 김정남이 암살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중국 측에 설명을 하기 위해 출국했다는 관측도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원이 배포한 ‘북한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 특징 분석’ 보도자료를 보면 최룡해가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 추대 20주년 중앙경축대회’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되는 등 2인자로 자리매김한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김정남 암살 사건의 관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북한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평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무리하게 당 통전부 권한 확장을 추진하는 등 권력남용을 이유로 지난해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간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조치를 받았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인물로 대표적 강경파로 알려졌다. 때문에 당시 정부 관계자는 복귀 이후 충성심 등 실적을 보여야해 강경한 대남태도를 보일 것으로 우려됐다.


북한 한광상 전 당 재정경리부장은 김 위원장의 금고지기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핵심인물이었지만 2015년 3월 갑작스레 공식석상에서 보이지 않았다. 당시 국정원은 국회 보고에서 ‘비리혐의’ 등의 이유로 조사를 받다 자취를 감췄다고 밝혀 ‘숙청설’이 제기 됐지만 같은해 11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포함되고 김 위원장 공개활동을 수행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만 해도 계급이 소장이었지만 지난해 7월 노동신문에 실린 시찰사진을 보면 중장 계급의 군복을 입은 것이 확인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확실한 신임을 받아 군으로 보직 이동한 뒤 군 경제 관련 분야를 맡은 것으로 분석된다.


본인에 대한 반기로 보이지 않는 인물에 한해서 혁명화 조치를 하는 것은 언제든 처형할 수 있다는 경고성으로 절대적인 충성을 끌어내는 김정은의 정치 스타일로 보인다.


전근대적 왕정 분위기…‘건성건성’ 박수에 처형


하지만 대다수는 공식석상에서 사라진다면 다시 볼 수 없었다. 6·29 최고인민회의 당시 단상 밑에 앉아있었던 김용진 내각부총리는 자세 불량을 지적받은 것이 발단이 돼 보위부 조사를 받고 반당 반혁명분자와 현대판 종파 분자로 낙인찍혀서 지난해 7월 중에 총살이 집행됐다.


특히 고모부이자 정권의 사실상 2인자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은 김정은 체제의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13년 갑자기 공식석상에 보이지 않던 장성택은 특별군사재판 후 사형 당하게 됐다.


이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전복음모행위를 포함 김 위원장의 말에 건성건성 박수를 치거나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고 처형 이유를 밝혔다.


실제로 당시 북한발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의 연설을 듣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자유스러운 모습 또는 삐딱하게 앉아있는 모습, 김 위원장과의 시찰 중에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 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전근대적 왕정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운구차 옆을 지키던 7인방과 현영철, 이영호,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김 위원장의 최측근들도 사라져 다시 볼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에 환멸을 느껴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태영호 공사는 지난 1월 “고위층에 대한 감시 통제는 오히려 점점 세지고 있다”며 “김정은에 대해 엘리트는 ‘태양 곁에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리가면 얼어 죽는다’라는 심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태 공사가 밝힌 김 위원장의 공포정치는 단순한 공포 정치가 아닌 잘못도 하기 전에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체제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이다.


집권 6년 차에 접어든 김 위원장은 그 누구보다 빨리 당‧정‧군을 장악, 혁명화 조치와 숙청을 통해 본인의 위신을 확립하고 절대복종을 이끌어내고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이 다시 숙청을 시작하면서 태 공사와 같은 북한 고위층 인사들의 탈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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