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조선·해운업 바닥 쳤나?…中·日 위협 변수

▲ 심각한 '일감 부족' 문제에 직면한 한국 조선업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최근 잇단 대형 신규수주 성공으로 한국 조선업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 뒤엔 장기간 업황 불황에 따른 커다란 후유증이 도사린 상태다.


실제 국내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가 최근 대형수주 계약을 체결했거나 체결 예정이란 소식이 전해졌으나 수년 새 한국 조선업 현장의 근로자 4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양플랜트 사업 분야 대손실로 촉발된 한국 조선업 몰락은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수조원에 달하는 적자 기록을 동반하는 데 이른다.


조선업 특성상 새로운 수주계약 체결에도 실제 선박건조 작업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림에 따라 최근 심각한 ‘일감 부족’ 상황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미해결과 경쟁국인 중국·일본 조선업의 급성장 등이 한국 조선업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 상태다.


유관산업인 해운업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국내 1위 선사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후폭풍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 해운업체에 경쟁력 지표로 작용하는 ‘미주노선’ 점유율이 지난 1년 새 반 토막 났으며, 지금까지 총 1만 명 실직자와 3조 원의 운임 손실 등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업계를 중심으로 한국 해운업 살리기에 다양한 대책을 마련, 시행하고는 있지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올해 하반기 역시 조선·해운업계에선 고강도 구조조정이 한창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 ‘일감 부족’ 사태 심각…구조조정 지속
해운업 ‘한진해운’ 여파 여전…정부, 대책 마련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한국 조선업은 지난해 말부터 서서히 ‘수주 낭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상 유례 없는 ‘수주 절벽’에 신음하던 조선업이 바닥을 쳤다는 기대감도 번져나갔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지난해 실적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올해 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다만 대부분 자산매각 등으로 일군 ‘불황형 흑자’란 꼬리표는 따라붙었다.


영국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조선 발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 증가했다.


이를 호기로 삼은 한국 조선업은 올해 상반기 국내 조선소 수주량(6월 28일 기준) 256만CGT(표준화물선 환산 t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 발주량 가운데 총 34%를 기록, 5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을 되찾았다.


이 같은 배경에 국내 조선업의 탁월한 기술력이 지목됐으나 최근 중국 조선사가 잇달아 글로벌 대형수주를 가로채가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낙관론’이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SK증권 소속 안영진 연구원 등이 내놓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가 조선업에 미칠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엔 한국 조선업의 심각한 위협 요인이 담겼다.


특히 해당 보고서는 프랑스계 해운사 CMA CGM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중국 조선사들이 수주해 간 사실에 크게 주목했다.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 초대형 도크 완공…국내 업체, 난항 예고


▲ 지난해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한국 해운업 전반이 좀처럼 침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한국 조선사들은 지난 8월 초 CMA CGM이 발주한 2만2000TEU급 메가컨테이너선 9척에 대한 수주를 두고 중국 조선사들과의 수주 경쟁을 펼쳤지만 후동조선사 등 2곳의 중국 조선사들에 밀렸다.


결국 ‘기술력’을 앞세워 부활 조짐을 보이던 한국 조선업이 중국에 추월당한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번지기 시작한 이유다.


또한 중국은 자국의 조선·해운업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선주들에 자금조달을 100% 책임지고 있으며, CMA CGM 등 글로벌 선사가 중국 해운사와 같은 해운동맹에 속한 점 역시 강점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경쟁국인 일본의 거센 도전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앞서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는 지난달 초대형 도크를 완공, 최초로 2만TEU급 컨테이너선 건조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조선소는 2015년 자국 해운선사(2만TEU)와 세계 6위 규모 대만 에버그린으로부터 수주한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 등을 대상으로 건조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 같은 초대형 컨테이선용 도크를 직접 만들어 자국 발주 물량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정부 전폭적 지원 中·日, 교훈 삼아야”
금융권 주도 구조조정 “한진해운 사태 재현?”

한국 조선업체가 그간 일본으로부터 수주 받는 물량의 비중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번 일본의 초대형컨테이너선용 도크 건조에 따라 일본 수주가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일본은 자국 발주 물량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클락슨 분석결과 올해 8월 기준 일본 선주의 자국 발주 비중은 64%로 나타난 가운데, 한국은 55%에 불과했다.


이런 일본 조선업체 선전의 배경엔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손꼽힌다.


특히 지난 2015년 엔저 현상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업체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자금지원에 나서면서 잇달아 수주에 성공했다.


최근 일본은행이 경기부양책 지속 방침을 밝힘에 따라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약세를 이어가면서 전반적인 수출 전망이 밝다. 엔저 지속은 일본 수출 이익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일본 조선업계가 글로벌 수주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한국 조선업이 다음 세대 ‘블루오션’으로 지목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SK증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저유가 상황 지속과 수주 성공 시 인도지연 변수 등으로 한국 조선업체들의 피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내 조선업에선 이미 우려된 대로 ‘대량 실직’ 사태가 본격화했다. 1년 새 조선업 현장에서 떠난 사람이 4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 것이다.


최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조선업 근로자 수는 16만6277명으로, 이는 2015년 20만3513명 대비 무려 3만7236명이 줄어든 것이다.


해당 통계가 협회 회원사와 일부 비회원사 등을 집계한 것으로 미뤄 조선업을 그만둔 근로자 규모는 약 4만 명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새민중정당 김종훈 의원이 조선해양플랜트협회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서도 올해 상반기 조선업 근로자 중 2만7700명가량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빅3’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경우 5만2300명에서 3만6000명으로 1만6300명이 줄어들었고, 삼성중공업은 4만2400명에서 3만5800명으로 6600명 감소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3만5000명에서 3만200명으로 48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 한국 조선업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최근 들려오기 시작한 이유다.


다만 업계 우려와는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의 ‘조선·해운업 살리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등에 업은 국내 조선업은 올 하반기에도 고강도 구조조정 작업을 통한 위기 극복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파산한 당시 글로벌 선사 7위 한진해운의 영향으로 미친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에 따라 유일 국적 선사로 남게 된 현대상선이 세계시장에서 고군분투 중이지만,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오롯이 대체하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한진해운 공백…미주노선 점유율, 지난 1년 새 ‘반 토막’


▲ 금융권 주도 구조조정 반복에 한진해운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한진해운 파산 당시 줄기차게 지적된 정부 당국의 안일하고 미흡한 대처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우선 조선-해운업 상생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관련업계에선 이런 정부 방침이 자칫 산업은행 등 금융권이 주도한 구조조정 실패로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현대상선과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가 산업은행이라는 점과 지난해 한진중공업 역시 산업은행 주도 자율협약에 들어간 바 있다.


최근 현대상선이 컨테이너선 신조 발주를 하지 않고 대신 이미 인도가 취소된 한진중공업의 배를 맡게 된 점과 경영 악화에 따른 해외입찰 탈락의 고배를 마신 대우조선해양이 부채비율을 줄이기 이전 이미 선박 수주를 확정한 점 역시 이 같은 우려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부실한 기업들에 대한 근본적 체질개선 없이는 결국 정부 방침이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단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한진해운 사태 이후 산업은행은 여전히 국책은행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해운업 살리기’를 목표로 먼저 국적 14개 선사가 모인 한국해운연합을 지원하는 한편, 내년 6월 한국해양진흥공사를 부산에 설립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바다가 곧 국력”이라며 조선-해운업의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 등 상생 방안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선 좀 더 실질적이며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해운업 특성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종합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것이다.


이를 위해 업계에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확보 ▲선박 투자 주체 다양화 ▲선사-화주-조선 간 상생방안 ▲대통령 직속 해운산업발전위원회 설립 ▲세계 해운경기 예측을 위한 해운·조선관측센터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제공=뉴시스/ 현대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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