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호론 VS 사퇴론…뜨거운 감자 ‘재부상’

▲ 지난 2012년 5월 19일 탁현민 교수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문화제를 진행하던 중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각에 베어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여성 비하 및 왜곡된 성 인식 논란으로 야권의 거센 사퇴압박을 받았던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또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그릇된 성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야권은 물론 여당 일부 여성의원들로부터 거센 사퇴요구가 빗발치자, 탁 행정관은 ‘조만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혀 단숨에 사퇴론을 정리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발표와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청와대 전반적인 행사가 탁 행정관의 주도하에 기획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탁 행정관의 업무능력이 부각됐다. 탁 행정관의 청와대 행사 기획력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야권에선 다시 탁 행정관을 겨냥한 질타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기획력이 부각될수록 비난 여론도 함께 불거지는 등 ‘양날의 검’에 비유되고 있는 탁 행정관에 대해 살펴봤다


야권 단골 공세 대상 탁현민


靑 행사 기획력 부각‥능력자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기념하기 위해 토크쇼 형식으로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를 진행한 기획자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알려지면서 탁 행정관이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대국민 보고대회 다음날이었던 지난 21일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도덕적 타락자인 탁현민 행정관이 기획한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는 ‘그들만의 잔치’, ‘그들만의 예능쇼’나 다름없는 천박한 오락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문 대통령이 대국민 보고대회를 통해 ‘국민은 정당과 정책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지적하며 “탁현민이 연출하는 정치쇼를 통해 국민을 직접 통치하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전날(20일) 구두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쇼(Show)통’의 끝을 보았다”며 “시중에는 ‘탁현민 청와대’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니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와 관련해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이와 같이 ‘보여주기식 정치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함은 물론 이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탁 행정관을 겨냥했다.


부각되는 탁의 기획력 <왜>


문 대통령의 히말라야 트래킹에 동행하는 등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탁 행정관은 그동안 자신의 저서 ‘남자마음 설명서’, ‘말 할수록 자유로워지다’ 등을 통해 여성을 폄하하고 그릇된 성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야권은 당연하고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일부 여성 의원들조차 청와대에 ‘탁 행정관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정치권의 사퇴·해임 요구가 빗발치자, 탁 행정관은 지난달 18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청와대에 들어왔는데 문재인 정부에 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면서 “날짜까지 얘기할 수 없지만 조만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할 것”이라며 이른 시일에 사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탁 행정관이 본인이 직접 조만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할 것임을 밝힘에 따라, 탁 행정관에 대한 정치권의 사퇴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양상이었다.


다만, 청와대 생활 청산 발언 이후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탁 행정관의 업무능력이 부각됐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100대 국정과제 발표는 발표자가 무선 마이크를 차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스티브 잡스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탁 행정관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지난달 27일 진행됐던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도 탁 행정관의 작품이었으며, 지난 9일 ‘찾아가는 대통령’ 컨셉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 지난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광복절 행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및 세월호 유족 면담 등의 행사 기획도 탁 행정관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탁 행정관이 주도적으로 기획한 청와대 행사는 문 대통령에게 ‘탈(脫)권위적 행보’라는 호평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오찬에서 참석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감성을 건드릴 줄 아는 연출력


공연기획자 출신의 탁 행정관은 청와대 행사 때마다 관례를 깨는 파격과 감성을 자극하는 연출을 즐겨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탁 행정관은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방편으로 노래를 주로 이용하는데, 일례로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본 행사에 앞서 청와대 영빈관에는 가수 박효신의 ‘야생화’와 윤종신과 곽진언, 김필이 함께한 ‘지친하루’,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 정인의 ‘오르막길’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회견이 무겁고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며 “노래가사에 담긴 메시지가 국민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야생화는 지난 시간의 고통과 고난을 담담히 표현하고 새 희망에 대한 곡 ▶지친 하루는 옳은 길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믿는 걸 실천하는 삶이란 메시지 ▶걱정 말아요 그대는 국민들에게 걱정하지 마시라는 의미 ▶오르막길은 문 대통령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들었던 노래 등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20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는 인디밴드 데이브레이크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가 청와대 영빈관에 울려 퍼졌다. 축하공연이 시작되자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꽃길만 걷게 해줄 대상은 국민이라고 한다.


이처럼 탁 행정관은 으레 청와대 행사에서 울려 퍼지던 장엄하고 딱딱한 기존 음악이 아닌 가요에 의미를 부여해 감성을 건드리는 연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탁 행정관의 업무능력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면서 문 대통령 지지자 등 일각에서는 ‘탁 행정관의 기획능력이 출중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청와대에 근무해야 한다’는 취지의 옹호론이 확산되고 있다.


감성 자극 연출‥옹호론 확산


여가부 장관의 ‘무력감’ 고백


존재감 부각, 靑 의도?…야권, 사퇴론 재시동


탁 행정관의 기획 능력이 부각됨에 따라 탁 행정관을 옹호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으나, 이에 비례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야권의 비난 여론과 함께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야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탁 행정관의 기획 능력을 부각시켜 야당의 자진사퇴를 불식시킬 명분을 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이어 “(청와대 행사를 통해 탁 행정관의)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지지자들로 하여금 우호적 여론을 조성해 사퇴 요구를 불식시키려는 청와대의 노림수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울러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탁 행정관 해임 촉구에 재시동을 걸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업무보고 및 결산보고 전체회의를 보이콧하면서 해임 촉구 성명을 낸 것이다.


이날 여가위 업무보고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현백 여가부 장관이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약속한대로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탁 행정관 경질에 대해 구두로 의견을 전달했으나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나)자신이 좀 무력하다”며 무력감을 고백하자, 여가위 소속 임의자·김승희·이양수·윤종필 한국당 의원 등은 성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탁 행정관의 즉각 파면 계획과 의지를 밝히라”며 탁 행정관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들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놓고 비하한 여성혐오의 대명사 탁 행정관이 여론의 숱한 질타와 여성의원들의 수차례 지속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의 주요행사를 챙기고 있으며 청와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자칭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성평등 실현의 현주소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국민의당도 자유한국당과 궤를 같이 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을 통해 “어젯밤 탁현민 행정관은 (문 대통령에게)얼마나 칭찬 받았을까? 그는 이렇게 해서 버티는 걸까? 계속 버틸 수 있을까?”라고 비꼬았다.


오후 논평에서는 “국회와 국민의 뜻을 담아 직언한 장관이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면 이는 보통문제가 아니다”라며 “여성 장관 30%를 달성했다고 자랑했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문제 많은 탁 행정관은 누가 뭐래도 안고 가겠다는 것 아닌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여가부 장관의 건의에 탁 행정관 경질로 응답하지는 못할망정 장관이 무력감을 느끼게 해서야 되겠는가”라며 “정 장관의 건의가 대통령께 보고는 된 것인지, 탁 행정관은 어떻게 할 것인지 청와대는 분명히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여성비하 대명사’ 탁현민을 말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지 묻는다”며 “청와대는 여가부 장관의 요구를 진지하게 수용하고 탁 행정관을 즉각 경질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거취에 대해 정 장관이 노력하지 않는다며 회의에 불참했다.

이로운 존재지만 야권 공세 빌미…‘양날의 검’


이와 같이 탁 행정관은 여성 비하와 왜곡된 성인식으로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조만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할 것임을 본인이 직접 밝히면서 야권의 사퇴 압박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양상이었으나, 업무능력 부각으로 탁 행정관을 옹호하는 여론이 확산되는 것에 비례해 야권의 사퇴론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런 탁 행정관을 두고 ‘양날 검’에 비유하고 있다.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섬세함과 탁월한 행사 지휘 능력, 구태의연한 방식을 깨고 감성을 자극할 줄 하는 기획력, 또한 문 대통령에게 탈권위 이미지를 심어주는 아이디어는 분명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평으로 탁 행정관의 능력이 부각될수록 반대급부에선 탁 행정관을 겨냥한 사퇴·해임 촉구 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는 탁 행정관이 문 대통령에게 있어 분명 이로운 존재지만 반대로 야권 공세의 빌미가 되기도 하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라는 지적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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