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 증손자’ 고려중앙학원 김재호 이사장…‘4대째 세습’

▲ 최근 고려대를 포함한 대학가에서 친일 청산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최근 대학가에서 친일 인사나 사상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설립자들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며 동상 폐쇄를 요구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특히 고려대의 경우 본관 앞에 설치된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둘러싸고 철거 움직임이 거세진 가운데, 최근 대법원은 인촌에 대한 친일 행적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 5월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인촌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인 데 이어 이달엔 학부와 대학원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이를 거듭 촉구했다.


인촌 김성수를 둘러싼 친일 논란은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정부 등에서 인촌을 친일파로 공식 인정한 것은 지난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직후부터다.


이후인 2010년 1월 김성수의 후손으로 알려진 김재호 현 고려중앙학원 이사장(당시 동아일보 사장)과 인촌기념회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대법원은 해당 소송에서 인촌의 일부 행적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는 구체적 행위를 했다’는 취지의 판결로, 인촌 김성수에 대한 친일 행위를 인정했다.


최근 사립대학의 친·인척 인사 등에 따른 대학의 사유화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2016년 기준 전국 대학 중 4대 세습이 이뤄진 2곳의 대학에 고려대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大法, 김성수 친일행위 일부 인정…청산 움직임 촉발
고려대 총학, “인촌 김성수 동상·기념관 철거하라”


“일제 치하에서 고려중앙학원의 전신 중앙학원을 설립하신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의 교육 이념은 인재 양성을 통한 구국(救國)이었습니다. 암울했던 당시에도 인촌 선생께서는 국가의 미래에 교육이 미치는 큰 영향력을 내다보시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자세로 중앙학원과 학교의 기틀을 닦으셨습니다”


위의 글은 고려대학교 학교 법인인 고려중앙학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김재호 이사장의 인사말 중 일부다. 김 이사장은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다.


인촌 김성수는 지난 1905년 이용익 선생이 설립한 보성전문학교에서 재정난이 심화되자 1932년 이를 인수해 경영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김 이사장의 인사말에도 불구, 최근 고려대에선 인촌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최근 대법원 판결과 관련, 지난 12일 고려대 학부·대학원 총학생회 등은 고려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13일 대법원은 인촌을 친일파로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된 인물의 동상과 기념관을 교육기관인 학교에 계속 두는 게 맞는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지금의 고려대가 있기까지 인촌의 헌신적인 노력 등 그 공은 인정한다”면서도 “친일 행적을 다루지 않고 공적만을 부각하게 되면 결국 역사적 진실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재단·학교·학생이 인촌의 공과를 균형 있게 평가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현재 운영 중인 인촌 기념시설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측, “인촌 동상, 현충 시설에 해당”


앞서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지난 5월에도 ‘황국신민 김성수 동상 없애고 고대에서 친일을 청산하자’는 대자보를 부착했다가 대학당국의 제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총학생회는 “김성수가 저지른 친일 행위는 그 수를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수준”이라며 “이런 매국노가 고려대 본관 앞 동상 주인공으로 우뚝 서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의 적폐”라며 “모든 학내 구성원들이 교내 인촌 기념물을 없애고 친일 청산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학생회는 특히 인촌에 대해 ‘민족 배반을 뛰어넘은 국민을 제2차 세계대전의 총알받이로 내몬 장본인’이라고 혹평했다.


이들이 인용한 반민족진상위 보고서에 따르면 인촌 김성수는 특히 일제 말기 친일 행각이 두드러진다.


▲ 최근 대법원이 인촌 김성수에 대한 친일 행적을 인정한 것을 계기로 고려대 일부 학내 구성원들은 본관 앞에 설치된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37년 동아일보의 손기정 일장기 삭제 사건 시점, 인촌은 중일전쟁에 대한 시국강연 연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인 1938년부터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발기인, 임원으로 활동한 데 이어 1942년에는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도 참석한다.


이후 인촌은 일제 징병을 찬양하는 기고문 작성에 매진했다. 1943년 8월 5일 매일신문 1면에 게재된 기고문을 통해 “2500만 동포의 일대 감격이며 일대 광영”이라며 “징병제 실시로 인해 우리가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김성수의 일본제국 찬양의 목소리는 당시 매일신보와 경성일보 등을 통해 1944년 7월 무렵까지 지속된다.


이런 김성수의 행적을 친일로 일부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정부 차원의 후속 대책이 진행 중인 상태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대공원 내 김성수 동상에 대한 철거를 검토 중이며 김성수 생가가 위치한 전북 고창군과 고려대가 위치한 서울 성북구는 현재 도로명 주소로 쓰이는 ‘인촌로’의 명칭을 바꾸는 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김성수 관련 콘텐츠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친일파 시설 설치, 근본적 원인 족벌 경영에 있어”
사립학교법 개정 등 사학비리 척결 움직임 본격화


다만 고려대 내 인촌 동상 철거와 관련, 학교법인과 학교 측의 반응은 미지근한 상태다.


당시 철거를 요구한 대자보가 동상에 부착된 직후 학교 측은 ‘현충 시설’이란 이유로 대자보를 철거해가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한 학생 측과 충돌하기도 했다.


고려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이화여대와 함께 연세대, 서울대 등 친일파 설립자의 동상 문제로 갈등이 불거진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육계 일각에선 이처럼 뒤늦게 친일 행각이 드러난 학교 설립자들의 동상 논란과 관련, 친일 행적에 대한 안내판 설치 등 이들의 공과 과를 함께 기록하는 방식을 통한 갈등 해소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와 함께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이 학교 학교법인인 고려중앙학원에도 날을 세웠다.


이들은 김 이사장 등 고려중앙학원과 관련, ‘친일 매국노 김씨 집안, 고대 4대째 세습’이란 말로 강하게 비판했다.


총학생회는 “왜 학교에서 매국노를 민족 지도자로 포장하고 있는가”라며 “본질은 고대를 소유하고 있는 친일 삼류사학 족벌 김씨 집안에 있다”고 지적했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인촌 김성수의 증손자인 김 이사장은 고려대를 4대째 세습하며 학교에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총장 선출은 물론, 학교의 각종 의결권이 김 이사장의 고려중앙학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이다.


언론매체인 동아일보와 채널A 역시 김 이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총학생회는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친일 매국노를 민족 지도자로 포장해 학교에 동상, 기념관, 전시실 등이 세워지는 것”이라며 “정부는 친일재산환수법에 따라 김씨 일가 재산에 대한 국고 환수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족벌 경영 폐해’ 최근 집중 조명…학교의 사유화 문제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학 비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속도로 집중되고 있다.


특히 대를 잇는 가족 세습 경영에 따른 이익 사유화를 동반한 그 손실의 사회화에 대한 비판이 커져가면서 뚜렷한 감시·견제에서 자유로운 사립대학의 폐단이 지적받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사립대학에선 이미 ‘4대 세습’ 시대가 진행 중인 상태로, 이는 지난 2012년 5월 고려대를 운영하고 있는 고려중앙학원에서 김 이사장이 근무하면서부터다.


‘장남 승계형 세습’이 주로 이뤄지고 있는 고려중앙학원은 인촌 김성수의 장남인 김상만과 그의 장남 김병관의 이사장직 세습에 이어 현 김재호 이사장은 김병관 전 이사장의 장남인 것으로 전해졌다. 4대 세습 체제가 완료된 셈이다.


전국 사립대학 가운데 ‘4대 세습 체제’가 구축된 곳은 고려대와 우송대, 두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 고려중앙학원 김재호 이사장은 인촌 김성수의 증손자로, 고려대는 4대째 세습돼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립대학들의 세습에 따른 족벌 경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공익 대비 사익에 치중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앞서 광운대를 물려받은 조모 전 이사장의 경우 공사 수주와 교사 채용 과정에서 뒷돈을 챙긴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됐으며, 명지대를 세습한 유모 전 이사장은 학교법인 자금을 횡령하는 한편, 관계 건설사에 부당하게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편, 교육계 일각에선 이 같은 사립대학의 장기간 세습 체제 유지가 결과적으로 학교의 잠재적 사유화 문제를 가져옴에 따라 친인척 인사에 대한 임명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기준 고려대를 포함한 3~4대 세습이 진행 중인 사립대는 상당수 달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들 대학은 총 20군데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정부 들어 사립대학 비리 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최근 사립학교법 개정 등 본격적인 입법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고려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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