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개입 정황 담긴 보고서…원세훈→김효재→이명박?

▲ 지난 2015년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문재인 정부는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가동하고, 보수정권 9년 동안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중심으로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재조사를 통해 과거 정치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국정원을 국내 정치와 완전히 단절시키는 고강도 개혁이라는 게 문재인 정부 국정원의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장악’ 보고서와 야당 정치인을 사찰한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세계일보>의 MB정부 국정원 보고서 폭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과 맞물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세계일보발(發) MB정부 국정원 보고서를 통해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정황에 대해 들여다봤다.


SNS 장악 보고서‥총선·대선 대비


‘대외비’ 문건…靑 몰래 들고 나와


문재인 정부 국가정보원은 개혁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산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과거 보수정권 시절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의혹이 일고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는 국정원 스스로가 재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물론 국정원과 국내 정치를 완전히 단절시키고 고유 업무인 국가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고강도 개혁에 착수한 것이다.


여당 SNS 활동 독려하는 국정원


이런 가운데 MB정부 시절 국정원이 SNS 장악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지난 10일 이를 단독으로 보도한 <세계일보>에 따르면, 국정원은 지난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18대 대통령선거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장악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제하의 보고서에는 “SNS가 후보선택 판단 창구로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데, 여당(당시 한나라당)의 절대 불리한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좌파 절대 우위인 트위터의 빈틈을 파고들어 SNS 인프라를 구축하고 좌파 점유율이 양호한 페이스북을 집중 공략해 여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여당의 적극적인 SNS 활동을 주문했다.


SNS 활동 방법에 대해 국정원은 ▶내년(2012년) 총선 대비 입지자들의 출신 학교·지역 커뮤니티 등에 활동 강화 지침을 하달, 튼튼한 뿌리 조직 착근에 주력하라 ▶평소에는 의도성이 노출되는 정치 이슈보다 지역현안 등 주민 관심사 위주로 소통해야 한다 ▶SNS 내 건전단체 모임 결성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같은 국가적 관심 현안 발생 시 마다 심도 있는 정보 토론의 장을 제공,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보수진영 철학 전파에 유리한 의제를 적극 발굴, 이슈화해 SNS 공간의 여론 건전화를 선도해야 한다 등 상세하게 적시했다.


또한 “팔로워 숫자가 많은 유명인 초청 정기대화 및 논쟁 등을 통해 네티즌 관심을 유도, 여권 인사들의 팔로워 확대 및 인지도 제고 기회로 활용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SNS 장악 보고서는 진보성향 젊은 층(20~40대)을 중심으로 SNS가 후보 선택을 판단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SNS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여당에 적극적인 활동을 독려함은 물론 이를 통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 앞서 대비가 필요하다는 국정원의 판단이었다.


이와 같이 국정원은 당시 한나라당의 총선과 대선을 우려하며, 여당에 SNS 활동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 등을 상세히 기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는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국정원법 제3조(직무) ▲국정원법 9조(정치 관여 금지)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 ▲공직선거법 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금지) ▲공직선거법 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 등의 법률을 위반했다는 게 세계일보 측의 주장이다.


▲ 세계일보가 공개한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SNS 장악 보고서.

청와대에 보고된 보고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여당에 SNS 활동을 독려하고 나아가 여론 조작 의도까지 의심되는 국정원 보고서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전달됐다고 한다.


국정원이 해당 보고서를 청와대 연풍문에 근무하는 경찰관에게 맡기면 정무수석실 행정관 A씨가 출근하면서 이를 찾아갔다.


A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문서를 재분류해 김효재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게 건네면, 김 전 수석은 이를 검토한 뒤 당일 혹은 며칠 뒤 A씨에게 이를 다시 건넸고, A씨는 김 전 수석으로부터 다시 건네받은 문서를 파쇄기로 없애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2012년 19대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2011년 12월 청와대를 그만두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될 만한 문서를 틈틈이 모아 온 것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김 전 수석에게 보고되는 각종 문건의 분류와 파쇄, 일정관리 등을 맡아 온 A씨가 몰래 가지고 나온 청와대 문건은 715건에 달했으며, 여기에는 국정원이 김 전 수석에게 보고한 SNS 장악 보고서도 들어있었던 것이었다.


A씨는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해당 자료를 챙겨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몰래 들고 나온 국정원 보고서가 공개된 경위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보좌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를 디도스로 공격한 사건이 벌어진 것과 관련해, A씨가 최 의원 측에 경찰 수사상황을 누설한 정황이 특검에 덜미를 잡히면서 특검 수사관들이 A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를 발견한 것이다.


세계일보는 2015년 이른바 ‘정유회 문건’ 파동으로 재판이 진행되던 중 A씨가 몰래 들고 나온 청와대 보고서 715건 중 일부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원세훈 결심 공판 영향 미칠까?


국정원이 선거 개입 의혹이 일고 있는 SNS 장악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할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 당일, 세계일보가 해당 문서를 공개했지만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지난 10일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24차 공판에서 SNS 장악 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선거운동의 범위와 관련해 이 사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서울중앙지검에 기록을 요청하는 기록송부촉탁과 국정원을 상대로 해당 문건의 사실조회를 신청한다”며 “문건 작성 경위 및 작성자, 보고 라인 등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오늘 재판 종결을 예고했고 파기환송심이 2년이 지났는데 언론기사를 증거로 신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해당 문건은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고, 증거 신청을 기각하고 나와 있는 자료만으로 판단해주길 바란다”며 검찰 측 증거 채택 주장을 반박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잘 듣고 검토나 결과 소송 진행 경과 및 자료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일단 증거로 채택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증거 채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재판부 증거 신청 기각에 향후 이의신청을 한 뒤 이를 최종의견 진술에 반영하고 싶다”는 검찰 측 의견을 받아들여 “검찰 측 요청에 따라 기일을 추가로 진행해 검찰이 최종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결심 공판을 오는 24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대선개입 의혹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법원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을 오는 24일로 연기한다고 이날 밝혔다.(사진제공 뉴시스)

野 인사 사찰 및 표적수사 문건도


“MB랑 무관한 일로 보기 어려워”


국정원, 野 인사 사찰 및 표적수사 종용


세계일보가 공개한 국정원 보고서는 SNS 장악 보고서 말고도 또 있다.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 대비해 당시 야당 정치인의 동향을 사찰하고 수사기관을 이용해 야권 표적수사를 종용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도 폭로했다.


국정원은 2011년 11월께 ▶우상호, 좌익 진영의 대선 겨냥 물밑 움직임에 촉각 ▶손학규 대표, 서울시장 후보로 외부 인물 영입에 주력 ▶2040세대 대정부 불만 요인 진단 및 고려사항 ▶10·26재보궐 선거사범 엄정처벌로 선거질서 확립 등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이른바 우상호 보고서에는 ‘우 전 의원이 최근 주변에 언급한 내용’이라며 서울시장 선거 등 당시 정치권 지각변동에 대한 우 의원의 생각을 꼼꼼히 적시하는 등 야당 인사들을 사찰한 듯한 내용을 담겨있다.


국정원은 ‘그간 청춘 콘서트·나꼼수 등 선동적 방식으로 정부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불만을 자극해 변화를 요구하는 토대를 조성했다’, ‘후보 선출 시기에는 야권 연대를 내세워 국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폭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좌성향 유권자들을 하나로 묶을 것’이라고 언급한 우 의원의 발언을 보고서에 담았다.


국정원은 아울러 우 의원이 ‘선거운동 기간에는 오랜 기간 구축해온 온·오프라인 네트워크를 가동해 선거를 통한 사회변혁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무당파(20∼30대·중산층 이하)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등 시나리오대로 전개된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내용도 기술했다.


▲ 세계일보가 공개한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우상호 보고서.

손학규 보고서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후보가 될 경우 친노·문재인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화돼, 자신(손학규)의 대선 주자 위상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인 만큼 80년대 시민운동 당시부터 친분을 쌓아온 박원순은 물론 조국·안철수 등 유명인들을 은밀하게 접촉해 출마 의사 타진에 착수했다”며 야권 동향을 수집한 정황을 적시했다.


2040세대 보고서에서 국정원은 정부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 원인과 대책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아, 여당 정책연구소가 할 법할 일들을 대신했음을 드러냈다.


국정원은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일로써 승부하는 저돌적인 면모가 종북좌파들의 레토릭(정치적 수사) 공세 속에 불통·독단 등 부정적 이미지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공감과 위로였으나 국민정서를 고려하기보다는 지나치게 경제논리와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치중함으로서 서운함을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젊은 층과 접촉 빈도를 높이되 경청모드 속에 곧은 말씀 보다는 위로와 공감에 초점을 맞춰 정서적 효과를 제고 할 것”이라며 “진솔하고 완곡한 레토릭을 통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민생화법 전환을 해야 한다”며 해법까지 제시했다.


선거사범 엄정처벌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10·26보궐선거 이후 야권과 좌파가 자행한 선거법 위반 행위를 검찰 및 경찰이 일벌백계 식으로 엄단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타깃이 된 야권 인사들의 수사 현황을 정리한 문서를 첨부했다.


이처럼 MB정부 당시 국정원은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 대비할 수 있게끔 여러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 세계일보가 공개한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2040세대 보고서.

국정원 보고서…어느 선까지 보고됐나?


앞서 언급했던 A씨가 청와대를 나오면서 대외비 문건을 몰래 들고 나올 수 있었다는 점과 문건에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점을 감안하면 해당 국정원 보고서는 문서관리대장에 기록되지 않는, 즉 공식 문건이 아닌 비공식 문건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비공식 문건으로 추정되는 보고서는 당시 국정원의 수장이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의혹과 더불어 이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진 김효재 전 정무수석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지난 11일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이 문건을 작성해 지속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이는 이 전 대통령과 무관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대통령 또는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이라면 이는 헌정질서를 유린한 사상최악의 부정선거 스캔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물증이 나온 이상 국정원에 이러한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보고 받은 윗선이 누군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여당의 이 같은 주문에 국정원은 즉시 화답했다. 서훈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두렁 시계 사건 및 채동욱 혼외자 불법 사찰 등 과거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의혹이 일고 있는 13개 사건을 확정해 재조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서 원장은 아울러 “새로 문제가 제기된 것까지 포함해 적폐청산 TF에서 다루도록 하겠다”고 말해, SNS 장악 보고서 등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2차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만약 국정원 조사에 이어 검·경 등 사법기관으로 수사가 확대돼 국정원이 이 전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보고서를 작성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렇게 되면 두 전직 대통령은 보수정권 9년이란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마치 군사정권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나란히 법정에 섰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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