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루 쥔 文…보수 궤멸 위한 적폐 청산?

▲ 문재인 대통령 이 ‘세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여의도 촛불’ 문화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적폐 청산.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을 보면, 문 대통령은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첫 번째 약속으로 꼽으며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적폐 청산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가동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적폐청산 TF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관련 불법 사찰 등 10여 가지에 대해 국정원의 정치 개입 사건으로 규정하고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정치보복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사정(司正-그릇된 일을 다스려 바로잡음)’의 칼을 쥐고 강도 높은 적폐 청산을 예고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복수의 서막에 대해 짚어봤다.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 가동


盧 죽음으로 몰고 간 언론플레이


제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이해찬 의원은 충남 공주 유세에서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다시는 저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궤멸시켜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같은 사람들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에 치러진 19대 대선을 계기로 보수진영을 궤멸시키고 진보진영의 장기집권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진보진영은 보수 궤멸의 일환으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적폐로 규정하고, 보수정권 9년간의 폐단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폐 청산 의지 강한 文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집을 살펴보면,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문 대통령은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첫 번째 약속으로 꼽으며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 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의 자신의 약속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지난달 19일 국가정보원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이하 개발위)’를 발족시켰고, 국정원 개발위 산하에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등을 조사하는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


적폐청산 TF는 현재 보수정권 9년 동안 국정원이 정치에 개입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을 중심으로 재조사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적폐청산 TF가 재조사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사건은 ▶지난 2013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가 북한과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 정보를 유출했다며 간첩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NLL 대화록 유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뇌물로 받은 1억원 상당의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논두렁 시계사건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11살 된 혼외 아들이 있었다는 채동욱 혼외자 관련 불법 사찰 사건 등이다


국정원의 언론플레이


이 가운데 논두렁 시계 사건과 채동욱 혼외자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논두렁 시계 사건부터 살펴보자면,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금품 등을 수수한 혐의로 대검찰청 중수부에 소환된 지 얼마지 않아,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1억원 상당의 명품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 측은 해당 보도에 대해 강력 부인했지만 이미 노 전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됐고, 얼마 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2015년 2월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정원”이라고 밝혔다.


이인규 전 부장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이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언론까지)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으니, 나중에 때가 되면 (진실을)밝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국정원의 수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는 원 전 원장의 지시 또는 암묵적 승인 하에 이뤄졌을 공산이 커 보인다.


▲ 지난 2009년 4월 21일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를 준비하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한 가운데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이 이인규 중수부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靑·검찰·국정원…모두가 한통속?


다만, 이 전 부장의 주장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언론플레이를 주도한 국정원의 잘못이지, 검찰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두지휘 했던 이 전 부장의 상관으로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있었고, 현재 법조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홍만표 전 수사기획관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당시 중수 1과장)이 이 전 부장을 보좌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로만 몰아간다면 당시 검찰총장과 이인규·홍만표·우병우 등 수사팀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지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MB정부 당시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이 모두 한통속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해 적폐청산 TF가 본격적인 재조사에 나선다면, 당시 중수부 수사팀과 원세훈 전 원장 등 검찰·국정원 관계자들은 물론 최종적으로 청와대의 관여 여부까지 파헤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사정의 칼이 겨눠질 수 있다는 것이다.


靑·국정원 개입…혼외자 불법 사찰


의도적인 정치보복‥보수야당 반발


사의 표명한 채동욱


논두렁 시계 사건이 이 전 대통령에게 파급을 끼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채동욱 혼외자 관련 불법 사찰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여파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초기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으로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대로 검찰을 이끌어 갈 것이란 기대감이 모아졌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직원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인터넷 댓글을 올리며 여론을 조작했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원칙대로 밀어붙이다가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한 반면 야권 후보는 비방하는 등 정치적 여론 조작 활동을 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대선 직선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에 외압을 넣고 허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등 원칙대로 수사를 밀어붙이다가 청와대 눈 밖에 난 것이다.


2013년 9월 조선일보는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고, 여권에서는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 전 총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황 전 총리의 진상조사 지시는 채 전 총장에게 스스로 물러나라는 신호였다. 현행법상 감찰을 받는 공무원은 스스로 사퇴할 수 없는데, 혼외자 의혹에 대해 감찰이 아닌 진상조사를 지시함으로써 사의 표명을 유도한 것이다.


▲ 2013년 9월 30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국정원→채동욱 찍어내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주도하던 채 전 총장의 혼외자 문제가 불거진 데에는 국정원이 개입돼 있었다.


실제로 국정원 직원 송모 씨는 채 전 총장의 혼외자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빼낸 혐의로 지난해 1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로 국정원을 겨냥하자, 국정원이 채 전 총장의 뒷조사를 해 혼외자 문제를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근혜 정권 청와대 인사도 혼외자 불법 사찰 사건에 개입했다. MB정부 때 부터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은 조이제 전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을 통해 혼외자 개인 정보를 조회한 혐의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뿐만 아니라 혼외자와 모친 임모 씨의 개인정보를 수집한 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 경정과 서울시교육청 등을 통해 혼외자의 학생기록부를 요청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비서관, 모친 임 씨의 국민건강보험 관련 정보를 빼낸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 행정관 등 채 전 총장 혼외자 불법 사찰에 다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개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국정원과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채 전 총장의 혼외자 문제를 파고들었고, 이를 언론에 흘려 채 전 총장을 찍어낼 명분을 만들었다는 의혹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로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찍혀나간 장본인인 채 전 총장은 지난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민주권주의나 법치주의 등 대한민국 헌정질서에 핵심 요소를 훼손한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과도 직결될 수도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도중 청와대와 법무부 등 다각도로 압박이 있었음을 실토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와 맞물린 채 전 총장 혼외자 불법 사찰 사건은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 전 총리 등 박근혜 정권 실세로 꼽혔던 인사들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여파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야당 “악의적인 정치보복 음모…분노 머금은 보복”


이와 같이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명분삼아 논두렁 시계 사건과 채동욱 혼외자 불법 사찰 사건 등을 재조사하려고 하자, 보수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재조사 담당자에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던 조남관 서울고검 검사를 앉힌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며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조사를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을 도구로 삼아 국내 정치의 혼란을 부추기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며 “만일 정부여당이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 보복을 감행한다면 이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19일 국정원 개발위를 발족한 다음날이었던 20일에는 같은 당 김경숙 수석부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며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국정원 개발위원장에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친분이 있는 대표적 좌파 학자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임명했다”며 “국정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미 여러 차례 규명된 사안들을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국정원에게 재조사를 시키는 행위는 진정한 국정원 개혁과는 거리가 멀고 국민들에게 납득되기도 어렵다”며 “문재인 정권은 악의적인 정치보복 음모인 적폐청산을 당당 멈추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지난 2012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현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안내하고 있다.

이에 앞서 바른정당 황유정 상근부대변인도 지난달 10일 논평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이 했던 일을 적폐 대상으로 올려놓고 재조사를 한다는데, 이 중에는 검찰 조사가 이미 끝난 사건도 있고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슈화돼 여론으로부터 혹독하게 검증을 받았다”며 “이제 와서 무얼 더 캐내려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분노를 머금은 보복 정치는 또 다른 보복 정치의 싹을 잉태하기 마련”이라며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에 대한 분노와 앙갚음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앞을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적폐 청산이고 국민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에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공동운명체였던 보수야당은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사정의 칼을 쥐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보수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두 전직 대통령의 목전까지 칼을 겨눌지, 아니면 꼬리를 자르는 선에서 칼을 거둬들일지 사정의 강도에 관심이 모아진다.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해서 무작정 휘두르게 되면, 보수 궤멸을 목적으로 한 노골적인 정치보복 및 보수야당 탄압이라는 여론 악화를 불러와 자칫 보수층 결집이라는 역풍이 불어 닥칠 수도 있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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