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유해물질에 노출’…‘법의 맹점 뒤에 숨었다’

[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최근 한국 타이어 생산 현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사망한 것이 ‘산업재해’로 볼 수 있냐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에 대한 산재 인정과 10여간 법적인 다툼을 벌여왔던 한국타이어 생산직 노동자의 절규와 고통이 해결이 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측은 "대통령 당선이 된다면 한국 타이어 문제에 대해서 재검토를 실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한국타이어 공장을 포함한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다가 암, 순환기질환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가 모두 46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에 사망한 근로자는 총 4명이며, 각각 폐섬유종, 폐암, 비인두암 등이 원인이었다.


2009년에는 뇌종양, 폐렴, 신경섬유종 등으로 6명이 사망했고, 2010년에는 급성심금경색, 폐암, 뇌경색으로 6명이 죽었다. 또 2011년 8명, 2012년 6명, 2013년 7명, 2014년 2명, 2015년 6명, 2016년 1명의 근로자가 각각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가족들은 사망 근로자들의 원인 제공이 결국 현장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타&근로복지공단…산업재해 인과 관계 없다?
‘질병과 업무 관련성’…‘근로자 스스로 밝혀내라’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유해물질’이 실제 사망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유해물질이 실제 사망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어 ‘산업재해’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하고 있는 근로자들 사망사건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짚어보기로 했다.


현재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부분은 최근 10년 동안 한국타이어에 근무했던 46명의 근로자가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 측은 그동안 발생한 노동자들의 사망 원인은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기용제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유기용제’다.


‘유기용제’는 어떤 물질도 녹일 수 있는 액체 상태의 유기화학물질로, 세척, 기름때 제거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기용제 중독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상황은 아니다.


다만 유기용제가 사망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는 나와 있다. 만약 지속적으로 유기용제에 노출될 경우 ▲피부질환 ▲급성 및 만성 중추신경계 중독 ▲간 및 신장 손상 ▲심장 손상 ▲혈액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유기용제 노출로 인해 급성간괴사와 간기능 상실로 인한 사망 사례가 보고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연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사망한 근로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망한 근로자들은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피복된 것으로 판정 받은 바 있다. 이는 결국 사망 원인이 생산 현장에서 접촉했던 유해물질이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가 돼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측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재해 인정받기 하늘에 ‘별 따기’


지난 2007년 국회에서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근무 중 유해물질로 인해 질병에 걸려 재해를 입을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우선 근로자에게 발생한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회사가 아닌 근로자가 개인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해내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타이어 공장 근로자의 경우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작업장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인과관계 증명이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유기용제는 시너·솔벤트 등 어떤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상태의 유기화학물질로 휘발성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공기 중에 유해가스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 측은 "산업재해보상법은 구조적으로 유해물질로 인해 질병 또는 사망했을 때 구조적으로 산재처리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산재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 측도 ‘현행법’에 따라서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측에 따르면 산재 청구의 경우 문제가 된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여, 질병판정위원회 산재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한국타이어 공장의 경우 이 과정에서 유해물질 허용가치가 법에서 정한 것보다 낮았다. 이로 인해 근로자들이 질병과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근로자들의 사망과 관련한 산재인정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산업현장 상황 등을 제대로 반영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산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1997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타이어 산재 신청 승인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주요 원인은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피폭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7년 12월을 기준으로 산재보상보험법이 전면개정됐으나 여전히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산재 승인율은 0.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타이어 측은 “우리는 법적 기준이 있다면 그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타이어 측은 “근본적으로 산재 인정 여부는 한국타이어가 정하는 게 아니고 근로복지공단 쪽이 정한다. 혹시라도 근무를 하다가 요청이 있으면 저희는 성실히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여년 간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국타이어는 이렇다 입장을 표명하기 보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의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타이어 측은 사회적 책임 마저 저버린채 산재법의 법적 틈새에 숨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한국타이어 갈등 해결 나설까?


회사와 유가족들 간의 갈등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설지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한국타이어산재협의회 측은 지난 4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집단사망 사태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공개 질의서를 받은 문 대통령 캠프 측은 지난 5월 3일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의 캠프 측은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집단사망 사태를 포함한 고무산업 종사자들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피재자(재해를 당한 사람)에 대한 치료 및 건강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마련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는) 유해물질의 인과관계 등 원인규명을 통한 안전한 작업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 및 지원을 강화하고, 물질안전자료 공개의 투명성을 강화하며, 피재노동자들의 치료 및 건강관리를 위해 예방대책마련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한국타이어산재협회의는 조국 민정수석에게 촉구서를 보내 한국타이어 공장 노동자 집단 사망사태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말처럼 집단 사망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본격화할 경우 ‘원인물질 규명, 피해자 보상, 재발 방지책, 제도개선’등의 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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