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발맞추어 기업들이 비정규직 해소와 고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기 무섭게 인천공항공사를 직접 방문해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이후부터 사기업들도 이 같은 기조를 따라가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으로 전환’을 약속한 회사들 SK브로드밴드, 한국시티은행, 신한은행, 롯데그룹 등이다.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규직 전환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도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을 약속해놓고 실질적인 처우개선·임금·복지 문제는 뒷전으로 놓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들 ‘정규직 전환’ 사회적 환영 분위기
‘업무환경·복지·임금’ 문제 해결이 중심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규직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2일 SK그룹의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가 하청업체 직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첫 스타트를 끊은 것에 이어, 다른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제껏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하청업체 직원이나 계약직 직원들에 대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의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 측은 자사의 하청 대리점 직원 5200여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이를 위해서 오는 6월 초 자본금 460억원 규모의 자회사를 100% 지분 투자하겠다고 방침도 세웠다.


그동안 SK브로드밴드 측은 홈센터로 불리는 독립 대리점과 업무 위탁 계약을 맺고 사후 고객 관리(AS)·회원 유치·인터넷망 설치 등의 업무를 맡겨왔다. 하지만 새 정부의 기조에 맞춰 오는 7월부터 위탁업무 계약이 종료되는 홈센터 직원부터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해 2018년 7월까지 모든 홈센터 직원을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LG유플러스도 이 같은 행보에 동참하기 위해서 협력사 설치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이동통신사 가운데서 유일하게 설치기사의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기업이기도 하다. LG유플러스의 올해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 비율은 26.9%(1846명)로 SK텔레콤 3.9%, KT 2.5%인 것과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LG유플러스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전해진 것은 없다"며 "현재 업계 동향을 살피는 단계"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부터 ‘정규직 전환’을 이야기했던 롯데그룹도 새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계열사별로 비정규직 실태 파악에 돌입했다. 우선 각 계열사별로 비정규직 현황을 파악한 후 정규직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롯데그룹은 정규직 전환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과 무기계약직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해서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권도 정규직 전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IBK기업은행은 3000명, 씨티은행은 300명 등 창구 전담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또한 신한은행도 기간제 형태로 채용한 사무직 170여 명 중 60~7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외에 유통업계 역시 정규직 전환에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다. 이마트는 우수 가맹경영주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밝혔으며,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영업 및 지원인력 단시간 근로자를 2019년 3월까지 전일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정규직 전환은 아니지만 지난해에 비해 채용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는 약 2,500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이보다 증가한 2,600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기업들 생색내기용?…처우개선은 '글쎄'


이러한 정규직 전환을 무조건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열악한 업무환경 개선과 복지·연봉 등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기업들이 정부의 기조에 맞춰 생색내기 용으로 '정규직 전환'만 발표할 뿐 실질적인 처우개선 등 논의는 뒷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창구 전담 업무를 맡고 있는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을 300여명을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노조 측은 사측의 이 같은 발표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정적인 전환 및 점포 폐쇄 문제로 노사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 문제를 외려 홍보에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씨티은행 노조 측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점포 폐쇄로) 원격직무나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게 될 텐데, (사측이) 현실적인 처우개선이나 어떠한 추가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 문제가 달갑지 않은 것은 씨티은행 뿐만이 아니다. SK브로드밴드 하청업체 노동자들 역시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 반신반의한 상황이다. 앞서 동종업계에서 정규직 전환을 시행한 적 있지만 실질적인 근무조건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현재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직원은 고용이 보장되기 상황이기에 법적으로 정규직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만 정규직일 뿐 실제 임금이나 처우개선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에 유통업계가 내놓은 정규직 고용 역시 말 뿐인 정규직 전환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동 조건을 반영해 정규직을 세분화하는 등의 정책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와함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후 업무환경이나 임금, 복지 문제 등이 개선됐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감시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정규직 전환 이후 기업들에 대해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단순히 생색내기용 홍보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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