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당 대표 앉혀 놓고 최고위 좌지우지 꼼수

▲ 지난 2015년 7월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부두를 방문해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이번 대선을 통해 제1야당으로 신분이 바뀐 자유한국당은 오는 7월 전당대회를 개최할 예정인 가운데,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와 친박계가 당권 쟁탈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비주류인 홍 전 지사와 구(舊)주류인 친박계는 서로를 향해 ‘바퀴벌레’, ‘낮술 했나’ 등 거친 언쟁을 주고받으면서 한국당의 고질병인 계파 싸움을 재현하고 하고 있다.


특히, 친박계의 경우 집단지도 체제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여론몰이를 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보수층 일각에서는 친박계가 당권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에 친박 인사를 대거 포진시켜 당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검은 속내’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나온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보수 일각에서 ‘친박의 검은 속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는 친박계의 집단지도 체제에 대해 살펴봤다.


유기준 “집단지도‥비주류도 동의”


당 최고위 장악 위한 제도적 장치


자유한국당은 이번 대선에서 제1야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한나라당 시절인 지난 2008년부터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려왔던 시절은 박근혜 시대가 막을 내림과 함께 빛바랜 추억으로 묻어 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신분이 바뀐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열흘밖에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강한 제1야당을 표방하면서 정부·여당을 강하게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묻지마식 발목잡기’가 아닌 이상 정부여당의 독주와 독재, 타성에 젖는 것을 막기 위한 건전한 견제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때로는 명분 없는 발목잡기를 자행했던 더불어민주당에 복수하기 위해 한국당도 명분 없는 발목잡기로 일관할까 우려하고 있다.


일각의 이런 우려에 대해 한국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그저 7월 예정된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앞두고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운영에 매진하면서 검찰 개혁과 재벌 개혁, 미·중러·일 특사 파견,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전반적인 탕평인사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지만, 입으로는 강한 제1야당을 주창하면서도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처절한 반성, 보수 재건을 위한 고민, 보수층 결집을 위한 보수 재통합 방안 모색 등은 제쳐두고 당권 쟁탈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한국당의 현주소다.


집단지도 체제 다시 꺼내든 친박


한국당 당권 쟁탈전은 비주류인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와 구(舊)주류인 친박계의 당권 싸움인데, 당권 싸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친박계는 ‘식물 대표’, ‘봉숭아학당식 최고위원회’의 단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던 집단지도 체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으며 “현재 (한국당은)당헌·당규상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것이 분리돼 있다”며 현재의 단일지도 체제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대에서)1등 되신 분이 당 대표가 되고 다른 분들은 최고위원으로 있으면 당의 인재가 계속해서 당을 이끄는 집단지도 체제가 되니, 이것이 오히려 맞지 않나 생각한다”며 집단지도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유 의원은 이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중진의원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나경원 의원과 신상진 의원도 (집단지도 체제에 동의한다고)말씀하셨다”면서 “이건 주류, 비주류를 떠나 당에서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라며 당내 비주류 일각에서도 집단지도 체제로의 회귀에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일지도 체제와 집단지도 체제 차이점


현재 한국당은 단일지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단일지도 체제는 전대에서 당 대표는 1인 1표제로 1명을 선출하고, 4명의 최고위원들은 1인 2표제로 따로 뽑아 당 대표의 권한을 대폭 강화는 것을 목적으로 지난해 8월 전대에서부터 도입됐다.


유 의원을 비롯해 친박 주류가 주장하는 집단지도 체제는 전대 득표율에 따라 1등은 당 대표가 되고, 나머지 2등부터 5등까지는 최고위원이 된다.


집단지도 체제는 당 대표의 막강한 권한을 최고위원들에게 분산시켜, 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에서 민주적으로 당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게 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민주적이고 제왕적 당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최고위원들이 당 대표와 동등한 권한을 가지다보니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에 의견일치가 안 될 경우 의사결정이 늦어지게 된다.


김무성 흔들었던 ‘친박 최고위’의 행패


무엇보다 특정 계파가 의도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당 대표를 흔들어 당 리더십 부재를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 시절 새누리당 최고위를 상기해 보라”면서 “친박이 김무성 대표를 에워싸고 얼마나 굴욕감을 안겨 줬나, 당 대표의 권위를 짓밟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 대표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거나, 특히 지난해 총선에서 김 대표의 대표적 어젠다였던 ‘국민공천제(상향식공천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서청원·이인제·김태호·원유철 등이 김 대표에게 융단폭격을 가하지 않았느냐”고 격분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시)친박들이 청와대와 합심해 하도 공격을 하는 바람에 김 대표에게 ‘30시간의 법칙’이라느니, ‘옥새 들고 나르샤’라느니 하는 오명이 붙은 것 아니냐”며 “당 대표가 통합과 화합을 위해 참고, 또 참고해도 친박 최고위가 합심해서 달려들면 당 대표 권위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게 집단지도 체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집단지도 체제는 결국 홍준표 전 지사나 비주류 인사에게 당권을 빼앗기더라도 자신들이 최고위에 대거 입성해 김무성 대표 시절처럼 당 대표를 흔들어 최고위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친박의 검은 속내’가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관계자의 이 같은 주장은 7월 전대에서 홍 전 지사가 당 대표로 선출된다고 하더라도 홍문종·유기준 의원 등 친박 인사들이 최고위에 대거 입성하면, 집단지도 체제 하에서는 김무성 대표 시절과 같이 친박계가 홍 전 지사를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 지난 2016년 3월 17일 공천문제와 김무성 대표 발언과 관련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 간담회에 참석한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가 회의를 마친 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홍준표·정진석‥집단지도 결사반대


폐족 선언한 용기 있는 친박 없어


홍준표 “친박 정치 복원”…정진석 “초·재선 정풍운동 해야”


7월 전대에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는 홍 전 지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홍 전 지사는 지난 17일 “당이 정상화돼야 하는데 구(舊) 보수주의 잔재들이 모여 자기들 세력 연장을 위해 집단지도 체제로 회귀하는 당헌 개정을 모의하고 있다고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어 “자기들 주문대로 허수아비 당 대표를 하나 앉혀 놓고 계속 친박 계파 정치를 한다는 것”이라며 “이젠 당에 없어진 친박 계파정치를 극히 일부 친박 핵심들이 복원하겠다는 것”이라며 친박계가 또 다시 친박 정치를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지난해 단일지도 체제 도입을 주도했던 정진석 전 원내대표 역시 지난 19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가 강력한 제1야당이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게 당연한데, 적전분열 양상이 뻔히 보이는 집단지도 체제를 왜 다시 도입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친박계를 질책했다.


정 전 원내대표는 이어 “새누리당 지도부들이 모이면 책상을 치고 싸우던 모습을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라며 “(당시 집단지도 체제가)무슨 효율이 있었느냐, 그래서 단일지도 체제로 바꿨던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초·재선 의원들도 지도부로 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선 직후 벌써부터 지도체제 문제를 뚜렷한 명분과 이유 없이 또 바꾸자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초·재선 의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정상적인 당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초·재선 의원들이 정풍운동을 들고 나와야 할 때”라며 집단지도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친박에 맞서는 초·재선 의원들의 당내투쟁을 촉구했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가 지난 1일 대전 중구 서대전공원에서 유세를 마친 뒤 정진석 공동선대위원장과 포옹하고 있다.

대선 패배…안희정의 용기 있는 고백


친박(親朴-친박근혜)계는 말 그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삼은, 한 때 박 전 대통령이 아이돌 그룹 저리가라 하던 시절 박 전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은, 박근혜 정권에서 호가호위 해왔던 인사들을 지칭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보수 전체를 아우르던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해 부끄럽게도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박근혜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이쯤 되면 친박계도 주군을 따라 스스로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임을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는 자성(自省)과 함께 보수의 일원으로써 무너진 보수 재건에 사활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친박에게도 훗날을 기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 때 패권정치의 대명사였던 친노(親盧-친노무현)의 적자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집권여당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예,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라고.


이어 “우리는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민주개혁세력이라 불렸던 우리 세력이 우리 대에 이르러 ‘사분오열(四分五裂-이리저리 갈기갈기 찢어짐)’, ‘지리멸렬(支離滅裂-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의 결말을 보게 됐고,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국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변화와 개혁에 실패 했습니다”라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당시 친노의 상황을 스스로 폐족으로 규정하고, 자기반성이 담긴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보낸 뒤, 올해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에 참석해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뽀뽀를 받고 있다.

절치부심 없는 친박


박근혜 시대가 부끄럽게, 또 처절하게 막을 내렸음에도 박근혜 정권 하에서 호가호위했던 친박 인사들 가운데, 안 지사와 같이 자기반성이 담긴 용기 있는 고백을 한 인사는 아직까지 없다.


박근혜 정권에서 권력의 달콤함을 맛 본 기억을 잊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저 제1야당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골몰하는 모습만 보인다.


친노의 또 다른 적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초기 국정운영은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고, 야권에서 조차 호평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 기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간다면 내년 6월 예정된 지방선거에서도 대승을 거둘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2020년 예정된 21대 총선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한국당은 제1야당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친박계가 반성과 자기희생을 통한 보수 재건은커녕 당권 쟁탈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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