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협력’…나 몰라라?

▲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은 3일 국내 최고 높이 건물(123층·555m)인 롯데월드타워 그랜드 오픈식이 올림픽로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렸다.

[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 지난3일 롯데그룹 롯데 창립 50주년과 제2롯데월드타워가 전면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양적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모토로 하는 뉴롯데”를 선언하고 나섰다.


근3년 동안 롯데는 형제의 난을 시작으로 비자금 조성, 최순실게이트, 면세점 로비 의혹 등 국내에서 굵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실추된 이미지 쇄신을 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지난 11일 '롯데피해자협의회'(가칭)이 롯데그룹 계열사와 하도급업체 간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타파하겠다면서 이달 안에 피해자 연대 총회를 개최하고 투쟁위원회를 출범시킨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부당한 요구도 감내해야 한다?
‘임금 꺾기’ ‘쪼개기 계약’ 우는 근로자들

이로 인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롯데그룹 갑질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심지어 이들은 지난 1월 롯데그룹 갑질로 인해 회사가 고사 위기이거나 도산했다고 주장하면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통해 사태 해결을 촉구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 출범에 앞장선 이들은 신화(롯데마트 전 납품업체), 가나안알피씨(롯데물산 전 납품업체), 아하엠텍(롯데건설 전 협력업체), 성선청과(롯데슈퍼 전 납품업체), 유순덕 전 세븐일레븐 가맹사업주(코리아세븐 가맹점) 등이다.


이들에 따르면 협회는 19대 대선이 끝나는 내달 9일 이후 구체적인 투쟁에 돌입할 방침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측은 협회 출범과 관련한 <본지>의 취재에 “그러한 단체가 만들어진지 전혀 몰랐다”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이는 앞으로 롯데그룹이 해결해야 나가야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룹 차원에서 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뉴롯데’를 외치면서도 갑질 피해자들의 협회조차 모르는 롯데그룹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말 뿐인 변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도산하는 ‘하청업체’들…책임은?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과 거래를 하면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다 ‘롯데그룹의 무리한 요구’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납품단가를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깎거나, 약속한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등으로 하청업체들의 피를 말린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이라는 대기업을 믿고 들어갔던 하청업체들은 ‘상생’은 커녕 이러한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 것이다.


롯데피해자협의회에 들어간 기업 중 하나는 쌀도정을 하다가 롯데상사와의 거래에서 백억 대의 손실을 입고 도산을 한 가나안알피씨다.


롯데상사와 가나안알피씨는 지난 2004년 한국 내 최첨단 라이센터를 건립해 연간 3만 톤, 연매출 1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쌀을 가공해 유통시키기로 협업을 결정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롯데상사는 공정 설립과 기계설비를 수입하기로 해놓고 가나안에 떠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가나안은 롯데상사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2월까지 약 6년 동안 거래하면서 약 97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쌀 미수금 4억 6천만원을 포함해 토지매입비 8억 원, 고장건축비 31억 3천만원, 도정기계41억 2천만원, 기계통관비 3억 5천만원, 공구운반 4억 7천만원, 은행·신보 등 이자 외 2억 8천만원으로 약 96억 5천만원이다.


여기다 더해 2009년 2월 이후 공장경매와 주주등록자들의 피해액을 합산한 손실액은 47억 5천만원이다. 결국 가나악은 총 144억 원의 피해액을 견디지 못하고 2009년 2월 폐업했다.


피해업체는 가나안알피씨 뿐만이 아니다. 삼겹살 납품 업체로 알려진 신화는 2002년에 설립된 이후 롯데마트와 거래를 하기 전까지 적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롯데마트와 거래를 한 이후부터 약 100억 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화가 롯데마트와 거래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약 3년 동안이다. 신화측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롯데마트 측은 1kg에 1만4500원에 납품돼야 할 삼겹살을 롯데마트 ‘삼겹살 데이’에 맞춰 9100원에 납품하는 등 비정상적인 거래가 진행됐다.


더욱이 물류비와 판촉비, 삼겹살 절단 비용 등의 명목을 빼고 나면 1kg에 6970원에 납품된 것이라고 신화 측은 주장하고 있다.


윤형철 신화 사장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롯데로부터 회사를 살려보려는 과정에서 빚만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업체는 롯데건설에서 배관시설 설비 공사를 하청 받아 진행했던 아하엠텍이다. 문제의 시발점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하엠텍은 현대제철이 발주한 당진 제철소 공사 현장에서 롯데건설로부터 하청을 받아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아하엠텍은 추가공사 비용이 127억 원이나 발생했다. 그럼에도 롯데건설 측은 ‘추가공사 내역은 계약서에 없다’라는 점을 빌미로 대금 지급을 약 8년 동안이나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아하엠텍은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에 롯데건설을 고소했고, 롯데건설은 ‘부당 하도급 대금 113억 원, 과징금 32억 원, 벌점 3점’ 등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며 아하엠텍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 2011년 9월 공정위 심결위원회는 롯데건설에게 ‘경고’, ‘무혐의’ 등의 경징계 처분을 내렸고, 이로 인해 사건 자체가 뒤집어졌다.


하청업체도 모자라 ‘알바생까지?’


롯데그룹을 둘러싼 갑질 논란은 하청업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시네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드리미(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임금 시간 꺾기,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쪼개기 계약 등을 해 온 것이 드러났다.


지난달 2일 알바노조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본사 앞에서 아르바이트생 임금꺾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알바노조는 롯데시네마 측이 노동시간을 15분, 30분 단위로 기록하고 일이 없을 경우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생들을 임의로 미리 조퇴시키는 경우가 상당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고 근무스케줄을 임의로 변경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심지어 계약 기간을 10개월로 한정하는 쪼개기 계약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10개월 한정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사회적 비판이 쏟아지자 롯데시네마 측은 뒤늦게야 임금 시간 꺾기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차액을 추가 지급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침묵을 하고 부당한 근무환경을 제공했던 롯데가 이제와 수습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롯데그룹은 여전히 근로자들에게 부당한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만 모르면 된다는 롯데그룹의 비정상적인 경영 마인드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뉴롯데’를 선언한 신동빈 회장이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단순히 그룹 내부의 개혁이 아니라 근로자와 협력업체들 간의 협업일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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