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폭로전 양상…‘검·경 수사권 조정’ 재점화?

▲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진통이 거듭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이미 과거 오랜 기간 되풀이돼온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을 둘러싼 조정 문제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조기 대선 정국을 맞이하면서 또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


최근 일부 현직 경찰의 이른바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편법진학’ 의혹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중점 수사’할 방침을 밝히면서 이 같은 논란이 재점화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검-경 간 갈등은 각각의 조직을 이끄는 수장들의 최근 발언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달 7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김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셈이다.


이에 대해 10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검-경 간 갈등이 최근 검찰의 경찰에 대한 집중 수사 쪽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일부 일선 경찰서장들의 범죄 혐의 수사에 매진 중인 검찰이 최근 현직 경찰관들이 편법을 이용해 로스쿨에 진학했다는 의혹에 대해 중점 수사할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檢, 로스쿨 편법진학 수사…“경찰 견제용?”
우병우 봐주기 수사…“檢, 여론 도마 위”


이달 초 현직 경찰관들이 이른바 ‘로스쿨’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부정입학’ 의혹에 연루돼 형사고발이 이뤄진 바 있다.


앞서 ‘사법시험 준비생 모임’(이하 사시준비생들)은 지난달 22일 2015년 3월 감사원 감사 당시 적발된 32명의 경찰대 출신 가운데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관들을 형사고발한 데 이어 고려대 로스쿨 입학생과 이들의 입학을 허용한 고려대 로스쿨 관계자들 역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시준비생들은 교육부 자료를 토대로 지난 2012년~2016년 기간 경찰대 출신으로 고려대 로스쿨에 진학한 9명 중 이른바 ‘편법’휴직으로 진학한 이들을 대상으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지난 2015년 4월 감사원은 경찰관 32명이 로스쿨에 진학해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사실을 적발했다. 문제는 이들이 이용해온 ‘편법 휴직’에 있었다.


현행법상 로스쿨 진학을 위한 휴직은 금지된 가운데, 이들은 질병 치료나 육아, 간병 등의 명분으로 휴직을 신청하고 로스쿨에 다녔다. 특히 이들 경찰관 중 한 명은 로스쿨 과정 3년 중 2년을 위탁교육 형식으로 월급을 따로 받고 교육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14일 사시준비생들은 경북대 로스쿨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 김수남(사진) 검찰총장은 “검찰은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란 견해를 밝혔다.

이들은 경찰 재직 신분으로 경북대 로스쿨에 입학한 전·현직 경찰 8명과 2012년~2016년 기간 해당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출신 21명 중 경찰 재직 신분으로 입학했다고 추정되는 자를 대상으로 형법 제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아울러 이들 입학을 허용한 경북대 로스쿨 교수 및 입시 관계자들 역시 형법 제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와 형법 제122조 직무유기죄로 처벌을 요청하는 내용의 형사고발장을 대구지검에 접수했다.


현행법상 현직 경찰관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로스쿨 과정을 수료하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 의무에 따라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내용과 제58조인 직장 이탈 금지 제1항에 따른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허가 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직장을 이탈하지 못한다”는 규정, 동법 제63조 품위 유지의 의무의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각각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특히 경찰 재직 신분의 공무원들의 경우 “로스쿨 입학을 위한 연수휴직은 금지된다”고 공무원인사지침에 명시돼 있으며, 국가공무원법상 연수휴직 한도는 2년이기 때문에 3년 과정의 대학원(로스쿨 포함) 입학을 위한 연수휴직 신청서 기재사항 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시준비생들, 경찰 로스쿨 '편법진학' 의혹 제기

이와 관련, 사시준비생들은 “현직 경찰이 로스쿨에 연수 휴직 등을 신청하지 않고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국가공무원법에 위반된다”며 “현행 로스쿨 제도는 야간 운영과정이 없다. 이들이 3년 간 야간에 업무를 하고 주간에 로스쿨에서 수학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경찰 측의 소극적이며 안일한 뒷수습 방침이 밝혀진 것이다.


최근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로스쿨 부정입학’ 의혹에 연루된 이들 경찰관에 대한 복무관리를 소홀히 해왔고 이 중 일부는 ‘편법 진학’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감사원 적발자 대부분을 불문경고 등 ‘미미한’ 제재로 일관했다. ‘불문경고’는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뿐 사실상 명시적 불이익이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승진 대상자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청장은 지난 2월 “재직 중 야간 과정 등으로 로스쿨을 다니면 괜찮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로스쿨엔 야간 과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철성(사진) 경찰청장은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이라며 수사권 조정 관련 논란에 불씨를 당겼다.

이에 따라 현재 검찰은 서울대와 고려대 로스쿨에 대한 형사고발사건과 관련,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에 배당한 후 비교적 사회적인 파급력이 큰 사건을 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조사과에 넘겨 집중 수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국정농단 사태 이후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검찰을 향한 국민적 시선은 곱지 않은 상태다.


특히 최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구속영장을 둘러싼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견제 수사’를 의식한 경찰 측의 맹공 역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총대’를 멘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은 지난 7일 “현재 국정 농단 사태의 공범은 검찰이라는 것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검찰을 맹비난했다.


이어 황 단장은 “검찰의 사법권력 독점이 국정 파탄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면서 기존 불거진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논쟁을 재점화했다.


주요 대선후보 5인, “검찰권력 분산 필요”
시민사회, 검찰 못지않게 경찰 개혁 지적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지목된 우 전 수석과 관련, 검찰은 그간 ‘황제조사’ ‘봐주기 수사’ 등 결국 제 식구 감싸기 수사를 벌여온 것 아니냐는 논란에 빠지며 여론의 ‘검찰 개혁’ 목소리는 절정에 달한 상태다.


실제 최근 언론보도로 검찰 특수본이 법원에 제출한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 분량이 앞선 특검보다 대폭 줄어들었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이런 황 단장의 발언에 다시 반박했다. 권순범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가공무원인 황 단장의 발언은 기관 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시킬 뿐”이라면서 “검찰 구성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 검경 안팎에선 이 같은 검-경 간 갈등 상황이 ‘네거티브’ 전략에 기반한 상호 폭로전을 통해 장기간 ‘힘겨루기’ 양상에 결국 돌입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검찰은 서울과 전남 지역 경찰서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중인 사실을 밝혔다. 또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서울 지역 경찰서 소속 경찰관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검찰은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안을 제외하고 그간 수사 경과를 언론에 공개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아 법조계 일각에선 이례적이란 평가가 뒤따른다.


반면, 경찰은 지난해 11월 뇌물수수 혐의에 휘말린 검찰 수사관 수사를 위해 검찰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고 해당 직원은 퇴직 처리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또 경찰이 체포한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검찰이 실수로 석방했다가 뒤늦게 다시 구속한 사실도 폭로했다.


결국 검-경 간 ‘수사권 조정’ 사안을 둘러싼 싸움이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기 급급한 ‘폭로전’ 양상으로 비화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검경, 상호 폭로전 통한 힘겨루기 양상 "장기화될까?"


▲ 우병우(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불구속 결과를 두고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일각에선 경찰 개혁 과제 역시 시급하단 점을 지적하고 있다.

양 기관 간 갈등의 출발점인 ‘수사권 조정’ 관련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검찰의 뇌물수수 등 각종 비리가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기소권 독점주의로 대표된 검찰권 분산에 대한 목소리는 그때그때 경찰 측을 거쳐 터져 나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경찰 측의 주장이 ‘법률 사회의 경직성’ 등을 이유로 수용되기 힘들단 전망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처럼 최근 검-경이 감정선 수위까지 넘나들며 혈전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여론의 향방과 함께 차기 대권을 거머쥘 대선 후보들의 판단이 이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 최근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검찰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찰에 우호적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원내 5대 정당의 대선 후보 전원이 검찰의 권력 분산에 동의하고 있어 ‘수사권 조정’ 문제 역시 차기 정부에서 거론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먼저 문재인(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검찰 개혁과 관련해 ▲수사권-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의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이어 안철수(국민의당) 후보 역시 검찰권 제한 방안에 대해 공수처의 신설과 수사권-기소권 단계적 분리 추진 등의 입장을 밝혔고, 홍준표(자유한국당) 후보는 영장 신청권의 경찰 이양을 약속했다.


이외에 유승민(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정의당) 후보 역시 공수처 설치 등에 따른 검찰 권력 분산 방침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검-경 간 ‘수사권 조정’ 문제는 그간 반복적으로 이뤄졌던 실패 사례들로 미뤄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여론의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해도 검찰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 상황에서 근본적인 수사권 조정을 위해선 형사소송법 개정까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검찰 개혁은 물론, 경찰 개혁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이 선결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진제공=뉴시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