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만으론 대선 필승 어려워‥보수층 흡수 ‘사활’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지난 16일 세월호 3주기 기억식이 열린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추모사를 통해 밝힌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전명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인사한 뒤 단상을 내려가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국회 원내정당과 군소정당 및 무소속 대선후보들이 지난 15~16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록을 모두 마침으로써 5·9 봄 대선을 향한 본격적인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대선은 혼란 정국에서 치러지는 대선임을 반영하듯 역대 최고인 15명의 후보가 출마하면서 혼전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구축하며 치열하게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두 후보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층 표심을 흡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진보성향인 두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만 갖고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나머지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보수층 흡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보수표 쟁탈전에 대해 살펴봤다.


역대 최다 후보…그래도 文-安 구도


文, 보수 심장부에서 ‘통합을 외치다’


올해 5월 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으로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봄에 치러진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과 박 전 대통령의 파면에 이은 구속 등 혼란 정국을 반영하듯 이번 대선에는 역대 최고인 15명의 후보가 지난 15일과 16일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고 한다.


선거법에 따라 원내정당 다수 의석수 순으로 15명에 달하는 후보들의 기호가 결정됐는데, ▲민주당(119석) 문재인 후보가 기호 1번 ▲자유한국당(93석) 홍준표 후보가 기호 2번 ▲국민의당(40석) 안철수 후보가 기호 3번 ▲바른정당(33석) 유승민 후보가 기호 4번 ▲정의당(6석) 심상정 후보가 기호 5번 ▲새누리당(1석) 조원진 후보가 6번을 배정받았다.


원외정당 후보들은 정당명의 가나다순으로 결정됐으며, 이에 따라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가 7번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 8번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 9번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10번 ▲통일한국당 남재준 후보 11번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12번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후보 13번 ▲홍익당 윤홍식 후보 14번 ▲무소속 김찬민 후보가 기호 15번을 배정받았다.


이와 같이 대선후보가 역대 최다인 15명에 달하고는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선을 5자 구도 형태의 대선으로 보고 있다.


원내 정당 5명의 대선후보들 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서로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이며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지난 17일 0시를 기해 각 정당의 대선주자들이 22일간의 선거유세에 돌입했다. 이번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역대 대선 중 가장 많은 후보가 출마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등 총 15명의 후보들이 대선을 향한 레이스를 펼친다. 왼쪽 첫번째줄부터 기호순으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왼쪽 두번째줄부터 조원진 새누리당 대선후보, 오영국 경제애국당 대선후보, 장성민 국민대통합당 대선후보,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 김선동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왼쪽 세번째줄부터 남재준 통일한국당 대선후보, 이경희 한국국민당 대선후보, 김정선 한반도미래연합 대선후보, 윤홍식 홍익당 대선후보, 김민찬 무소속 대선후보.

文, 지지층 결집 공고…외연 확장 약점


진보성향인 두 후보는 난타전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아이러니하게 보수층 표심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먼저 문 후보의 경우 자신의 지지층에 대한 결집은 공고한 편이지만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문 후보의 지지층은 충성심이 대단하다. 누가 문 후보에게 불리한 언급이나 비판을 가한다면, 이들에게 문자폭탄 테러를 가할 정도로 문 후보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자기편이 아니라면 모두 적으로 규정’하는 이른바 ‘친문(親文) 패권주의’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으나, 그만큼 문 후보를 향한 충성심이 공고하다는 의미기 때문에 이는 대선 당일 투표로 반영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문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 외에 중도·보수로의 외연을 확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문 후보가 보여 왔던 안보관과 친박 패권주의 보다 더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친문 패권주의, 보수층을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 후보의 인식,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반문(反文) 정서가 강한 보수층으로의 외연 확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문 후보가 자신의 지지층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하기가 어렵다. 야권의 전통적 표밭인 호남에서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경쟁해야 하고,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경북 인구수(유권자)가 호남에 비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선 자신의 지지층 외에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을 끌어와야만 한다.


“대구가 통합의 문을 열어 달라”


보수층 표심을 끌어오기 위해 문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7일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첫 유세를 시작했다.


문 후보는 이날 경북대 북문 앞에서 유세차량에 올라 “대구가 일어서야 역사와 세상이 바뀐다”며 “대구가 통합의 문을 열어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안보관이 불안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특전사의 상징인 베레모를 쓴 채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이 내 앞에서 안보 얘기 하지 말라”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 목함 지뢰, 노크 귀순 등 지난 10년간 북한의 도발을 거론하면서 “(보수당이)이렇게 안보에 구멍을 내놓고는 도대체 뭐가 잘났다고 큰 소리냐, 이번 대선은 유능한 진짜 안보 문재인과 무능한 가짜 안보 간의 대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더불어 문 후보 측은 그동안 ‘적폐 청산’을 선거 메시지로 삼아왔으나, 이날부터 선거운동 메시지는 물론 선거 포스터, 선거 공약집 등에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적폐 청산이 듣기에 따라 보수층을 겨냥한 발언으로 곡해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다른 정당 후보에게 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신 통합을 강조하기로 했다. 이는 보수층으로 외연 확장을 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문 후보는 반문 정서가 강한 보수의 심장부 대구에서 공식 선거운동 첫날 일정을 시작하고, 여기서 자신의 안보관을 피력하거나 통합을 강조하면서 보수층 표심을 흡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9대통령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날이었던 지난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진행된선거운동에서 박종길 특전동지회 회원이 전달한 베레모를 쓰고 경례를 하고 있다.

보수 표심 선점한 安‥‘끝까지 유지?’


갈 곳 잃은 보수층 흡수해야…대권


安, 호남 민심 결집 못시켜…외연 확장 선점


문 후보와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안철수 후보는 문 후보와 같은 공고한 지지층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안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친문 패권주의에 반발해 호남을 기반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 후보의 창당 승부수는 지난해 4·13총선에서 녹색돌풍을 일으키며 지역구 25석, 비례 13석 등 총 38석을 얻어 3당 체제 재편을 가져왔다.


특히,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 의석수 총 28석 가운데 23석을 차지하며 호남 민심을 등에 업었다.


그럼에도 안 후보는 호남 민심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국민의당의 지역적 기반이 호남임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는 호남 지역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와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지지층을 공고하게 결집시킨 문 후보와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호남 민심을 공고하게 결집시키지 못한 반면, 외연 확장 측면에서는 문 후보 보다 강점을 보이고 있다.


안 후보는 당내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사드 배치가 당론임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주장을 펴면서 보수 표심을 자극했다.


이에 반문 정서가 강한 보수층에서는 ‘될 사람을 밀겠다’는 인식이 저변으로 확대됐고, 문 후보 보다 그나마 진보 색깔이 얕은 안 후보에게로 지지세가 몰렸다. 이로 인해 안 후보의 지지율은 급상승 했다.


보수층의 지지로 안 후보는 대선을 20여일 앞둔 현재 문 후보의 대세론을 깨부수고 실질적인 대항마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당 안팎에서는 당이 호남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안 후보가 보수층 일부를 흡수해 대선 당일까지 영·호남 지지세를 끌고 간다면 이번 대선에서 극적인 연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선거 포스터에 담긴 전략


보수층 표심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인지는 몰라도 안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는 안 후보가 어깨띠를 둘러메고 양손을 하늘 위로 치켜세운 사진만 덩그러니 찍혀 있다.


포스터에는 정당명이 빠져있고, 기호인 ‘3’과 이름인 ‘안철수’, 안 후보가 둘러멘 어깨띠에 새겨진 ‘국민이 이긴다’라는 슬로건만 적혀 있다.


후보들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정당명, 슬로건, 약력 등이 명시돼 있는 기존의 대선 포스터와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낯설다’ 또는 ‘신선하다’라는 평가가 엇갈리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 후보 측이 ‘노이즈 마케팅(요란스럽게 이슈를 만들어 인지도를 높이는 기법)’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성공했다는 분석과 함께, 안 후보가 보수층 표심을 노리고 호남당 이미지가 강한 정당명을 의도적으로 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같이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진보층 지지와 더불어 보수층 흡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 본격적인 제19대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선거 벽보가 공개됐다.

늘어난 고령층↑…진보성향 연령층 감소↓


이들이 본래 지지기반인 진보진영을 넘어 보수층 흡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에는 보수성향이 강한 고령층 유권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말을 기준으로 주민등록상 19세 이상 선거 인구는 4235만 7906명이다.


주민등록인구는 선거인 명부 작성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공직선거법상 19세 이상의 국민으로 주민등록이 신고 돼 있는 사람 중 선거 사범 등 결격 사유가 없다면 투표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주민등록인구와 실제 유권자 수의 오차 범위가 10만명 내외다.


주민등록인구를 기반으로 연령별대별 유권자를 살펴보면, 60대 이상 고령층 인구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월 기준 주민등록상 60대 이상 인구는 1018만 8685명으로 전체(19세 이상)의 24.1%에 달한다. 60대 이상 고령자가 1000만을 넘긴 것은 역대 처음으로, 지난 대선 당시(20.8%)보다 3.3%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즉, 유권자 4명중 1명은 60대 이상 유권자라는 것. 60대 이상 유권자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정치권과 여론조사 기간에서는 이들을 보수성향으로 보고 있다. 50대 유권자의 비중도 지난 대선(19.2%)에 비해 소폭 상승해 845만 4746명(19.9%)으로 늘었다.


이에 반해 진보성향이 강한 40대는 지난 대선에서 21.8%의 비중을 차지했으나 879만 3768명(20.8%)으로 소폭 하락했고, 30대 유권자는 20.1%에서 17.8%(751만 9950명)으로 2.3%포인트 감소했다.


20대는 675만 5312명으로 15.9%다. 지난 대선(16.4%) 대비 0.5%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종합해 보면 이번 대선에 투표권이 부여될 전체 유권자 가운데 보수성향인 강한 고령층 인구는 다소 늘었고, 진보성향이 강한 연령층 인구는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전체의 24.1%를 차지해 유권자가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19.7%), 부산(7.0%), 경남(6.5%), 인천(5.7%), 경북(5.3%), 대구(4.8%), 충남(4.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갈 곳 잃은 보수표 흡수…대선 필승 전략?


이번 대선에 보수성향이 강한 고령층 유권자(50·60대)가 1800만명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보성향인 문재인 후보와 중도 진보인 안철수 후보는 외연 확장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층 입장에서도 보수 후보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누구를 지지하든 ‘사표(死票-선거를 치른 결과 낙선된 후보자에게 지지한 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라리 될 사람을 미는 게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둘 중에 누가 더 보수층 표심을 많이 흡수하느냐에 따라 대선의 향배가 갈릴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보수 후보에게 등 돌린 보수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리하게 보수층 표심을 흡수하다가 도리어 집토끼를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다만,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대선 막판에 보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판세는 지금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보수층의 대결집으로 보수 단일 후보에게 표를 몰아 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강 구도가 대선 막판까지 유지된다면, 둘 다 진보정당 후보들이기 때문에 보수층 유권자 입장에서는 아예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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