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불복’ 친박…한국당, 여전히 박근혜 사당(私黨)

▲ 지난 8일 바른정당 주호영(왼쪽부터)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 정병국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앞에서 바른정당 국민통합·헌재존중 국민캠페인을 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40년 지기 최순실과 함께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파면됐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탄핵 기각시 의원직 전원 사퇴로 배수진을 쳤던 바른정당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반면, 60여명의 의원들이 기각·각하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며 탄핵 반대를 주장했던 자유한국당은 잘못된 판단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과 한국당 내 강성 친박들은 헌재 결정에 불복을 시사하며 여론의 역풍을 자처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파면 이후에도 여전히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들의 작태에 대해 들여다봤다.


탄핵 주도한 ‘바른정당’의 탄생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朴


지난해 7월 <TV조선>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출연금 모금에 청와대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8월에는 미주 한인 언론인 <선데이저널>이 해당 의혹 막후에는 청와대를 넘어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9월에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 출연금 모금에 최순실이 개입된 구체적 정황과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게 됐다. <본지>도 지난해 7월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한 의혹과 논란에 대해 계속 추적해왔다.


당시 국회에서 진행됐던 국정감사는 ‘최순실 국감’이 돼버렸고, 10월 <JTBC>는 최순실이 사용한 태블릿PC를 입수해, 그 안에 담긴 청와대 기밀문서 등을 잇달아 보도하면서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확대됐다.


이 외에도 복수의 언론을 통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보도되면서, 정치권에는 탄핵열차가 가동되고 있었다.


다만, 야권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당론으로 정했으면서도 역풍을 우려한 나머지 탄핵소추안 발의에 주저하고 있었다.


탄핵 주도 책임…기각 시 총사퇴 배수진


이에 탄핵안 발의를 더 이상 지체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11월 23일 자신의 대선 불출마와 함께 탄핵의 불씨를 당겼다.


김 전 대표가 탄핵의 불씨를 당기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주류 의원들이 탄핵안 통과 여부에 키를 쥐게 됐고,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234표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과 친박들이 국민께 사과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모양새를 연출하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새누리당 비주류 인사들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보수신당을 창당하기로 결심한다.


새누리당 비주류 인사들이 분당한 뒤 창당한 바른정당의 시작은 국민들에 대한 사과였다.


새누리당 분당 28일 만이었던 지난 1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공식 창당대회에서 바른정당은 현역 의원들 및 원외인사들 모두가 무릎을 꿇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바른정당 김무성 고문은 바른정당 소속 인사들과 함께 무릎을 꿇은 채, 마이크를 잡고는 “오늘 모인 동지들은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위해 온몸과 마음으로 헌신해 승리했다”면서도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 열망과 여러 동지의 헌신을 저버리고 불통과 독단, 비선의 정치로 탄핵이라는 불행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 고문은 “박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통절한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깨끗한 보수, 따듯한 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이 오늘 새 출발을 한다”며 “바른정당은 거짓된 약속, 거짓된 생각으로 나라를 망치는 패권 세력을 극복하고, 참된 약속과 참된 생각을 실천하는 정치를 보여 드리고,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정당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후 바른정당은 탄핵 기각시 전원 총사퇴라는 배수진을 치며 탄핵 주도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 지난 1월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국민 분열 부추기는 주군과 부역자들


반면,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은 탄핵심판에서 노골적인 시간 끌기를 시도했고, 윤상현·조원진·김진태 의원 등 자유한국당 내 강성 친박들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헌법재판소를 폄하하면서 국민 분열을 부추겼다.


아울러 이들은 탄핵심판 선고 이틀 전인 지난 8일에는 탄핵 기각·각하에 찬성하는 탄원서에 한국당 소속 의원 60여명의 서명을 받아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 10일 오전 11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의 일련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고,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했다.


탄핵을 주도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탄핵 기각시 전원 총사퇴라는 바른정당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폐위된 박 전 대통령과 강성 친박들은 헌재 결정에 불복을 시사했다.


1476일 만에 청와대에서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은 민경욱 의원의 대독을 통해 “모든 결과에 대해 제가 안고 가겠다”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사실상 헌재 결정에 불복하겠다는 의사로 해석되고 있다.


김진태 의원도 박 전 대통령 사저 복귀 다음날인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결정은 법리를 무시한 정치판결”이라며 “헌법을 지켜야 할 헌재가 오히려 헌법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인지 묻는다면,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가셨기 때문에 이미 승복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헌재 결정에 동의하고 재판관들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사실상 불복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마녀사냥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고영태 일당을 구속하고 이 사건의 숨겨진 민낯을 보고, 그래야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승복이 가능하다”며 헌재의 결정을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정론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지키지 않고 정치적 선고를 했다며 탄핵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헌법(憲法)은 국가 통치제제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국가의 구성과 조직, 작용 및 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적 원칙을 규정한 근본법이며 최고의 수권법이다.


이런 헌법을 다루는 기관인 헌재의 재판관 8명 전원이 파면을 선고했음에도 박 전 대통령과 친박들이 헌재의 결정에 반박하고 불복하는 것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근본 규범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지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헌재 판결을 겸허히 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헌재의 세종시 수도 이전 위헌 결정에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며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못을 확인했을 때는 고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말했던 박 전 대통령이 지금은 자신 스스로가 헌법에 도전하고 있으며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MS “승복했다면 관용” 아쉬움


불복 움직임…침묵하는 인명진


승복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모든 결과에 대해 제가 안고 가겠다’며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파면이라는 한 획을 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아마도 동정여론이 일었을 것이란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바른정당 김무성 고문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당 확대중진회의에서 “청와대를 떠난 박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에 승복하고, 국민들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고, 억울한 점은 검찰 수사 및 재판에서 이해를 구하겠다고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랬다면)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은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분열된 우리 사회의 화해와 대통합을 위해 불구속 수사와 관용을 호소하면서, 상처 입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두 동강 난 나라를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고문의 이 같은 언급은 박 전 대통령이 승복을 내비쳤다면, 바른정당이 나서서 국민들과 정치권에 관용을 호소했을 것이란 것.


▲ 김무성(왼쪽) 의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확대중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유승민 의원.

이렇게 됐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여론이 일면서 흩어진 보수층의 재결집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 강성 친박들이 헌재 결정에 불복하면서 동정여론으로 인한 보수층 재결집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다기보다 검찰 수사에 대비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향후 검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메시지를 내놓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불복이 아니라 향후 검찰 수사 및 재판에 대비한 메시지였다면 ‘헌재 결정에 동의 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인다’라는 정도의 메시지를 내놨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와해…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자유한국당?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들의 불복이 한국당 2차 탈당을 촉발 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법치국가의 기본 규범을 부정하고, 또 민심과도 동떨어진 불복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한국당 내 비주류 인사들에게 반감을 사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 전 대통령 지지층 등 일부 극우 세력을 제외하고 보수층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한 계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과 친박의 불복은 보수층의 이탈과 중도·진보층 결집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불복은 조기 대선에도 악재로 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5월 9일 유력시 되는 대선에서 한국당 대선후보가 독자적인 힘으로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따라서 한국당은 완전히 색깔이 다른 제1야당과 정의당을 제외하고, 국민의당·바른정당 등과 개헌 또는 연정을 고리로 연대를 해야만 그나마 곁불이라도 쬘 수 있는데, 박 전 대통령과 친박들이 국가의 근본이 되는 헌법을 부정하는 마당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연대를 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한국당은 40년 지기와 국정을 농단한 대가로 폐위된 박 전 대통령과 같이 헌법을 부정한 대가로 ‘와해(瓦解-조직이나 계획 따위가 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짐)’라는 파멸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르겠다.


당 지도부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염두에 두고 예비경선을 거지지 않고 본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특례규정을 적용하면서, 당 대선주자들이 경선불참을 시사하며 반발하는 등 벌써부터 와해 조짐이 일고 있다.


▲ 자유한국당 김문수(왼쪽부터) 전 경기지사,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불공정 경선을 거부하고 후보를 뽑는 당원의 주권은 투표를 통해 확실하게 구현되어야 한다며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규칙은 그런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전했다.

폐위된 주군 보좌 나서는 친박


이런 가운데 친박 맏형 서청원 의원과 좌장 최경환 의원이 박 전 대통령 보좌 총괄을 맡고, 친박 핵심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이 정무, 김진태 의원이 법률, 박대출 의원이 수행, 민경욱 의원이 언론을 담당하는 등 친박들이 조직적으로 불복에 나설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채, 헌법을 부정하고 헌법에 도전하는 박 전 대통령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이 당론”이라고 밝혔다.


헌재 결정 존중을 당론으로 정했다면 당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친박들을 징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런 인 위원장을 향해 겉으로는 친박 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친박의 바람막이가 돼, 친박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당인지, 아니면 폐위된 박 전 대통령만을 대변하는 박근혜 사당인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진지한 고민 끝에 정답을 찾았다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정답을 알면서도 정치적 안위와 사리사욕을 위해 오답으로 일관한다면 구제불능이란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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