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난데없이 ‘야누스’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야누스(Janus)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門)의 수호신으로, 두 얼굴을 지닌 모습에 빗대어 이중적인 사람을 지칭한다.


정치권, 특히 범(凡)보수진영에서 야누스가 입에 오르내린 데에는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과 바른정당 김무성 고문 간에 설전으로부터 촉발됐다.


먼저 인 비대위원장이 바른정당을 향해 시비를 걸면서부터 설전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지난 21일 인 위원장은 인천 남동구청에서 개최된 당원연수에서 “정치도 사람이 먼저 된 다음에 바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도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가서 무슨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바른정당이라고 지으면 바른정치가 되는 것이냐”며 포문을 열었다.


인 위원장은 이어 “그 중에는 자기 아버지 때부터 우리 당에서 혜택을 보고 영화를 누리던 사람도 있다”며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우리당을 그렇게 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는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 선대 때부터 보수당에서 정치활동을 한 바른정당 의원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무대의 반격


인 위원장이 바른정당 향해 포문을 열자, 바른정당에서는 당 고문인 김무성 고문이 나섰다.


김 고문은 지난 2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성직자인 인 목사가 검은 바다와 같은 정치권에서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성 정치권보다 더 저급하고 날선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 목사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한 강한 비판을 많이 해왔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하지만 전 국민의 찬성하는 탄핵에 대해 (인 비대위원장은)외면하고 박 대통령을 보호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 비대위원장이)정의감에 불타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바른정당에 대해 너무 심한 비판을 하는 것을 참다가 말한다”며 “인 목사는 최순실 사태 초기 저와 가까운 지인들에게 연일 ‘김무성 대표는 왜 그대로 (새누리당에)머무르고 있냐, 당장 탈당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수차례 전해 들었는데, 이런 두 얼굴의 인 목사는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고문의 이 같은 언급은 과거에 누구보다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앞장서왔던 인 위원장이 현재는 국민의 뜻을 외면하며 박 대통령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행태를 이중적 작태라 비난한 것이다.


▲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 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과거 박근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왔으나 이젠 보호하려고 한다”며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직자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당장 교회로 돌아가라”고 덧붙였다.

朴 비판과 비난 서슴지 않았던 인명진


김 고문의 주장대로 인 위원장은 그동안 박 대통령을 향해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않아왔다.


지난 대선 당시인 2012년 7월 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수신문까지 모든 신문이 다 불통이라고 하는데, 대선 후보 출정직 대담 중 ‘나는 불통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문제는 소통”이라며 박 대통령의 불통을 강력 비판한 바 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이 터지면서 시국이 어수선했던 2014년 12월 17일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을 보면 많은 약속이 안 지켜지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는 없어졌고, 100% 대한민국을 말했지만 국론분열과 갈등은 더 심해졌다. ‘명박산성’보다 두터운 소통장벽이 생겼다”며 국론분열과 불통을 문제 삼았다.


‘박근혜 정부가 잘한 건 없나’라는 질문에는 “허허. 참 생각이 잘 안 난다. 외국 다니며 품위 있는 옷을 입은 건 잘하신 것 같다”며 옷 잘 입은 것 외에 잘한 게 없다고 평가했다.


당시 인 위원장이 그나마 칭찬한 의상은 나중에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지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박 대통령 40년 지기인 최순실이 직접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2월 29일 tbs교통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는 박 대통령의 집권 2년에 대해서는 “정말 여론조사상에 나타난 것만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지나간 2년차 국민들에게 만족할만한 그런 정치를 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저평가했다.


인 위원장은 지난해 4·13총선 참패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2016년 7월 17일 공개된 총선 백서에 따르면 인 위원장은 “공천 과정에서 이한구 위원장이 보여준 오만함, 공천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정말 개판이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자기 사람을 내리꽂고 현 정부의 장차관들이 대구로 우르르 몰려가는 걸 보면서 국민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걱정하게 됐다”고 박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대통령 눈치 보지 말고 강력한 개혁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서로 붙잡고 엉켜 있는 한 다음 대선은 어렵고 대통령은 결국 탈당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했다.


인 위원장의 비판에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할리도 만무했지만, 인 위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자유한국당은 현재도 박 대통령을 출당시키지 않고 있다.


탄핵을 앞둔 상황에서는 박 대통령의 처벌을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인 위원장은 “검찰과 특검이 수사해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혐의가 드러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박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다만 어떻게 물러나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 할 때다”라며 나라를 위해선 박 대통령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이와 같이 박근혜 정부 내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거침없는 쓴 소리를 내뱉으며, ‘새누리당은 없어져야 할 정당’, ‘비대위원장 제의가 와도 맡지 않을 것’이라던 인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꿔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당이 되도록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며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비대위원장 제의가 와도 맡지 않을 것이라던 성직자인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공동대표직을 사임하고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인 위원장을 영구제명 시켰다.


경실련은 보도자료를 통해 “현직 공동대표가 회원들과 어떤 상의도 없이 국기 문란·국정농단의 책임을 지고 해체돼야 할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장을 수락한 행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으니, 인 위원장의 이중적 행태를 꼬집는 야누스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는 반응이다.


▲ 지난해 12월 23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인명진 목사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인 위원장은 자신을 겨냥한 야누스라는 비판에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선한 야누스고, 잘못 변하는 나쁜 야누스도 있다”며 자신은 선한 야누스, 김무성 고문을 나쁜 야누스라고 되받아쳤다.


집권여당 대표였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자, 자신의 오랜 꿈인 대선출마를 접음과 동시에 탄핵을 주도한 김무성 고문.


그동안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으면서 비대위원장직 제의가 와도 맡지 않겠다고 주장했다가, 현재는 박 대통령 옹호와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수장인 인명진 위원장.


김 고문과 인 위원장, 둘 중에 누가 선한 야누스고 나쁜 야누스일까.


물론 인 위원장도 비대위원장직을 맡은 초기에는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 등 당 쇄신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박근혜 정부와 집권여당, 친박들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던 ‘인명진 목사’는 온데간데없고, 태극기집회 선동으로 대한민국을 갈라놓고 있는 자유한국당 수장 ‘인명진’만 남아있다.


줄 세우기 독재


이런 가운데 당내에서도 인 위원장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반성문과 위임장, 국회의원 배지 수거 등 충성맹세를 요구했던 것은 서청원 대표(의원)와의 충돌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며 “(서청원·최경환·윤상현 당원권 정지)인적 쇄신도 사실상 보여주기식과 줄 세우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진태·윤상현·김문수 등 당내 인사들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면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사실상 인 위원장이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당초 국민께 회초리를 맞기 위해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버스투어도 어느새 반성이란 문구를 쏙 빼버렸다”며 쇄신은커녕 그냥 친박당의 연장선상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더 나아가 “보여주기식 쇄신은 잠깐이고, 가끔 언성을 높이거나 독설에 가까운 언행을 할 때마다 서 대표(서청원 의원)의 말대로 제왕적 독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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