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이어 “블루리스트?”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이어 교육계 블루리스트에도 청와대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문화·예술계 내 진보성향 인사나 단체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된 이른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핵심 인물로 특검에 지목되며 결국 구속됐다.


이 같은 특정 인사·단체 등에 부당한 영향을 끼친 ‘리스트’의 존재가 문화·예술계를 넘어 교육계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의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달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이화여대 사태로부터 촉발된 비선에 의한 교육농단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교육계 전반에 불안감은 증폭됐고, 특히 국공립대학의 총장 관련 비정상적 정부 운영에 국민들의 의구심 역시 커져만 갔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속 김 전 실장의 ‘교육부=공격수’란 표현이 의도한 대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총장 직선제 폐지, 전교조 법외노조화 결정 등 교육계 내 의견이 분분했던 정책들이 청와대 개입으로 일사천리 진행된 정황들은 이미 언론에 의해 여러 차례 포착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부산대·경북대학교 등 국공립대학 총장 임명 과정과 공석 사태를 포함해 청와대가 최근 세월호 집회에 참가하는 등 이른바 진보성향 교사들을 훈·포장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문화·예술계에 이어 교육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장휘국, “블랙리스트 교육계에도 있는 듯”
국공립대 총장 공백 사태 지금까지 지속


지난 2일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작년 하반기 정년퇴임 교원들에게 주는 훈·포장을 시국선언을 이유로 안 주더니 이번(2월 말 퇴임)에도 시국선언을 이유로 안 주겠다고 한다”며 “40여 년 간 평생을 교육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주는 훈·포장인데 너무 섭섭하고 서글프고 화가 난다.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매년 교육부는 정년·명예퇴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훈·포장을 수여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교사들의 탈락 이유로 교육부가 내세운 이유는 정치중립 의무 위반이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와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 등을 해온 교사들이 교육부 배제 명단에 오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교육부 공적심사위원회는 오는 8일 즈음 관련 회의를 열어 훈·포장 수여 대상자를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훈·포장 대상 명단 배제와 관련, 이들 교사의 시국선언 참가는 불법 단체행동으로, 앞서 이들을 징계 요구한 일선 교육청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결국 훈·포장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 같은 방침에 교육현장에서의 반발은 장 교육감의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는 교육계에도 있고, 아직도 적용되는 듯하다”는 말로 대변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교육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일부 정치권·교육청 등에선 그간 있어온 이른바 ‘교육계 블랙리스트’ 존재를 더욱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에 대한 교육부의 훈·포장 대상 제외 결정을 두고 일각에선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의 양심적인 행동을 제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장휘국(사진) 광주시교육감이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세월호 등 관련 활동을 해온 진보성향 교원들이 정부의 훈포장 수여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해 "교육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는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일부 시·도교육청 등은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훈·포장 수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교육계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심을 산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현재 특검팀에 관련 수사를 요청하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따르면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이 추천한 훈·포장 대상 교원 중 시국선언 참여 리스트에 오른 95명을 제외했다.


훈포장 제외자는 서울시교육청 소속이 35명으로 가장 많고, 전북 26명, 전남 9명, 경기 7명, 충남 6명, 경남 5명, 광주 4명, 충북 2명, 세종 1명 등으로 나타난 가운데, 아직 집계되지 않은 교육청까지 포함하게 되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계 관계자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된 기본권 중 하나”라며 “교원의 훈·포장 수여는 법령과 절차에 명시된 바에 따라 근속 기간에 맞춰 이뤄져야 할 부분임에도,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사율 교수, 교육계 ‘블루리스트’ 의혹 제기


‘교육계 블랙리스트’ 관련 또 다른 화두는 국공립대 총장 공석 사태다. 앞서 김사율 경북대 교수가 명명한 ‘블루리스트’로 표현되는 해당 의혹은 특검에 수사가 의뢰된 상태다.


우선 국공립대 총장 임명 절차는 일반적으로 대학 측에서 총장 후보자를 선정해 검증하고 이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1·2순위 후보를 교육부에 추천한다. 이어 이 중 교육부가 한 사람을 임용 제청하면 대통령이 재가하는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임용된다.


하지만 앞선 정권과 달리 박근혜 정부 들어 이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의 재가가 이뤄지지 않거나 이뤄진다 해도 대학 측 추천 인사가 아닌 2순위 후보자를 총장에 임명하는 등 이례적 행보가 끊이질 않았다.


이미 지난해부터 계속돼온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전국 41개 국공립대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이하 국교련)’에 따르면 현재 교육부가 최종 확인하지 않아 국공립대 총장 공석 사태가 3개월에서 최장 35개월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편, 서울대와 경북대 등 6개교에선 미약한 근거로 2순위 후보자가 1순위를 제치고 총장으로 임용됐다.


특히 국립 방송통신대의 경우 2년 넘게 총장이 공석인 상태로 현재 김외숙 직무대리가 학교를 이끌고 있는 가운데, 앞서 1순위로 선출됐지만 임용 제청을 거부당한 일부 총장 후보자들은 현재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한 순천대와 충남대, 경북대, 한국해양대 등은 2순위 후보자가 최종 총장으로 임용 제청됨에 따라 해당 대학 구성원들이 반발하는 등 갈등을 겪기도 했다.


교육시민사회는 이 같은 정황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을 것이란 의심을 강하게 하고 있다.


이른바 교육계 ‘블루리스트’ 의혹을 제기한 김사율 경북대 교수는 앞서 ‘충성 각서’를 요구받았다고 밝혀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영혼 없는 딸랑이가 돼서 학생들을 지도할 순 없었다”며 당시 경북대 총장 후보 1순위였던 자신에게 동료 교수가 접근해 앞서 정부를 비판한 전력을 문제 삼아 이를 반성하는 각서를 쓰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고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북대 총장은 김 교수 대신 당시 2순위 후보자에게 돌아간 바 있다.


교육부, 총장 간선제 유도…부산대 충돌 사례
김기춘, 문화예술계 이어 교육계 개입했나?


또한 부산대 역시 직선제로 선출된 현 총장이 정부로부터 총장 임명을 받기 위해 박 대통령을 지지한 사실을 알리며 김 전 실장 등 정치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해 5월 전호환 부산대 총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그간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 도입을 유도한 교육부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전 총장은 직선제로 선출된 후보자였으며 당시 교육계 역시 ‘의외’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전 총장이 김 전 실장에게 ‘읍소’한 문건이 뒤늦게 알려지며 교육계에 파문이 일었다.


해당 문건엔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 부산시 700여 명 교수 서명 지원으로 현 정부 출범에 기여,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대학정책 추진에 적극 동참하고 있음’이란 전 총장의 친정부 성향 관련 기록이 발견됐다.


이를 두고 교육계 일각에선 직선제 폐지를 압박한 교육부가 직선제 선출 총장을 임명한 배후엔 청와대 개입이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고 김영한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김 전 실장의 ‘교육계 휘어잡기’ 시도는 더욱 구체화된다.


시민사회, “특검팀, 교육계 ‘블랙리스트’ 문제 수사에 나서야”


▲ 박근혜 정부 들어 국공립대학에서 총장 공석 사태가 빚어지거나 총장 임명 과정에서 2순위 후보자가 낙점되는 등 비정상적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정황을 토대로 최근 시민사회에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일환으로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김사열 교수 등이 포함된 국립대자율성확립대책위원회는 국공립대 총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을 제기하며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김 전 실장은 물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특검팀에 고발했다.


이들은 “부산대에 직선제를 금지한 교육부의 방침과 달리 직선 총장을 임명하고, 한국체대에서는 다섯 차례나 총장 선거를 치르게 해 행정 공백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국교수노조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육 시민단체 18곳은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달 성명을 내고 관련 의혹 제기에 동참했다.


이들은 최근 “교육계에 총장 임명권을 가진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청와대 실세들이 개입해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를 걸러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수년 간 대학 구성원들이 합법적 절차로 추천한 총장에 대해 교육부가 그 사유도 밝히지 않고 임명제청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며 “국·공립대학의 총장들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앉히고 대학을 길들이려 했던 속셈”이라고 비판하면서 특검 수사를 촉구했다.


청와대의 부당한 교육계 개입 의혹은 앞서 이화여대 사태를 통해 상당 부분 입증된 바 있다.


교육부 특별감사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난 이화여대의 ‘비선’ 특혜 의혹이 교육농단으로 불리며 업계 전체에 충격을 안긴 가운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또한 그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면서 교육 현장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김기춘(사진)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교육부를 공격수로 표현하는 등 문화예술계에 이어, 교육계 역시 사상 통제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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