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꺾을 보수표심 누가 챙기나?…‘김무성 등판론’ 재조명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패권세력’ 대항 연대체제인 이른바 제3지대의 핵심이 될 것이란 기대가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정치 초년생의 면모를 감추지 못하고 잦은 실수연발, 자신의 거취문제와 관련 지나친 ‘간보기’ 등으로 지지율만 급속히 깎아먹다 대선출마선언 3주 만에 불출마 입장을 밝히게 된 것.


예상보다 쉽게 무너진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대선지형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지지율 2위를 차지했던 반기문의 지지층의 향방에서부터 강력한 대선주자의 부재를 맞은 범(凡) 보수권의 활로모색 시나리오 등 ‘돌발사고’에 정치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불러온 대선판세의 변화를 집중 분석해봤다.


‘지나친 간보기&3지대 주도욕심’…‘몸값붕괴’ 자초


보수표심 되찾기 ‘촛불변질 노림수’…‘역풍’만 가득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정치권 초년생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전격적으로 대선불출마를 선언, 정치권 판세에 돌발사고를 냈다.


반 전 총장은 1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밝혔으며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개탄,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사실상 정치권 일각에선 이미 예견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중순 정치행보를 시작한 이래 ‘정치인’이라면 갖춰야할 기초적인 부분조차 빈틈을 보이며 실수를 연발했다. 아울러 자신의 거취문제 등 선택이 필요한 순간마다 얻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해 실익은 취하지 못하고 연일 지지율만 깎아먹었다.


전월 12일 대선주자로서의 움직임을 본격화 하자마자 생수·턱받이·퇴주잔 논란, ‘청년들 할 일 없으면 해외자원봉사’실언, 위안부 관련 질의 기자들에 ‘나쁜X들’ 감정적 대응 등 1일 1실수 퍼레이드를 만들어내 온 것. 점입가경으로 선거 경험이 부족한 반 전 총장 캠프 측은 이를 공략하는 정당들의 공략에 변변한 방어 한 번 해주지 못해 반 전 총장은 늘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반 전 총장에겐 정치 신인으로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구도에 있는 정적(政敵)들로부터의 공격을 방비해 줄 정당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선 일찌감치 제기 돼 왔다. 다만 반 전 총장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모든 표심을 한꺼번에 얻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여권과 야권, 제3지대 등을 모두 기웃거리며 이른바 ‘간 보기’ 전략을 지나치게 지속해 자승자박이 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반기문 보수층 표심회복 무리수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세를 타며 주저앉았다. 전월 30일 실시된 세계일보 창간 28주년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기준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13.1%로 1위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32.8%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 전 총장의 주요 지지층으로 평가되는 보수층의 표심이 8.3%의 지지율을 기록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로 넘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반 전 총장은 동월 31일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보수층 표심을 회복하기 위해 “광장의 민심이 초기의 순수한 뜻 보다는 약간 변질된 면도 없지 않다”며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참여해 보겠다’던 기존의 호의적 입장을 급격히 선회해 여야의 경계가 없는 질타세례를 받았다.


특히 “제가 촛불집회 현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TV화면을 보니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발언한 부분은 뚜렷한 근거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기한 주장임을 반증해 논란을 확장시켰다.


반 전 총장은 또한 이날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을 향해 개헌협의체 구성 제의’를 했다. 반 전 총장은 ‘개헌’의 필요성은 언급한 적 있지만 이를 주도했던 적은 없다. 즉, 명분 자체도 부족했을 뿐더러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이미 가동 중인 상황에서의 뒤늦은 언급이었다.


결국 반 전 총장의 제안은 개헌에 대한 진정성 없이, 이를 매개로 반문재인 연대의 주도권을 거머쥐겠다는 정략적 의도만 있었던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야만 했다. 유의미한 반향을 일으키기는커녕 비난 먹구름만 잔뜩 몰고 오는 무리수만 연출한 것이다.


예견된 중도하차?


반 전 총장의 행보가 이렇듯 시작부터 삐걱대 온 것과 관련 정치권에선 반 전 총장의 불출마를 미리부터 점치는 인사들이 상당수 존재해왔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전월 18일 전북 전주 전북도의회 기자간담회를 통해 “(반 전 총장은) 설이 지나면 대선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한 때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던 박지원 대표도 이튿날(19일) “현재 이런 상태로 (반 전 총장의 행보가) 지속된다고 하면 (대선 완주는)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고 전망했다.


동월 23일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전남도당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재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이길 자신이 있다”고 발언, 사실상 반 전 총장을 무의미한 경쟁상대로 폄하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재명 성남시장은 “설 지나면 집에 갈 듯”, 남경필 경기지사 캠프의 정두언 총괄본부장은 “이 대로면 종쳤다”고 표현하는 등 반 전 총장의 몰락은 이곳저곳에서 불거져왔다.


潘 ‘조각난 지지율’…‘보수·중도 표심’ 향방 어디로?


‘비문(非文)연대’ 보수표심 확보가능?…MS 재등판?


제3지대 적색경보 <왜>


당초 정치권에서 떠오른 전 총장에 대한 기대는 패권주의에 대항할 구심점 혹은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이었다. 즉, 제3지대의 핵심으로 주목받았던 것.


제3지대는 박근혜 정권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의 근본원인으로 친박 패권주의를 꼽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한 개헌 연대, 이른바 ‘빅텐트론’을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선 정파 및 계파를 초월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고 이에 보수와 진보를 매개할 수 있는 인물 또는 세력의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


더 나아가 ‘대선승리’라는 최종목적까지 고려했을 때 반 전 총장에겐 현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갈 곳을 잃은 보수표심을 끌어 모을 것이 요구됐다.


현재 지지율1위로 독주하고 있는 친문 패권주의 아이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제3지대가 꺾기 위해선 보수표심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3지대 주요인사인 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전월 30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모든 걸 금 긋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며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보수표가 60%정도 되는 데 보수를 다 제쳐버리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보수표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때 뉴DJP론으로도 회자되며 기대감을 모았던 반 전 총장은 좌고우면만 반복하다 연일 지지율 하락만 자초한 것. 국민의당 등 제3지대 일부로부터 ‘셔터를 내렸다’등의 입장을 들으며 냉대를 당했고 종국엔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졌다.


비문(非文)연대 ‘보수표심 확보’ 특명


제3지대 보수표심의 핵심이던 반 전 총장이 없어진 상황에서 차기 보수표심을 끌어올 역할은 바른정당이 몫이 됐다. 다만 현재 당내 후보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출마하기 오래 전부터 이러한 입장을 피력해왔음에도 한 자릿수 지지율을 답보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표심을 흡수하게 되면 좀 더 높은 지지율을 확보할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녹록치 않다.


현재 보수표심은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나온 매일경제-리얼미터, JTBC-리얼미터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미 황 대행은 10%지지율을 돌파했으며, 차기 보수표 지분 흡수율 역시 가장 높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황 대행은 제3지대에 포함될 수 있는 후보가 아니다. 친박 패권주의의 연장선에 있다는 이미지로 반 패권주의 연대를 자처하는 제3지대와 입장이 극명히 상반돼 명분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 대행이 새누리당의 후보로 출마선언을 하게 된다면, 바른정당이 보수표심 경쟁에서 뒤쳐질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황 대행은 아직 대선후보로서 출마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아울러 대통령이 탄핵된 정국 속에 해당 정권의 각료신분이었다는 책임론과 반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정치 경험이 없다는 자질 지적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은 황 대행을 적극적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출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대권의 욕심은 차치하더라도 불임정당의 오명을 벗고 이미지를 쇄신해 차후 대선 정국에서 기사회생해야 한다는 목적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YTN ‘호준석의 뉴스人’에 나와 “황 대행이 문 전 대표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 “많은 국민들이 황 대행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하는 등 황교안 띄우기에 나섰다.


인 위원장은 “황 권한대행의 출마는 개인의 정치적 판단이다. 주변에서 ‘적합하다’, ‘적합하지 않다’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며 항간의 황교안 불출마 주장에 대해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라고 견제하기도 했다.


그는 황 대행 옹립과 관련해선 “지금은 권한대행이란 막중한 책임을 맡은 분에게 ‘우리당 오세요’라고 말하긴 어렵다. 자제해야 할 일”이라고 소폭 거리를 뒀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황 대행이 출마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 이후 출마선언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만큼 옹립 시기가 되기도 전부터 미리 러브콜을 날려 야권의 공격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황 대행이 새누리당의 후보가 될 경우 보수표심 경쟁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바른정당은 보수표 획득이라는 책임을 완수하지 못해 제3지대에서 조차 외면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위기감 때문에 김무성 오세훈 등의 재등판론도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보수 후보 부재…김무성 재등판론 점화


특히 현 정부 출범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겠다며 자신의 불출마 선언을 통해 박 대통령 탄핵정국을 점화시킨 김무성 고문의 재등판론이 탄력을 받고 있다. 김 고문 본인은 재등판설에 대해 선을 긋고 있지만 주변에서 그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정병국 대표는 2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어제 일반 국민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 김무성 전 대표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국민적 여론이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정당 김성태 사무총장도 <본지>와 통화에서 “김 의원의 재등판론과 관련해 아직까지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그야말로 진정성으로 보여주지 않았느냐, 탄핵 카드를 제시하고 바른정당 창당까지 이끈 사람이 김무성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놓았다”면서 “당장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민들이 원하면 다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재등판론이 확산되는 것은 김 고문의 ‘대외 확장적 가치’ 때문”이라며 “(김 고문은) 박지원 등 제3지대 (인사)와도 교류가 활발했었고, 과거 새누리당 비박계 수장으로서 (새누리) 탈당 보류자들에게도 말이 잘 먹힐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바른정당에게 필요한 후보는, 제3지대와의 연대조율과정을 원만히 처리할 수 있고, 반 전 총장의 향후 행보를 보며 탈당을 저울질 했던 새누리 당내 인사들을 끌어와 규합하는 측면에도 부합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가장 적합한 인물로 김 고문이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중도표심 흡수…‘쌍 安’ 부각


한편, 반 전 총장의 중도표심을 흡수할 대선주자로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꼽히고 있다.


YTN의 전월 31일~2일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반 전 총장 불출마 이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3~4위를 경쟁하던 안 지사는 12.3%를 기록하며 33.1%인 문 전 대표에 이은 2등까지 치고 올라갔다.


지역 기반의 이점 때문에 반 전 총장에게 쏠렸던 충청민심이 안 지사에게 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문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일부 진보 유권자들의 표심이 강력한 보수후보의 부재로 좀 더 다양한 진보 후보들로 분산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는 2일 이러한 추세를 인식한 듯 기자간담회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고 여야 공동정부 구성을 골자로 한 ‘대연정’을 내세웠다. 중도층 민심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충남도정을 이끌면서도 도의회의 극단적인 여소야대 지형에서 잘 이끌어온 경험이 있다”고 자신감도 피력했다.


그간 지지율 답보상태에 있던 국민의당 안 전 대표도 9.2%를 기록하며 4위에 안착했다. 중도층 표심이 안 전 대표 쪽으로도 일부 흘러들어온 모습이다.


안 전 대표는 ‘빅텐트론’을 내세워 국민주권개혁회의 손학규 의장, 동반성장연구소 정운찬 이사장 등과 원만한 연대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스몰 텐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지만 텐트가 펼쳐지기만 한다면 중도표심 흡수량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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