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소통은 뒷전’ 실패한 '박근혜 정부 외교'

▲ 한일 정부 간 맺은 '위안부 합의'에 대한 철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소녀상 설치 관련 발언 이후 시민사회 일각에선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란 자조섞인 말이 나오는 등 한국 외교에 대한 국민 불신감은 최근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지난해 말 발생한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탄핵 국면을 맞이함에 따라 한국 외교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 따라 외교의 컨트롤 타워 부재 상황이 초래됐고, 이는 고스란히 국격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면서 양국 정부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순실 그림자’가 외교부 사업에까지 드리운 정황도 포착됐다.


동아시아의 끝자락, 한반도란 지정학적 위치에 국제적 역학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내 정세 역시 최악의 상태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은 더욱 요동치고 있다.


이달 출범한 트럼프 신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천명과 중국과의 사드 갈등, 대(對)일본 외교 갈등 등 동시다발적 난제들이 새해 벽두 한국 외교를 압박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일본, 소녀상 현안을 독도 문제로 “의도는?”
‘사드 문제’ 중국, ‘한한령(限韓令)’ 본격화


먼저 한국 외교는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한·일 정부 간 독도 소녀상 설치를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일본은 수차례에 걸쳐 감정적 언행으로 한국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일본 사회 지도층 인사의 ‘적반하장’ 식 비판은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란 결론으로 도출, 소녀상을 독도 문제로 확전시키려는 의도로 이어졌고 주한대사의 일본 소환, 아베 내각의‘통화 스와프’ 정책 철회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대응에도 컨트롤 타워 부재로 인해 국내 외교는 갈팡질팡 헛발질만 연신 해대는 양상이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처한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소녀상’ 설치 문제에 대해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보고에서 “국제사회에서 영사관 앞에 시설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국제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밝혀 피해자 할머니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 윤병세(사진) 외무부 장관은 소녀상 설치 문제와 관련, "국제사회에서 영사관 앞에 시설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국제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은 성명을 통해 “윤병세 장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 장관인가?”라며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성격도 애매한 10억 엔을 받자고 일본에 자존심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시민들이 뜻을 모아 만든 소녀상을 문제시하는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어 이들은 “윤병세 장관의 발언은 반성 없는 일본에 오히려 외교적 공세 구실이 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최근 주한 일본대사 본국 소환 및 통화스와프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게다가 일본 언론은 ‘10억 엔을 보이스피싱 당했다’는 얘기를 쏟아내며 한국과 피해자를 능욕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10억 엔으로 자신들의 모든 악행이 면죄부 받은 것처럼 도리어 한국 정부에 압박을 넣고 있음에도 항의는커녕 아무 조치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꼴”이라면서 “아니나 다를까 최근 일본 정부는 윤장관의 발언을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일본과의 외교 마찰은 이외에도 쓰시마 사찰 도난 불상의 충남 부석사 인도 문제를 비롯해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 기재 교과서 신학습지도요령, 동해 표기 문제를 논의할 국제수로기구(IHO) 총회 등 양국 간 민감한 사안들이 줄지어 예고돼 있는 상태다.

美 트럼프 행정부 출범·中 사드배치 문제…동아시아 주도권 쟁탈전 심화


▲ 미국 내 역대 최저 지지율로 출범한 트럼부 신행정부의 향후 행보에 그간 우호적이었던 한미관계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의 공식적 부인에도 국내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외교 갈등 역시 증폭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탄핵 정국 이전 국가 외교정책이 ‘친중’에서 급격히 ‘반중’으로 돌아선 이후, 중국 측의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에서 꺼내든 ‘사드 배치’ 카드는 중국이 가장 꺼린 선택지 중 하나였고 이후 대중 관계는 급격히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즉각 중국은 한류 연예인 출연 금지를 비롯해 롯데그룹 세무 조사, 한국산 전기차 배터리 규제, 조수미 공연 취소 등 전 방위적으로 한국 압박에 나섰고 양국은 지금까지 관계회복에 요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앞서 양국 간 관계를 ‘최상의 한·중 관계’라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보호무역주의 등 ‘미국 우선주의’를 표명한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에 한-중-일 간 동아시아 패권 싸움에도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 대전시 한 평화의 소녀상이 군복 차림의 모습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일본 극우성향 인사들의 소녀상 관련 비정상적 언행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려졌다.

트럼프 시대가 열린 이후 그간 우호적이었던 한미관계가 급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보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행보를 잇는 다음 타깃은 한미 FTA 재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무임승차론’ 등을 이유로 한국과 일본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임에도 설상가상 최근 외교 사업에 ‘최순실’이란 비선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국민 신뢰는 더욱 추락하고 있다.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현직 대사로는 2번째 소환 조사를 시작하면서 ‘최순실 그림자’가 사실상 외교에까지 드리워진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특검팀은 외교부의 ODA사업 일환인 ‘미얀마 K타운 사업’ 관련,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특히 ‘비선’ 최순실의 입김이 해당 사업에 작용했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가 소환된 데 이어 이번 유 대사의 특검 조사로 한국 외교가 역량 면에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란 전망이 중론이다.


‘비선’ 최순실, 외교부 사업에도 손 댔나?
조기대선 정국, 차기 정부 외교 ‘국민 공감' 필요


한국 외교가 이처럼 국내외적인 크나큰 도전에 직면했지만 정작 외교부 내적 역량은 정상적인 가동조차 되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 국민이 필리핀 경찰관에 납치돼 경찰청 안에서 살해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당시 외교부의 대처 역시 논란이 일었다.


외교 당국은 현지 경찰 개입을 확인한 후 주필리핀대사를 통해 외교장관, 경찰청장 등을 면담하고 윤 장관 역시 필리핀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항의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필리핀 대통령은 경찰청장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재신임 의사도 피력하는 등 우리 국민들이 납득키 어려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또한 최근 대만에선 한국 관광객들이 현지 택시기사가 준 약물을 마시고 정신을 잃은 뒤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는 대만대표부 부대표를 초치하는 수준에 그쳐 ‘저자세 외교’ 논란에도 휘말렸다.


대만대표부가 제3의 장소를 요청하자 이를 수용해 외교부 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초치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칠레 주재 한 외교관이 현지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파면된 데 이어 형사 고발되며 글로벌적 망신살을 사기도 했다.


일각에선 현재 미국 행정부의 새로운 출범과 맞물려 국제적 질서가 큰 틀에서 재편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국내 탄핵정국에 따른 리더십 공백에 따른 외교부의 혼란은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앞당겨진 차기 대선과 이를 통해 꾸려진 차기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실패한 국민적 공감을 기반으로 한 외교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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