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정 기자]‘이태원 살인사건’이 진범을 소환하는 데 무려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1997년 4월 3일 오후 9시 50분경, 홍익대생 조중필(당시 22세)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찾은 이태원 햄버거집에서 소변을 보기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그가 소변기 앞에 서고 얼마 안 있어 곧바로 조씨를 따라 미국인 10대 2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명이 접이식 칼을 손에 쥔 채 조씨의 뒤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 이유 없이 칼로 오른쪽 뒷목을 찔러댔다.


피는 화장실 벽을 향해 솟구쳤고 조씨는 돌아서서 칼질을 막으려다가 오히려 가슴팍과 왼쪽 목을 8차례 더 찔렸다. 조씨는 피범벅 상태로 화장실 벽에 고개를 기댄 채 쓰러졌다. 10대들은 달아났고 조씨는 병원 이송 중 숨을 거뒀다.


붙잡힌 범인들은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와 미군 군속의 아들 아더 존 패터슨으로 이들은 장난삼아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들 중 진범을 밝혀내는 데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다. 검찰과 법원이 엉뚱한 결론을 내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진범은 도망갔고,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부모는 세월만큼 한(恨)을 쌓아 갔다.


처음 살인범으로 지목된 건 리였다. 사건을 초동수사한 미군 범죄수사대(CID)가 패터슨을 지목했음에도 한국 검찰은 '조씨에게 반항 흔적이 없는 만큼 그를 제압할 정도로 덩치가 큰 사람이 범인'이라며 180㎝·105㎏의 리를 살인범으로 기소했다.


거짓말 탐지기로 조사하는 당시에도 리는 거짓 반응이 나왔지만 패터슨은 진실 반응을 보였다. 당시 국내엔 혈흔 분석 등의 과학수사기법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리는 살인 혐의로, 패터슨은 증거인멸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1심과 2심은 두 사람의 죄를 모두 인정해 리는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패터슨은 1심 징역 1년6월, 2심 장기 1년6월·단기 1년형을 받게 됐다.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1998년 4월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리를 무죄 판단하며 상황을 뒤집어 버렸다. 리는 1999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재수사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는 이미 미국으로 도주했다. 석방 후 검찰이 출국정지를 연장하지 않은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사건은 그로부터 10년 넘게 답보 상태였다.


2009년 10월 패터슨의 미국 소재지가 확인되며 영구미제가 될 뻔했던 사건에 해결 실마리가 보였다. 2011년 패터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체포됐고, 그해 12월 한국 검찰은 살인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패터슨은 자국에서 인신보호 청원을 제기하며 4년간 송환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양손을 포박당한 채 2015년 9월 국내로 송환됐다. 검찰은 혈흔 분석 등 새 증거를 내세우며 패터슨이 리의 부추김을 받아 조씨를 살해했다며 법정에 세웠다.


패터슨은 혐의를 부인하며 리가 진범이라고 항변했지만 1심과 2심은 검찰 구형대로 법정 최고형인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도 역시 25일 원심의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법원은 리에 대해서도 공범으로 판단했지만, 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추가 처벌은 면하게 됐다.


이날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패터슨이 죗값을 모두 치르는 데는 이제부터 20년이 걸리게 된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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