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 줄기세포 시술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안종범 업무수첩을 통해 줄기세포 관련 대통령 지시사항이 공개됐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비선 의료진’을 청와대로 불러들였다는 내용과 함께 국회의원 시절 불법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 앞서 불거진 데 이어 현재 부작용 등의 우려로 금지된 줄기세포 관련 의료행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규제를 풀라는 지시를 재임 기간 해왔다는 단서가 포착됐다.


소문만 무성하던 박 대통령의 줄기세포 규제 완화 관련 의혹은 안종범(58·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불명확한 정보출처와 부정확한 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의료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결국 국민 건강이 담보됐다는 데 대한 국민적 비난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자가줄기세포 안전성 입증, 임상실험 진입장벽 낮춰야”


최근 <시사IN> 단독보도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박 대통령은 “자가줄기세포는 안전성이 입증됐다. 임상실험 진입장벽 낮춰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확인됐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속 2016년 3월 2일 대통령 발언을 의미하는 ‘3-2-16 VIP’ 기록 중 ‘3. 신약 개발 활성화’란 제목 아래 메모가 나열돼 있다.


이 메모 가운데 ‘임상실험 진입장벽 완화-사람 대상 실험해야’, ‘자가줄기세포는 안정성 입증’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런 박 대통령의 판단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한국줄기세포학회 회장 출신인 오일환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자가줄기세포든 다른 몸에서 나온 줄기세포든 감염이나 종양 등 부작용 가능성은 동일하며, 단지 면역 거부반응이 없다는 정도만 차이가 있다”고 <시사IN>에 말했다.


이어 오 교수는 “대통령의 말은 몇 년 전 ‘알앤엘바이오’라는 업체가 주장해서 유명해진 얘기”라며 “그 업체가 자가줄기세포는 안전하다는 논리를 많이 퍼뜨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박 대통령의 불법 줄기세포 시술 의혹에 연루된 ‘알앤엘바이오’란 업체는 지난 2012년 11월 최순실로부터 700만 원 송금받은 사실이 최근 드러나며 현재 해당 의혹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상태다.


특히 ‘알앤엘바이오’ 라정찬 회장은 배임과 관세 포탈, 무허가 의약품 판매 혐의 등으로 고발돼 지난 2015년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또 다른 대통령 지시 사항을 밝히고 있다.


이 업무수첩 속 메모 중 ‘임상실험 예기치 못한 부작용 나오면→새로운 접근으로 전향적 자세로 대처’란 대목에서 설령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정책 추진을 강행하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위험관리 전문가로 정평난 황승식 인하대병원 교수(예방의학)는 <시사IN>에 “이게 정확히 줄기세포 치료 산업화를 노리는 이들의 논리이고, 예전 황우석의 논리였다”면서 “줄기세포 임상실험 부작용이라면, 심하면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로,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전향적 자세’를 가지라고 지시할 일이 아니다”라고 견해를 제시했다.


실제 현 정권의 줄기세포 정책은 매우 전향적으로 강행됐고,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줄기세포에 대한 규제 완화를 지시한 바 있다.


또한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 연이어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을 발의, 줄기세포 치료를 위한 임상시험 검증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에 대한 학계 반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사실상 정부의 청부 입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의료체계 근간 걸린 ‘원격의료’ 문제…비전문가 대통령 지시 “적절?”


현재 시민사회의 의료민영화 정책 반발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 역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1월 5일자 메모를 통해 원격의료를 ‘노인 인구 많이 사는 지역→시범 실시’를 지시한다. 이어 지난해 4월 11일엔 ‘군인 원격의료 성공’을 스스로 치켜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20일자 메모엔 원격의료에 한의학 접목을 의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구체적 방안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메모에는 ‘한의 의료기기 양의 반대’란 내용과 함께 ‘한방에 특별한 장점’을 언급하며 급기야 ‘한의 원격의료’를 제안한다.


이는 당시 의료기기 사용 권한을 둘러싸고 의학계와 한의학계 갈등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던 시기로, 원격의료 전면 시행을 위해 한의학계를 정부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시사IN>은 해석했다.


이어진 메모엔 ‘외국에 한방 엑스레이 의료기기를 진출시키자(에티오피아)’는 구체적 내용도 담겼다.


이와 관련, 황 교수는 “의료체계에 무지한 대통령이 무리한 지시를 내린 전형”이라며 “원격의료는 현 의료 시스템에 뭘 추가하는 게 아니라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문제다. 이런 정책을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비전문가인 경제수석에게 단순히 지시한다는 건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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