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미국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제압했다. 억눌렸던 백인들의 분노가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승리의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숨어있던 표’를 둘 수 있다. 이는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로존 탈퇴) 결정 투표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저학력 백인 노동자와 달리 고학력 부유층 백인 유권자들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특정 집단을 차별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무슬림 비하 발언을 일삼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은 채 투표장에 가서 트럼프를 찍은 것”으로 분석된다. 표현하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 ‘샤이 트럼프(Shy Trump)’의 역할이 주요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를 선택한 백인 유권자는 58%로 37%의 클린턴을 상회했다. 백인 유권자 비율은 지난 2000년 78%에서 2012년 71%에 이어 69%(추산)로 줄어드는 추세지만 아직은 절대 다수를 유지하고 있다. 백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주요 지지이유는 경쟁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미국의 주도세력으로 존재감을 넓히고 있는 것에 대한 반감이다.


성별의 벽 인종의 벽보다 높다?


지난 2008년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보여주며 ‘인종의 벽을 허물었다’는 찬사를 들었던 미국이지만 여성차별의 벽까지 뛰어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미국에선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1920년이 돼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1870년대에 참정권을 획득한 흑인보다 늦은 것이다. 아울러 클린턴의 경우 30년 가까이 워싱턴을 대표하는 기성 정치인으로 꼽히며 남성 위에 군림했다. 이러한 점은 자존심 강한 백인 남성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로리다는 이러한 백인들의 자존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의 주인은 백인’이라는 기치로 하나가 된 백인들의 힘은 이날 트럼프가 10만여 표 앞서며 승리하는 원동력이 됐다. 미국 언론들은 선거 하루 전까지만 해도 “히스패닉 유권자의 조기 투표율이 2008년 대비 103%나 올랐다. 클린턴의 플로리다 승리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가운데 전일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16%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던 뉴욕타임즈가 이날 “백인들의 힘이 이날 선거를 휩쓸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2008년 49개 주, 2012년 50개 주 전체의 당락을 예견한 여론조사 전문가 실버에 따르면 “클린턴이 히스패닉과 흑인 표를 버락 오바마 수준으로 끌어오지 못한 게 트럼프의 승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2년 오바마는 흑인 표 93%, 히스패닉 표 71%를 장악했지만 이번에 클린턴은 각각 88%, 65%에 머물렀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대한 지지율과 그들 부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품에 않았지만 클린턴은 그것을 온전히 자기것으로 만들 수 없었던 셈이다.


쐐기의 승부처 러스트 벨트


트럼프가 승리한 또 하나의 동력은 그간 민주당이 표를 장악했던 러스트 벨트(쇠락한 북둥부 공업지대)의 재패다. 미시간·위스콘신·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등을 장악한 것이다. 92년 대선부터 2012년 대선까지 공화당 후보는 단 한 번의 승리도 얻을 수 없었던 지역이다.


트럼프의 “당신들의 자동차 산업을 멕시코가 빼앗아갔다. 그걸 내가 되돌려주마”라는 간결하면서도 그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짚었던 그의 발언은 그의 여타 막말과 성추문의 영향력보다 컷다. 하지만 그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세상을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유권자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갈증이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이 되어 뿜어져 나왔다는 것이다. 실제 CNN방송의 출구조사 결과 선택의 기중 중 가장 큰 수치를 보인 것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38%)’이었으며, 이는 풍부한 경험(22%), 판단력(15%)등을 압도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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