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없는 단일화'…‘간기문’으로 전락 가능성↑

▲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4일 오후(현지시간) 주요20개국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중국 항저우국제전시장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의 수장에 오른 만큼, 그의 인지도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반 총장은 올해 종료되는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내년 대선정국에 뛰어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것도 집권여당의 지도부를 장악한 친박계를 등에 업고 말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친박계 대선후보로 나오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당분간 원외에 머물며 여론의 향배를 가늠하다 자신의 높은 인지도를 이용해 단일화를 추진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은 지난 대선에서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내년 대선에서 ‘반풍(潘風-반기문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내년 대선에 불어 닥칠 ‘반풍(潘風)’에 대해 전망해 봤다.


진박의 옹립‥‘포스트 박근혜’


친박 대선주자‥‘중도층’ 이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각종 여론조사 기관에서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를 할 때마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외교관 출신으로 국내 정치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반 총장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등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굳건하게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반 총장이 국내 정치인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그의 높은 인지도가 단단히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 총장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의 수장에 오른 만큼, 인지도면에서는 여타 대선주자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여기에 대선 때마다 캐스팅보트로서의 존재감만 부각됐던 충청권의 열망까지 더해지면서, 명실상부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종료되는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반 총장의 대선출마 여부가 정치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반기문과 친박의 조합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내년 대선정국에 뛰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한 반 총장은 첫 일정이었던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국가가 너무 분열돼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 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면서 “내년 1월 1일이면 한국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 때가서 고민 하겠다. 필요하면 조언도 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반 총장의 이 같은 언급은 대선 출마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물론 당시 반 총장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그의 언급은 대선 출마를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대체적이었다.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다면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계를 등에 업고, 친박 대선주자로 옹립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성향상 2인자를 두지 않는 탓에 친박계에는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 친박 핵심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형태의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하면서, 반 총장이 ‘포스트 박근혜’로 낙점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또한 지난 5월 반 총장의 방한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병기 전 비서실장 후임으로 충청권 인사인 이원종 비서실장을 발탁한 배경에도 반 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반 총장이 친박 대선주자로 옹립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렸다.


아울러 친박계와 반 총장의 연대는 지역적 조합이 좋다는 것도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친박계의 대구·경북과 반 총장의 충청권 조합으로 ‘대구·경북+충청권’ 연합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지난해 11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리 근교 르 부르제 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행사장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대화하고 있다.

친박 대권주자‥오히려 독?


이와 같이 반 총장이 친박계를 등에 업고 친박 대선주자로 옹립될 것이란 관측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 총장이 친박계 대선주자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반 총장이 친박 대선주자로 옹립될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 반 총장 측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달 15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앞서 나가고 있다”면서 “일부 친박에서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라며 ‘친박 반기문 옹립론’에 선을 그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상당수 언론은 친박 지도부가 들어선 것으로 반 총장 출마 상황이 유리해졌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우리 생각은 그렇지 않다”면서 “친박 인사들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뭘 모르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이 같은 주장은 반 총장이 친박계 뜻대로 친박 대선주자로 나서지 않을 것이란 얘기로 들린다.


이는 국민적 인지도로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패권주의에 골몰하고 있는 친박과의 연대는 오히려 반 총장에게 독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작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즉, 반 총장에게 친박 대선주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8·9전당대회와 같이 친박계 결집으로 새누리당 당내 경선은 통과할지는 몰라도 중도층의 표심 이탈로 본선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여권 안팎에서는 반 총장이 친박계의 구애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원외에서 ‘여론의 향배’ 가늠


혹독한 검증의 칼날 못 버텨


여론의 추이 관망


한편에서는 반 총장이 특정 정당에 목메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 뛰어든다면 특정 정당의 경선 통과를 목표에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출마를 강행하는 것인데, 국내 정치와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마당에 무엇이 아쉬워서 특정 정당에 입당해 힘든 경선을 치르겠나”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아마도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당분간 원외에서 여론의 추이를 가늠하다가 대선 막판에 가서야 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직후 곧바로 대선판에 뛰어들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지 않겠냐는 것.


그러다가 자신의 명성과 인지도를 이용해 여권이든 야권이든 어느 한쪽과 단일화를 시도할 것이란 예상이다.


판을 흔들었던 ‘안풍(安風)


이는 지난 대선정국에서 불어 닥쳤던 ‘안철수 열풍’과 상당 부분 비슷해 보인다.


지난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지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장직을 사퇴하면서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안 교수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른바 ‘안풍(安風)’이 불었다.


당시 안 전 대표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는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재보궐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자,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행정능력과 정치력 검증이 안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안 전 대표가 출마만 한다면 서울시장에 당선될 것이란 분위기가 감지됐다.


그러나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박원순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철수 대망론’을 형성해 나갔다.


▲ 지난 2011년 9월 6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중인 안철수(오른쪽)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로 껴안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

당시 안철수 대망론은 여야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문재인 후보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안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다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파전이 형성돼, 야권의 지지층인 20~40대의 표가 갈려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란 당초 전망과는 달리, 박근혜·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던 중도층의 지지율을 모두 안 전 대표가 흡수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안철수 대망론은 정치권을 강타했다.


‘반풍(潘風)’으로 단일화까지


이처럼 지난 대선에서의 안 전 대표와 같이 반 총장도 내년 대선에서 특정 정당에 목메지 않고 중도층의 표심을 공략하는 ‘반풍(潘風)’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나서 바로 대선판에 뛰어들기 보다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출간 등은 물론이고, 대학 강연을 통해 젊은 층과의 접촉면을 넓히는데 이어 TV출연이나 기부재단 설립 등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해 젊은 층과 중도층의 표심을 끌어 모아 반기문 대망론을 완전히 굳히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이런 형태로 반풍이 휘몰아치게 되면 굳이 특정 정당에 들어가 힘겨운 경선은 치르지 않아도 된다.


반풍의 여세를 몰아 여야 대선후보가 최종 결정되는 시점인 7월~9월 사이 대선 출마 공식 선언과 함께 여권이든 야권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인 여론조사를 이용한 단일화를 시도하면 그만이다.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에서는 안 전 대표는 친노 측 여론에 떠밀려 하는 수 없이 문재인 후보에게 야권 대선주자 자리를 양보했지만, 반 총장은 고령인 나이 탓에 내년 대선이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양보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여든 야든 단일화 시도가 무산된다 하더라도 어차피 다자구도이기 때문에 반풍으로 판을 흔들어 놓은 만큼, 반 총장 입장에서는 한 번 도전해 볼만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다.


스스로 무너질 공산 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이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여든 야든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지 않는다면 여론의 혹독한 검증을 방어해 줄 아군이 없어 스스로 무너질 공산이 크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 여론은 반 총장에게 혹독한 검증의 칼날을 들이댈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가 아닌 반 총장이 여론의 혹독한 검증을 견뎌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일례로 검증 과정에서 반 총장의 명예에 타격을 줄만한 의혹들이 폭로된다면 반풍은 순식간에 비난의 화살로 뒤바뀔 수 있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안 전 대표가 출마 여부를 놓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간철수(간만 보고 행동은 안한다는 의미)’라는 오명이 붙은 바 있다.


반 총장도 내년 7월~9월까지 명확한 노선 없이 출마 여부를 놓고 시간을 끌게 되면 기름장어에 이어 ‘간기문’이라는 또 다른 오명이 붙을 수 있다.


꼼수는 패착‥정공법 택해야


반 총장에게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있는 반면, 정치적 기반과 세력이 없다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해왔던 반 총장이 외교적 능력은 뛰어날지는 모르겠으나 그 외에 검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정치적 기반과 확실한 지지 세력을 구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정말 반 총장이 내년 대선에서 특정 노선을 정하지 않고 인기에 힘입어 경선 없이 단일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이는 엄청난 패착이 아닐 수 없다.


당내 경선을 뚫고 여야 대선주자로 선출된 인사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계파를 등에 업더라도 정당에 들어가 공정하고 치열하게 경선을 치르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면 그때부터 진정한 반풍이 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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