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침투한 독성물질, ‘소비자 두려움 가중’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이. ‘살균’이 아닌 ‘살생’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특히 호흡기 쪽에 문제를 일으키는 제품들이 거론되면서 사람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제품 중 하나인 한국 P&G의 페브리즈에서 유해물질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페브리즈 등 호흡기 향하는 제품도 제품성분 몰라
마구잡이로 조합해 만든 물건들‥정부 왜 못 막았나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지만, 이가 공론화되기 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5년이었다. 그 사이 유해한 물질이 담긴 제품들이 공개되곤 했지만 여파는 크지 않았다.


옥시로 번진 불안감


옥시의 사태가 문제가 된 이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던 업체들이 줄줄이 거론됐다. 옥시가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기 때문에 부각되고 있지만 PB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세퓨 등도 책임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세퓨 제조·판매사인 버터플라이이펙트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 당시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인체 무해 수준보다 160배나 많은 양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농도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독성물질 농도의 4배 이상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오 전 대표는 2008년 PGH로 세퓨를 만들었다. PGH는 살균과 방부 효과가 있고 경구 독성이 없어 식품 첨가물 등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대표는 과거 함께 동업을 했던 H사 김모 대표로부터 PGH를 구했고, PGH 수입업을 하던 김 대표는 PGH 40ℓ를 빼돌려 오 전 대표에게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자판 향균제 용도가 단 한순간에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한 것이다.


PGH 40ℓ로 2년여간 세퓨를 만들어 판 오 전 대표는 이후 PGH가 떨어지자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PHMG를 임의로 섞어 쓴 것으로 조사됐다.


오 전 대표는 전문 지식 없이 인터넷이나 관련 서적 등을 참고해 원료물질을 섞은 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전문적 지식이 없다 보니 40분의 1로 희석해야 하는 걸 4배를 더 넣어 결국 인체 무해 수준보다 160배나 많은 양을 사용한 것이다.


옥시나 애경, 롯데마트 등에 비해 ‘판매량’이 적었음에도 많은 사망자를 낸 이유이기도 한 셈이다.


무책임한 대형마트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무책임한 행동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용마산업에 가습기 살균제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제품 의뢰를 맡겼다. 당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를 용마산업에 맡기면서 옥시 제품과 유사하게 만들라고만 지시한 뒤 나머지 제조과정은 일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제품임에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도 없이 제품을 맡긴 셈이다. 이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과정의 핵심인 PHMG 농도 역시 용마산업이 결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구두약으로 유명한 용마산업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마트는 외국계 컨설팅업체 D사 자문을 거쳐 가습기 살균제 PB상품을 기획했다. D사가 상품을 기획했고 용마산업에 제작을 맡겨 가습기 살균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홈플러스는 회사 내 조직을 통해 PB상품을 기획했고 용마산업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다.


용마산업의 김 대표는 조사 과정에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가습기 살균제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옥시의 제품과 유사하게 만들도록 지시한 뒤 구체적인 제조법 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마트 빅 3안에 드는 업체들이 제조, 생산 과정에 아무런 터치가 없었던 셈이다. 소비자들은 ‘용마산업’이 아닌 ‘롯데’와 ‘홈플러스’의 이름을 믿고 샀지만, 이들은 그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


페브리즈 사태까지


섬유탈취제 업계 점유율 1위인 ‘페브리즈’역시 유해 물질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페브리즈 제품의 표면엔 어떤 성분으로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표시되지 않았고, 이에 소비자들은 불안감을 표했다.


또 문제되는 성분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환경부는 부랴부랴 성분을 요청했다. ‘혹시’는 ‘역시나’였다. 페브리즈 제조사 P&G가 제출한 자료를 통해 페브리즈 제품에 DDAC(디데실디메틸염화암모늄)와 BIT(벤즈아이소사이아졸리논)가 사용된 것을 확인됐다.


DDAC는 수영장 등에서 소독제로 쓰이며 폐를 굳게 하는 폐섬유화를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일본에서 발표된 ‘실험과 독성병리’ 논문에 따르면 쥐의 기도에 0.003ppm을 주입했을 때 폐 섬유화(폐가 굳는 현상)가 발생했다. BIT는 흡입할 경우 세포손상을 촉진시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다만 미국 환경청의 경우 페브리즈의 경우 DDAC를 0.33% 한도까지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와 무관하게 실험을 거쳤던 미국과 달리 한국은 아무런 대처법도 찾지 않았고, 실험조차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생활에서 주로 사용되는 위해우려제품에 대해 살생물질을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조사대상은 방향제, 탈취제, 합성세제, 표백제, 섬유유연제, 코팅제, 방청제, 김서림방지제, 접착제, 물체 탈·염색제, 문신용 염료, 소독제, 방부제, 방충제 등 총 15종이다.


수많은 피해자를 낸 뒤에야 부랴부랴 잘못된 제품을 조사하고 있는 전형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인 셈이다. 소비자들은 “무서워서 한국 제품을 사용하겠냐”며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여전히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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