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조작’ 의혹‥“우린 아무 잘못 없다?”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12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에게 피해를 남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처음 사건 당시와 달리 대중의 관심이 다소 식었었지만,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반박자료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또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간 옥시측은 생뚱맞은 주장으로 시간을 끄는가 하면, 동물 실험을 안했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이어 호서대 보고에서도 조작 정황 포착
수사 시간 끌기 나서 ‘공분’‥뻔뻔한 태도에 논란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불거지면서 우리나라 유통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질성 폐질환’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긴 것. 심할 경우 사망에 이렀던 이 사건은 어린이와 임산부 등 1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엔 감기처럼 증상 없이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서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진행되고, 심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공통점으로 다른 중증 폐질환자의 사망률에 비해 사망률도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수상한 꼼수


옥시 측의 꼼수에 대해 사람들의 비난이 시작 된 것은 올 해 초부터였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은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피해를 본 피해자 530명 중 76%인 403명과 사망자 142명 중 70%인 100명이 해당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2월 말 옥시 측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이 관계가 없다”라고 주장하며 비난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검찰 수사에 혼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 역시 “검찰 수사를 지연시킬 목적”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과 학계 등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 조사위원회의 지난 2011년 조사에서 가장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당시 실험에 쓰인 독성화학물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의 희석 농도이다.


옥시레킷벤키저 측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에 들어간 PHMG의 농도와 실험 당시 농도가 달랐기 때문에 그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분석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PHMG란 흡입 시 유해한 화학물질로 분류되어 있으며, 가습기 살균제 원료 제조사인 SK케미칼이 2003년 호주 국가산업화학물질 신고·평가 기관(NICNAS)에 제출한 보고서에 이 물질의 흡입 독성이 분명히 기재 되어 있었다.


옥시의 기존 제품보다 폐손상 조사위 실험 당시 PHMG 농도가 더 높았다는 것. 옥시레킷벤키저는 그러나 폐손상 조사위 실험 때보다 낮은 농도의 PHMG를 써 조사를 했더니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시, “살인죄를 피해라”


옥시측은 살인죄를 피하기 위한 꼼수도 부리고 있다. 중에 제품을 내놓기 전 독성물질에 대한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주장하고 있는 것. 동물 실험의 여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 제품의 위험성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지적이다. 만약 위험성을 미처 알지 못했다면 살인죄가 아닌 업무상 과실 처리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한 옥시 측은 동물 실험을 검토만 했을 뿐, 실행은 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 조작까지 했다?


문제는 옥시 측에서 냈던 보고서였다. 검찰은 지난 4월 초 옥시 측에서 실험을 의뢰했던 서울대와 호서대의 보고서에서 조작 가능성이 발견 돼 수사를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가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의 인체 유해성 실험을 의뢰했던, 서울대학교 J교수팀과 호서대학교 Y교수팀의 실험 결과 보고서가 조작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들의 실험은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했다’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J교수팀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PHMG·PGH 등)이 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또 Y교수팀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시 공기 중 PHMG의 농도를 실험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보고서를 보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두 대학 연구소에서 진행한 실험 데이터와 모두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두 대학이 실험 결과가 충분치 않았음에도 원 데이터를 가져가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짜 맞춰 허위로 증거자료를 제출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 쪽은 만약 이번 보고서 조작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관계자들을 모두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변수는 ‘대학 쪽이 협조를 했느냐’이다. 만약 보고서 조작이 사실일 경우 조작한 옥시 측의 형사처벌은 당연한 일이고, 그 뒤에 여부는 대학의 협조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역시 대학 연구진 측이 옥시에 협조 했나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보고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옥시는 물론이고 대학교수 연구팀까지도 형사처벌 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적용 법리를 검토 중이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제품을 제조·판매한 회사의 본사를 대상으로 국제소송을 제기한다”며 살균제 제품을 제조·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제기했다.


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는 향균제 데톨, 세정제 이지오프뱅, 세탁표백제 옥시크린 등 세제, 방향제, 위생용품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이자 영국 10대 기업으로 전 세계 200개국에서 제품을 판매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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