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친문(親文)시대’…‘당권 金(김종인)-대권 文(문재인)’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20대 총선 공천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속된 말로 청와대에 찍힌 인사들을 깡그리 날려버린 가운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친노의 그림자를 지우고 친문 체제로의 전환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친노의 좌장이라 불리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대부분의 범친노 인사들이 공천에서 배제된 반면 친문 인사들은 공천장을 손에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주도한 인물은 친문의 당사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아니다. 문 전 대표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돼 문 전 대표 대신 당권을 휘두르고 있는 김종인 대표의 작품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당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친노 프레임을 거둬내고 친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친문 체제 구축 대가로 김 대표는 문 전 대표로부터 당권을 약속받았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김 대표가 구축하고 있는 친문 체제의 속내에 대해 들여다봤다.


범 친노 중진 물갈이‥친문 체제 구축
이해찬 공천 배제‥文 침묵 진짜 이유


지난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삼고초려 해 모셔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당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이로 인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하루아침에 모든 권한을 이양 받고 제1야당의 수장으로 올라섰다.


김 대표는 더 나아가 지난달 29일 공천 권한 확대에 필요한 당무위원회 권한을 넘겨받기까지 했다.


더민주는 이날 당무위를 열고 총선까지 당무위 선거관련 권한을 비대위에 위임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김 대표는 총선과 관련한 공천권까지 손에 거머쥐게 됐다.


문 전 대표로부터 당권을 위임받고 당무위로부터 공천권까지 손에 거머쥔 김 대표의 행보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지난 11일 범 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청래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켜버렸다. 11일에는 전병헌·오영식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14일에는 더 큰 파장이 몰아쳤다. 5선 중진인 이미경 의원을 배제했고 친노 좌장인 이해찬 의원을 탈락시킨 것이다.


김 대표는 친노의 핵심이자 범친노 인사들을 과감하게 날려 버렸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될 당시부터 주장해오던 친노 패권주의 청산에 드디어 칼을 뽑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친노 패권주의 청산으로 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것이란 긍정적 관측도 나왔다.


문재인의 패밀리


그러나 일각에서는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 아닌 친문 체제의 구축이라는 평가도 함께 제기됐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지냈고 친문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 상록갑)은 단수추천으로 공천을 확정 받았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홍영표 의원(인천 부평을) 또한 단수추천 됐다.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았던 윤호중 의원도 구리시에 단수 추천됐으며 문 전 대표의 불출마로 부산 사상지역을 이어받은 배재정 의원 역시 단수추천 됐다. 문 전 대표는 배 의원 선거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아울러 ‘비노는 새누리당의 세작’ 발언으로 징계를 받은 김경협 의원(부천 원미갑)과 비서관 월급 상납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이목희 의원(서울 금천구)은 컷오프를 면하고 경선을 치러 당선을 확정했거나 경선을 앞두고 있다.


김 의원은 문재인 대표 체제 당시 수석사무부총장을 지냈고 이 의원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친문 체제 구축 정황은 이 뿐만이 아니다.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영입인사들 대부분이 공천을 받았다.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광주 서구을 지역에 ▲오기형 변호사는 서울 도봉을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경기 용인정 ▲김병관 웹젠 전 이사회 의장은 경기 성남 분당갑 ▲김정우 세종대 교수는 경기 군포갑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은 경기 남양주갑 등에 공천됐다.


결국 친노 좌장인 이해찬 의원을 날림과 동시에 범친노인 정세균계의 힘을 빼면서 친문 인사들 대부분에게는 공천권을 안겨준 모양새가 연출됐다.


김종인‥‘당은 내가 접수’


이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이해찬 의원과 범친노를 날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비례대표로만 4선을 한 중진이다. 이런 김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받아 20대 국회의 진출하면 5선이 된다.


여기에 국민들을 우롱하는 공정치 못한 공천으로 자충수를 둔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고, 더민주는 분당사태 이전인 127석 이상을 확보하면 김 대표의 총선전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이럴 경우 야권 지지층들의 긍정적 평가와 당내 다선 중진이라는 상징성으로 당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김 대표는 총선이 끝나면 이러한 평가와 상징성을 갖고 전당대회에 출마해 공식적인 당 대표로 거듭나겠다는 심산이라는 것.


물론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김 대표는 이미 ‘박영선’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포섭한 상태다.


따라서 김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 박영선 의원이 원내대표를 꿰찰 것으로 보여 ‘김종인-박영선’ 투톱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예상되어지고 있다.


말 없이 지켜보는 ‘文’


그렇다면 문 전 대표는 눈앞에서 당권을 빼앗기는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이란 관측이 대체적이다.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됐음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는 청와대의 강력한 입김으로 공천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에 침묵정치를 펼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는 성격이 다른 침묵이다.


김무성 대표가 힘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면 문 전 대표의 침묵은 암묵적 합의에 의한 침묵으로 풀이된다.


이해찬 의원과 문 전 대표는 각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주역들이다. 친노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인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돼 탈당에 이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데 대해,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에게 한 마디 정도는 했을 법도 한데 입을 꼭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문 전 대표의 암묵적 합의 하에 김 대표가 친노 좌장과 범친노 인사들을 날렸다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김 대표가 당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문 전 대표는 가만히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종북 프레임 대한 트라우마‥색깔 빼기
‘중도 진보’ 이념 싸움 벗어나 정책대결


각자의 역할


이쯤 되면 김 대표가 당권을 잡는데, 왜 문 전 대표가 가만히 지켜만 볼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표에게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와 함께 야권을 분열 시킨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당권을 장악하기에 부담스런 측면이 있다.


아울러 이 보다 더 중요한 점은 총선이 끝나면 대선정국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가 대권주자로 나올 것이고 뻔하다.


그럼 문 전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당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 대권후보로 옹립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박 시장 측 인사가 아닌 자신을 대권후보로 옹립할 인사가 당권을 강력하게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박 시장을 제치고 야권의 대권후보로 우뚝 설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박 시장을 제치고 대권후보로 결정되면 안 대표와 선거를 치러 대권에 도전할 야권 단독 후보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 당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민주의 지지층을 결집시켜 안 대표를 압도적 차이로 눌러버려야 하는 역할을 당 대표가 해야 되는데, 바로 그 적임자가 김 대표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 대표는 당권을, 문 전 대표는 야권 대선주자로 옹립되기 위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쉽다면 아쉬운 패배’


이와 같이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더민주 내에서 서서히 친노 프레임을 거둬내고 친문 체제로 전환시키고 있다.


친문 체제로의 전환은 새 인물 수혈로 식상한 인사들을 물갈이해 총선에서 기대이상의 효과를 노린다는 점도 있지만 다분히 대선을 노린 행보로 보여진다.


지난 대선에서 문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과 3.53%포인트 차로 청와대에 입성하지 못했다. 아쉽다면 아쉬운 패배다.


이렇게 아쉬운 패배는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새누리당의 주특기인 종북 프레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의 양보로 문 전 대표가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되자 새누리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NLL(Nor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 포기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러한 의혹 제기는 여야 간 공방으로 불거지면서 예상외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는 무엇보다 50~6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왔다.


결국 문 전 대표는 종북 프레임에 갇혀 박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야권 일각에서는 차라리 안철수 대표로 단일화 됐다면 대선에서 정권교체라는 큰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정국에서 또 다시 여당의 종북-친노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당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친노의 그림자를 김 대표의 손을 빌려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삼고초려 이유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영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 대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던 전력으로 철새 정치인이라는 오명이 따라 붙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여야를 불문하고 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마다 김 대표에게 구애작전을 펼쳤기 때문에 김 표가 이리저리 옮겼다는 점이다.


여야가 김 대표에게 삼고초려를 해가면서 구애작전을 펼친 이유는 단 한가지다. 김 대표가 경제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민심은 항상 현재의 생활보다 더 낳은 생활을 희망하기 때문에 경제와 관련된 공약은 선거 때마다 1 순위 주요공약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총선을 넘어 차기 대선까지 고민해야 하는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여당의 종북몰이로 인한 친노 프레임에 갇히는 형국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 경제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경제전문가가 필요했다.


즉,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이념 싸움에서 벗어나 정책으로 대결하겠다는 심산이다.


따라서 문 전 대표는 자신의 손으로 지울 수 없는 친노 그림자 지우기를 김 대표에게 맡기는 대신 그 대가로 당권을 내주는데 합의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야권 일각의 관측이다.


정책 프레임‥대선정국 주도


이러한 관측대로 흘러간다면 친노 프레임을 지우고 친문 체제로 전환한 문 전 대표는 이념 싸움에서 벗어나 정책 프레임으로 대선정국을 주도할 공산이 크다.


문 전 대표가 정책 프레임을 주도하게 되면 여권 대선후보 역시 정책 프레임으로 맞붙을 수밖에 없다.


여권이 이념 프레임으로 선거를 끌고 가려해도 문 전 대표 주변은 이미 친문으로 탈바꿈돼 명분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국민들도 이념보다는 정책대결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대선정국은 과거의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여야 정책대결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결국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총선과 함께 향후 대선정국까지 고려해 자신들의 앞길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들을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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