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경제사]④정주영 명예회장, 전경련 수장 ‘사퇴 압박’

조경희 / 기사승인 : 2015-02-01 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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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전경련 수장 교체 지시→재계 ‘연임’ 강행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올해는 우리 경제사에서 큰 획을 그은 정주영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凡 현대家 뿐만 아니라 재계에서 공동으로 100주년 기념행사를 논의 중인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도 이에 합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4월부터 1987년 2월까지 회장을 5번 연임하며 전경련을 이끌었던 수장이기 때문이다.

<스페셜경제>에서는 정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5번 연임하는 과정에서 10.26 사태 후 신군부가 ‘때 묻은 구 시대의 유물’을 거론하며 정 명예회장의 전경련 수장직 사퇴와 관련된 뒷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의 거장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정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관련 범 현대가를 비롯, 재계에서 여러 가지 기념행사 소식이 들리고 있다. 전경련 또한 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4월부터 1987년 2월까지 회장을 5번 연임하며 전경련을 이끌었던 ‘거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가 저물고 10.26을 거쳐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에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은 같은 군부라고 해도 ‘쇄신’ 이미지를 갖기 원했기 때문에 재계에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시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민간경제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설립된 순수 민간종합경제단체로 시작됐다.

1980년대의 출발은 대학가를 뒤덮다시피 한 ‘재벌망국론’과 탄광 노동자의 분노가 극에 달해 터진 ‘사북탄광사태’를 계기로 노사감정이 폭발 직전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경우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았던 반면 기업주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파업 후 이 노동자들이 무지비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 사북탄광은 많은 논란을 남긴 후 폐업, 강원랜드로 재탄생되는 계기가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기업에게 적대적이었다는 것이다.


사회 淨化(정화) 바람 불어 닥쳐


전경련은 초기 정부 정책에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군부 출현 이후로 사정은 바뀌었다.

사회 정화바람이 1980년대 이후 시작됐는데 당시 ‘기업 풍토 쇄신을 위한 기업인 대회’도 등장했다. 기업들이 정경유착 등을 통해 거대화되자 신군부 내에서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던 것.

특히 당시 영관급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젊은 장교들의 기업관, 경제관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했다. 전두환 장군의 측근 참모들로 구성된 ‘20인 위원회’ 등 젊은 장교들이 부도덕한 대기업 몇 군대를 해체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회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1980년 6월까지 존재했던 재벌이자 한때 세계 1위 규모 목재 합판 가공업체인 ‘동명목재’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단칼에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때였다.


동명목재는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표면상 ‘강제헌납’ 형태로 사라졌다. 당시에도 “신군부에게 찍혔다”는 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뿐이었다.

2008년에 와서야 신군부에 의한 강탈로 결론이 났지만 실의에 빠진 동명목재 고 강석진 회장은 화병을 얻어 지난 1984년 작고했고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반환소송을 걸었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번번이 기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인들 다짐대회 개최


80년 7월 16일 개최된 ‘기업 풍토 쇄신을 위한 기업인 대회’는 “공무원도 숙정을 하는 판인데, 기업도 뭔가 반성의 빛을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는 윗분들의 지시로 열렸다.

당시 1500여명의 기업인들이 참석했는데 당시에도 ‘대리참석’은 절대 불가하다는 방침이 있었고 6개항의 기업윤리강령 문안도 전달됐다.

당시 김영선 대한상의 회장은 “정부가 사회정화운동을 전개하면서 기업인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것은 어려운 경제현실을 감안한 것인 만큼 기업인들은 이를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박충훈 총리서리 또한 “기업인들은 이 기회에 기업 내부에 남아있는 모든 비리와 부조리를 과감히 청산하라”고 촉구했다.

기업인들이 살얼음판을 걷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재계에서는 현재 사외이사 같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군부에 ‘줄’을 댈 수 있는 인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단체 ‘사임’ 이어져


이 당시에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무역협회, 중소기업협회, 대한상의 등이 사임했다. 자발적인 뜻 보다는 정권 스스로가 ‘때 묻은 구시대의 유물’을 갈아엎자는 기조였기 때문에 줄줄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 또한 ‘사임’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군부 사이에서는 경제단체 수장들의 과감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 기업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맞섰다. 하지만 결국 ‘경제 살리기’가 먼저였고 전경련 회장단에서 정주영 명예회장 연임을 밀어붙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81년 2월 서석준 상광장관이 정 명예회장을 대신한 후임자로 지명한 인물은 당시 경총 회장이었던 김용주 전방그룹 회장이었다. 하지만 2월 16일 선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경련에 모인 20여명의 재계 중진인사들이 모두 정 회장의 연임을 결정해 버렸다.

회장 교체에 대해 전경련 기업인들은 “전경련은 기업인들의 순수한 임의단체다. 정부가 전경련 회장까지 임명하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재계에서는 정주영 회장 같은 거목이 버티고 있어야 신군부의 견제에도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시대의 거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발휘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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