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선진화 vs 부작용 우려…팽팽한 ‘평행선’

▲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IT·금융 융합 지원과제’를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핀테크 규제 완화’와 ‘금융회사의 사후 책임 강화’다.


아울러 IT·벤처기업들이 인터넷은행 설립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산(銀産)분리’ 규제 완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 가운데 당국이 밝힌 한국형 인터넷 은행의 경우 서비스 출시 전부터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금융실명제와 은산분리 등으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에 역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변경이 쉽지 않고, 자칫 기업들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편의성 높이고 비용은 줄여 고객 혜택 높이는 효과”
은산분리·금융실명제 완화 등 제도개선 가능성 ‘관건’


금융위는 ‘IT·금융 융합 지원과제’를 발표하면서 한국형 인터넷은행 설립을 돕기 위한 은산분리 원칙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한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될 경우, IT·벤처기업들이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현재 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소유 가능한 은행 지분은 4%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더불어 인터넷은행의 필수 조건 중 하나로 꼽히는 비대면 실명 확인 역시 허용을 검토 중이다.


현재 금융실명거래법에 의거, 대면 확인이 필수적이지만 인터넷은행 설립과 운영에 있어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즉, 고객이 창구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이에 상응하는 대체 수단을 통해 실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형 인터넷은행’ 도입


금융위는 오는 6월 중 ‘한국형 인터넷전문은행 모델 도입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중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손병두 금융서비스국장은 “해외사례를 충분히 감안하되 우리 금융환경의 특성을 고려해 한국형 인터넷은행을 만들겠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점포유지관리 비용을 줄여 높은 금리를 제공할 수 있고 소비자는 그에 따른 이익과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정부가 한국형 인터넷은행 설립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시장 사업자를 크게 늘려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은행 고객들의 혜택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점포가 필요 없는 인터넷은행의 특성 상 규모를 키워 글로벌 업체로 성장시켜보겠다는 의도도 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 효과의 이면에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 역시 혼재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금융실명제 등의 제도 완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함께,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실효성을 두고서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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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 설립 ‘속내’


정부가 인터넷은행을 고집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다양한 은행 서비스와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국내 은행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뒤쳐진 감이 있다는 판단이다.


인터넷은행만 떼놓고 봐도 미국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인터넷은행이 설립됐다. 현재 20여개의 인터넷은행이 영업 중이다.


아울러 관련업계에 따르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업체들 역시 핀테크 시장 선점을 위해 인터넷은행 진출을 검토 중이다.


반면 국내 은행업은 은산분리(금산분리)로 인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이에 따라 풍부한 자본력을 갖춘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수준은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더욱 초라하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은 한국의 금융산업을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80위로 평가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 금융업이 단기간 내 선진화 단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일반기업의 은행 소유를 가능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은행이나 금융지주사의 대주주는 정부나 국민연금, 예금보험공사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외국계 3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은행권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해마다 낙하산 논란이나 규제의 장벽에 막혀 자유로운 영업활동에 상당 부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은행 설립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인터넷은행 도입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관계자는 “인건비나 점포 운영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에서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일반적인 시중 은행에 비해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또 매번 은행 점포를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덜어지며 업무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편의성성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만치 않은 ‘부작용’


반면 인터넷은행 설립을 반대하는 쪽은 “상상 이상의 부작용이 현실화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은산분리 규제가 크게 완화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넷은행 설립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이들은 은산분리가 느슨해지면 인터넷은행이 일부 기업들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또 전자금융 범죄의 급증 가능성도 제기된다.


본인이 직접 점포에 방문할 필요 없이 비대면 방식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분 도용 등을 통해 이른바 ‘대포통장’이 크게 늘어나고, 이는 곧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터넷은행의 설립을 두고 ‘시기상조’라는 표현으로, 도입 여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능적인 면에서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 핀테크 열풍이 금융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사업적인 성공 가능성이나 실제 도입 효과를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글로벌 추세’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업 관계자는 “현재 시중은행들이 제공 중인 인터넷뱅킹만으로도 충분히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많다”면서 “기존 은행들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서비스 중복 문제는 물론 후발업체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갖춰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 심히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게다가 은산분리 완화 계획이 여의치 않게 돌아갈 경우, 인터넷은행 설립의 취지 자체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 전용은행’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실명제 개정을 두고 국민들의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관련법 개정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이 마련되기 전에는 설립 추진 논의를 미뤄야 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선진화도 좋지만 국민 정서 역시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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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보안강화 ‘관건’


정부 역시 이 같은 논란을 예상하고 나름의 방안을 마련해 놓기는 했다.


지난해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던 ‘카드사 정보유출’ 사례에서 보듯, 보안이라는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전자금융서비스는 국민들의 거부감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보안 부재는 금융사고 등 실제 피해로 직결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에 정부는 인터넷은행 등 핀테크 지원 정책을 만들면서도 금융보안과 금융소비자보호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현재 시중은행들이 구축해놓은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의 금융권역별 구축 및 정보 공유 등을 적극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금융사나 IT업체들의 보안규제에 있어 ‘사전점검’보다는 사후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금융사들이 보안 수준을 자체적으로 높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위는 상반기 내 금융사들의 보안성 심의 및 인증방법평가 제도를 폐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들이 스스로 보안을 점검하고, 점검 결과에 따라 권고·명령을 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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