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깡’까지…비웃음 산 ‘쌍벌제’

▲ 사진=태평양제약 홈페이지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최근 태평양제약이 불법 리베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평양제약은 이미 지난 2010년에도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적발, 억대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불과 수년간 같은 혐의로 두 번이나 경찰 적발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덕 불감증’이 극에 달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온다.


게다가 일반 국민들은 물론 제약업계에서도 ‘미운털’이 박힐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이는 제약업계가 당국의 ‘쌍벌제’ 도입 이후 자체적인 자정 노력에 힘을 써왔던 바, 자칫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소비자단체 사이에서는 “의약업계가 국민들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 공을 들여왔다고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뒤에서는 이 같은 불법 행위가 은밀하게 지속되고 있었다는 증거”라며 조소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사 의약품 처방 대가로 9억4000만원 상당 불법 지급
“눈속임 계속됐다”…2010년에도 7억6000여만원 과징금


지난 15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태평양제약 전 대표 안모(56)씨와 영업상무 김모(57)씨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박모(51)씨 등 의사 10명 등 관련자 총 11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태평양제약은 지난 2011년 초부터 전국 120개 병원 의사 2800여명을 상대로 모두 1692회에 걸쳐 9억4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리베이트는 태평양제약의 위궤양·골다공증·전립선 치료제 등 3종의 의약품 처방 대가로 제공됐으며, 이 중에는 수도권에 위치한 공공의료원과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 등은 태평양제약으로부터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한 명당 적게는 330여만원에서 많게는 1800만원 수준의 리베이트를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악마의 유혹?


경찰 조사결과 태평양제약은 약사법상 제약사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한 제품설명회를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품설명회에서 한 명당 10만원 상당의 식·음료 제공을 허락하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제품설명회를 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제약은 마치 제품설명회가 열린 것처럼 꾸며 의사들의 회식비를 대신 내주거나 미리 섭외한 식당에서 카드로 결제한 후 현금을 돌려받는 등의 속칭 ‘카드깡’을 동원해 현금과 상품권을 마련, 의사들에 리베이트로 지급했다.


또 의사들로 구성된 야구동호회에 고가의 야구용품 세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게다가 태평양제약 뿐만 아니라 일부 의사들의 파렴치한 리베이트 요구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이들은 제품 설명과 무관한 노트북이나 냉장고 등 사적 필요품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안 전 대표 등은 판촉물 구입 등의 명목으로 이를 비용 처리해 의사들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것이 경찰 측의 설명이다.


태평양제약은 의사들뿐만 아니라 업계 내 입김이 막강한 도매상에도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치밀함도 보였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종합병원 등에 의약품 공급권을 가지고 있는 대형 도매상에도 2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경찰 및 업계 관계자들은 “태평양제약은 지난 2011년 7억6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음에도 더 고도화 된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왔다”며 “리베이트 관행에 대한 처벌과 과징금, 행정처분 등의 처벌이 경미하다 보니 악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리수’ 까닭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업계 일부에서는 태평양제약이 한독으로 제약사업 부문을 넘기기에 앞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올 초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부문은 한독 측에 매각돼, 현재 태평양제약은 보톡스 관련 제품이나 필러 등 미용분야 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안 전 대표 등이 매각에 앞서 추락한 실적을 높이기 위해 리베이트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일반의약품 가운데 대표 히트작으로 꼽혔던 ‘케토톱’이 보험 급여에서 제외되고, 매출이 정체를 거듭하면서 태평양제약의 고민이 깊어졌을 것이란 분석. 전문의약품에서 고전하고 있던데다 케토톱의 대규모 매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관측.


실제 케토톱은 연간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던 태평양제약의 대표 ‘효자 상품’이었다.


태평양제약이 특정 품목 처방에 대한 대가로 리베이트를 건넨 사실이 적발되면서 업계에서는 ‘리베이트 투아웃’ 제도 적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공공연히 등장했다. 다만, 해당 제품의 급여정지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제도 시행 이전에 벌어졌던 일이었다는 점에서, 소급적용은 불가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리베이트 투아웃 제도란, 리베이트 적발 품목에 대해 최대 1년간 급여적용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같은 약품으로 재적발 될 경우 보험 적용 자체가 완전히 제외 될 수도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특정 품목의 보험 적용 제외는 곧바로 매출 ‘직격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리베이트 논란과 관련, 태평양제약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현재 검찰 조사중에 있으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면서 "향후 윤리 경영을 강조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겠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태평양제약 사태와 관련해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에 주목하는 가운데 불법 리베이트 재발 방지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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