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증진기금, 건강보험 지원 등 엉뚱한 데 주로 쓰여"

▲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지난 2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흡연율 감소’를 명목으로 약 10년 동안 제자리에 묶여 있는 담뱃값(담뱃세)을 올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문 장관은 현재 2500원 수준인 담뱃값을 4500원까지 인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인상률로 따지면 80%에 달한다.


주목할만한 점은 흡연자들은 물론 일부 시민단체들 역시 정부의 인상 정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국민 건강 증진’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조세 저항이 큰 직접세 대신 담뱃값에 손을 뻗치는 일종의 ‘꼼수’와 다름없다는 것.


아울러 이들은 담뱃세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이 국민건강을 위한 사업보다는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주로 투입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가격 인상에 대해 강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흡연율-담뱃값 함수 관계


전문가들은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다고 인정한다.


복지부가 내세우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는 지난 2004년 당시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면서 성인 남성 흡연율이 기존 57.8%(2004년 9월 기준)에서 2006년 44.1%까지 큰 폭으로 낮아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해외의 사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관찰됐다고 주장한다. 관련업계 및 복지부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에서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 저하 현상이 관찰됐다.


미국의 경우 2009년 당시 22% 수준의 가격인상으로 성인흡연율과 청소년 흡연율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영국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물가연동제에 따른 담배 소비세 증가로 담배가격이 200% 인상됐다. 2011년 기준으로 담배 관련 세금이 담배 가격의 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담배 소비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2000년 이후 시행된 포괄 금연정책이 시행되며 2010년 기준 20%의 성인 흡연율을 나타냈다. 2000년 당시 성인흡연율은 27% 수준이었다.


남아공 역시 2009년 담배소비세를 6.98란드로까지 인상하면서 담뱃값 역시 20.82란드까지(1993년 6.69란드)크게 인상했다. 1993년 당시 32% 수준이었던 성인흡연율은 2008년 20%로 크게 낮아졌다.


흡연자 주는데 세금은 늘어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들 국가에서 성인흡연율이 낮아지고 담배의 소비량 자체도 줄었지만 오히려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세금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남아공의 경우 담배 관련 세수는 1993년 10억란드에서 2008년 90억란드로 폭증했다. 영국 역시 1992년부터 20년동안 담배 세수는 44% 증가했다. 미국 역시 2009년 68억달러에서 이듬해 155억달러까지 치솟았다. 특히 미국의 경우 불과 1년만에 세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납세자연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담뱃값 인상 정책에 반대하면서, 담뱃값 인상 추진의 배경에는 일반 국민들이 생각지 못한 꼼수가 있다고 강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현재 정부가 여러분야에 걸쳐 세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적용 등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복지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현재의 재원만으로는 정상적인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로부터 정부 정책의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논리”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가격 인상으로 체감 물가의 충격을 고스란히 서민들에 전가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간접세 방식으로 세금을 올려 조세 저항을 줄이고, 간접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일반 국민들의 부담만 높인다는 것이다.


간접세 인상 ‘꼼수’?


실제 문 장관의 담뱃값(세) 인상 발언과 관련, 납세자연맹은 즉각 “과도한 담뱃세 인상은 공평과세 원칙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납세자연맹은 성명을 통해 “담배를 끊는 흡연자는 극소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담배세를 올리면 결국 담배를 끊지 못하는 저소득층 흡연자들이 오른 세금 대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소득역진적 효과'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연맹은 "정부가 담배값 인상 명분을 저소득층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담배값이 오르면 소득 대비 담배지출액이 늘어난 저소득층의 빈곤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가 지난 2004년 담배세 인상 때도 더 걷은 국민건강부담금으로 금연사업을 더 벌이겠다고 매번 똑같은 얘기만 했지만 국민건강증진기금 중 1%만 금연사업에 사용했다"며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냐”고 반문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복지예산이 늘고 세금이 걷히지 않아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조세저항이 심한 직접세를 걷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커지니까 술이나 담배 등에 붙는 속칭 ‘죄악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며 “담배세 인상은 국가가 세금을 걷을 때 지켜야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인 '공평과세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뉴시스

엉뚱한 데 쓰이는 건강증진기금


아울러 담뱃값에 포함된 각종 부담금이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즉, 담뱃값을 올려놓고 국민건강을 위한 사업이 아닌 엉뚱한 목적으로 세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사용 현황과 개선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담뱃세로 조성된 국민건강증진기금이 원래 목적과 달리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사용돼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이는 국민건강을 앞세운 복지부 및 정부의 당초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담뱃세의 일부인 ‘건강증진기금’은 큰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해당 기금은 지난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의거, 1997년부터 조성됐다. 조성 명목은 ‘건강증진 사업을 추진하는데 사용되는 재원 확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약 354원(14.2%)이 건강증진부담금 명목으로 부과된다.


하지만 문제는 기금 조성이후 해당 기금이 국민건강생활실천 사업에 주로 사용됐던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대부분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무려 95% 수준(2003~2005년)의 기금이 건강보험 지원에 지출됐다.


게다가 2004년 담뱃세 인상이 이뤄지고 나서 건강보험 투입 비율이 증가세를 보였다. 2006년부터 2013년 기간 동안 50~70%에 달하는 기금이 건강보험으로 빠져나갔다. 지난해 역시 1조원이 넘는 액수가 건강보험의 재원으로 사용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기금 예산의 절반 수준이다.


이에 반해 건강증진기금이 만들어진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건강생활실천 사업에는 5% 남짓의 기금만이 사용됐다. 또 건강증진연구조사에는 불과 0.5%의 예산만이 투입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가격을 높인다고 말하지만 세수 메우기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흡연 경고 문구와 금연운동 확대 등 실제 효과가 확인된 방법이 남아있음에도 급진적인 가격 인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애꿎은 서민들만 두 번 죽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부 측이 가격 인상을 시사했지만 관련 부처의 협의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인상안은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담뱃세 인상이 서민 물가와 직결된 만큼 원안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정부로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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