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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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4년의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하나는 폭염주의보와 경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중되는 전력난이며 다른 하나는 EU가 선봉에 선 ‘탄소 국경세’다. 예비전력난은 코로나로 지친 국민의 일상을 더욱 가혹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탄소 국경세는 우리산업 전반을 덮칠 폭풍우 실린 먹구름이다. 하나같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짐이다. 이런 벅찬 짐을 지게 된 원인은 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행’한 탈원전에 있으며 그 근저에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다시피 하면서 거의 모든 경제정책을 이념 중심으로 전개한 데 있다.

우리나라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2차대전 이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린 유일한 국가라고 정부는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막내 선진국’답게 깊이가 얕아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 버리는 ‘냄비형’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름 전력 예비율의 적신호나 코로나 확산 기에 백신이 없어 손을 놓고 있는 것, 그리고 선진국의 복지 수준을 추격 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 까지 활개를 친 탓에 국가부채 1천억 원 시대를 맞고 있는 것 등 모두 ‘냄비형’의 전형이다. 그러면서도 치적 홍보에는 총력을 기울이는 특징이 있다.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랑과 합리화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탈원전 청구서로 나타나고 있다.

완공 18개월 뒤에야 겨우, 그것도 조건부 가동 허가를 내준 신한울 1호기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그동안 비행기 충돌위험과 북한 장사포 공격 위험 등을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사실상 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방지’의 책임은 한수원이 아니라 국가안보 당국이 져야 할 사안이다. 이런 행태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느덧 ‘성역’이 된 탈원전을 고수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읽힐 뿐이다. 탈탄소 로드맵을 만든 대통령 직속의 ‘탄소중립위원회’ 97명 가운데 산업계 인사는 단 10명뿐이며 상당수의 친정부 성향 환경 시민단체나 연구소 출신들로 구성했다. 현실에, 산업계 실정에 맞는 계획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음을 알 수 있다.

전력 예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지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아낀 전기 시장’으로 불리는 수요반응(DR:Demand Respose)시장 점검에 나서 여기에 가입한 대기업의 전력 수요 줄이기를 독려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정산비용이 2천 1백 84억 원(2020년)이다. 탈원전 후유증을 돈으로 틀어막는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신재생 에너지 의무공급 비율을 올 10월부터는 25%(지금은 10%)까지 올려야 한다. 단가가 원전(56.2월/1Kwh)보다 훨씬 비싼(89.9원/1Kwh) 전력을 사야 하는 산업계는 무슨 죄인가? 이웃 일본 역시 재생에너지에 주력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그들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태양광) 단가를 원전보다 싼 1Kwh에 8엔~11엔(원전은 11엔대 후반)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마련한 에너지 기본계획과 전원구성 초안은 2030년까지 재생 36~38%, 원전 20~22%이다. 어디를 보아도 산업계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대목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크게 비교된다.

국내 에너지 계획만이 아니다. EU의 탄소 국경세가 현실화 되면 전형적인 굴뚝산업인 철강 석유화학을 비롯하여 자동차 등이 주력업종인 한국 산업계는 땀 흘려 번 돈을 탄소 국경세로 고스란히 EU 등에 갖다 바쳐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또 차세대 산업으로 각국이 뼈 깎는 경쟁을 벌이는 테크 산업은 ‘전력을 삼키는 하마’와 다르지 않다. 산자부 장관은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이 나오면 탈원전 정책에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 정상급을 자부해 온 한국형 3세대 원전 모델을 하루아침에 아무런 논거도 없이 엎어버린 이 정부가 기대하는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은 어떤 것인가? EU가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할 것을 검토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을 수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남아 ‘선진국 지위’를 계속 즐길 수 있을 것이다. gt2120@daum.net

이원두

언론인, 칼럼니스트, 전 파이낸셜뉴스 주필,전 헤럴드 경제 수석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부장, 경향신문 편집부국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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