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봉주 인턴기자]한국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지연으로 인해 유럽연합(EU)이 제기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분쟁 해결 절차가 개시됐다.


EU는 한국 정부가 노동권에 관한 약속 이행을 위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며 압박하는 가운데, 한국 측은 조속히 핵심협약 비준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21일 “정부 대표단과 EU 집행위원회 대표단은 오늘 오후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한-EU 정부 간 협의를 개최했다”고 알렸다.


이날 협의에는 노동부 김대환 국제정책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정부 대표단과 EU 집행위 마들린 튀닝가 통상과장을 비롯한 EU 대표단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EU는 지난달 17일 한국이 한-EU FTA 협정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인 제13장 4조 3항 이행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며 ‘정부 간 협의’를 요구했다. ‘정부 간 협의’는 이와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는 첫 절차다.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장 제13장 4조 3항에는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ILO 선언(1998년)’에 따라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에 관한 원칙을 존중하고, 증진 및 실현하며,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적·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ILO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구이다. ILO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응ㄹ 유지할 노동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노동기본권, 고용, 사회보장, 사회협력과 같은 분과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51번째로 ILO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하지만 8개 핵십 협약 중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비준하지 않은 네개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와 제105호 협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국제노동기구(ILO) 제87호와 제98호 협약에 대한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이어 작년 7월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를 발족해 ILO 핵심협약 비준과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착수한 바 있다.


개선위원회는 동년 11월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을 포함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하고 노·사간 입장차이를 좁히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협의에서 김대환 국제정책관은 “정부가 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한 EU 대표부 미하엘 라이터러 대사는 “한국 정부가 (한-EU) FTA에 포함된 노동권에 관한 약속 이행을 위해 취한 조치가 충분하지 못하다”며 “FTA 발효 8년째에 접어드는 이제는 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경고했다.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 분쟁 해결 절차는 정부간 협의로 시작하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면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 소집으로 이어진다. 위원회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전문가 패널 소집, 전문가 패널 권고 등을 담은 보고서 채택에 들어간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채택되는 경우에는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이행 사항을 점검한다.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특혜 관세 철폐 및 금전적 배상 의무와 같은 경제 제재는 없지만, EU가 이를 문제삼아 계속 압박하게 되면 국가 위상 실추 등이 벌어질 수 있다.


EU는 한-EU FTA에서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을 가진 것으로 시작해 다른 나라와도 체결한 FTA에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의 장을 포함시켰다. EU가 FTA 상대국과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의 장’으로 인해 분쟁 해결 절차에 돌입한 건 이 번이 처음이다.


EU 집행위원회 대표단은 이날 한-EU 정부간 협의에 이어 오는 22일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단체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사진제공=ILO)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