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가라앉으니 연구소장 해임논란…오너일가의 아집?

[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그동안 녹십자는 소위 ‘돈이 되는 치료제’보다 수익성은 떨어지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백신’ 등 필수의약품 개발에 앞장서왔다. 그 덕분에 국민들에게 녹십자의 상징인 ‘녹색 십자가’만으로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범국민적인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초 녹십자그룹은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 명칭을 ‘GC’로, 의약품 사업회사인 녹십자 이름을 ‘GC녹십자’로 변경했다.


당시 녹십자그룹 지주사인 GC녹십자홀딩스는 회사 명칭을 변경하면서 “창의와 도전의 정신을 바탕으로 녹색(綠色)의 십자(十字)가 의미하는 봉사와 배려, 정도와 정의를 지키고 인간을 존중하며 성장해 온 GC녹십자가 인류 모두의 행복한 내일을 위한 ‘건강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지금의 녹십자를 보면 ‘인간존중’가치를 최우선으로 꼽으며 녹색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봉사·배려·정도·정의’를 지킨다던 선언이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현재 녹십자그룹은 지주회사인 GC녹십자홀딩스를 이끌고 있는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후 쥐꼬리 기부금과 도 넘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는 허영섭 전 회장 체제 하에 그동안 회사가 강조해 온 윤리경영, 사회공헌 등 공공이익에 앞장서던 행보와는 정면으로 대치하는 모양새다. 윤리경영을 강조해온 녹십자가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허영섭 전 회장이 사회환원 차원에서 국내 1호로 설립했던 민간연구법인 연구소 ‘목암생명과학연구소’에서 오너 일가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유로 연구소장을 해임했다는 다른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위에서는 오너 일가가 ‘그들만의 배불리기’를 계속하는 동안 아래에서는 녹십자 영업사원이 SNS를 통해 의약품을 불법으로 판매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이전과는 달리 ‘돈 벌기에 급급한’ 녹십자그룹의 행보를 둘러싼 최근 논란을 짚어보기로 했다.


초심 잃은 공익법인편법승계로 경영권 유지가 목적?


GC녹십자 무단겸업으로 인한 적법한 절차일 뿐해명


<비즈한국>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최근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최승현 소장이 해임됐다. 목암연구소는 지난달 13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소장 해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공식적인 해임사유는 ‘무단 겸업’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승현 전 소장이 GC녹십자 허은철 대표와 갈등을 겪은 후 녹십자 오너일가의 전횡으로 부당 해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겸임해 맡고 있는 직책은 소장 취임 전부터 GC녹십자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며, 해임 통보 전 어떤 기별이나 소명의 기회도 얻지 못해 해임절차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목암연구소는 1984년 녹십자 고(故) 허영섭 전 회장의 사재출연으로 설립된 민간연구기관으로, 현재 GC녹십자홀딩스 허일섭 회장과 GC녹십자 허은철 대표가 각각 목암연구소의 이사장과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해임 과정에서 오너가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GC녹십자 측은 <스페셜경제>와의 취재에서 “최 전 소장의 무단 겸업과 관련해서 소장 취임 이후 추가로 밝혀진 부분이 있어 해임사유가 있었다”며 “이사회 정관에 따라 절차에 문제없이 적법하게 의결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허은철 대표와 마찰이 있었다는 것은 최 소장의 주장일 뿐 공식적으로 답변할 내용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최 전 소장은 <비즈한국>을 통해서 목암연구소와 GC녹십자가 함께 대상포진백신(VZV)을 개발한 이후 큐레보라는 법인을 공동설립하는 과정에서 오너일가와 사이가 틀어진 후 부당해임됐다고 주장했다.


녹십자 지배받은 ‘공익재단’ 목암연구소


GC녹십자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최 전 소장의 주장은 허위 사실이 돼버린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목암연구소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대상포진백신 연구를 계속해왔고, 2017년 3월부터는 GC녹십자와 함께 공동연구에 돌입해 사업화도 공동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GC녹십자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현지법인 ‘큐레보’(CUREVO)를 설립하고 차세대 대상포진백신 임상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뤄진 내용이다.


문제는 이 대상포진백신(VZV)을 개발하고 큐레보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 전 소장과 GC녹십자 대표이자 목암연구소 이사인 허은철 대표와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지난해 2월 목암연구소와 GC녹십자는 큐레보 출자액과 지분소유에 대해 합의했다. 당시 합의 내용은 목암연구소가 114만5833달러(한화 약 12억8368만원)를 출자해 큐레보 지분 10%를 갖고, GC녹십자는 3년에 걸쳐 1500만달러(약 168억450만원)를 출자해 큐레보 지분 80%를 갖기로 했다. 큐레보는 총 1145만8333주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이후 최 전 소장이 GC녹십자 측에 1500만달러 출자와 8대1의 지분구조 등 이전 합의 내용에 대해 문서화해달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이 같은 요구에 대해 GC녹십자 허은철 대표는 “우리끼리 못 믿어서 이러고 있는 거냐”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최 전 소장이 끝까지 출자합의서를 요구하자 허 대표는 “소장님이 뭐냐. GC(녹십자)와 목암의 결별이 아니다. 우리와 소장님의 결별”이라며 해임을 암시한 뒤 지난해 9월14일 최 전 소장에게 보직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최 전 소장이 보직 해지 처분 무효 민사소송을 준비하자 목암연구소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최 전 소장 해임 안건을 의결했다.


이전에도 지난해 9월 양사가 대상포진백신 개발하고 공동 취득한 지적재산권(IP2)과 관련 한차례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 최 전 소장의 주장이다.


목암연구소와 GC녹십자는 IP2 라이선스 단독 사용권을 녹십자에게 넘기고, 녹십자가 큐레보에게 IP2 라이선스 사용권을 다시 넘기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녹십자가 목암연구소에 이익분배 비율을 99.9%대 0.1%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다퉜다는 것이다.


최 전 소장은 이번 백신 사건 외에도 독립법인이면서 공익법인인 목암연구소가 사실상 녹십자의 간섭·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GC녹십자 측은 “다 소장님의 주장일 뿐, 일일이 반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이 지주사 최대주주…사실상 오너 지배력 강화?


그동안 제약업계에서는 목암연구소와 같은 공익재단이 최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에 일조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공익법인은 기업 등의 출자로 만들어져 국가 공익사업 등에 참여하면서 상속·증여세 등의 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이에 공익법인의 면세제도가 기업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자녀들에게 지분을 직접 증여하지 않고 경영권을 유지하는 편법승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다.


특히 녹십자그룹은 어느 제약사보다 공익법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목암연구소(9.79%)와 목암과학재단(4.38%), 미래나눔재단(2.10%)등 3개 법인이 총 16.27%의 GC녹십자홀딩스의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공입법인이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다.


현재 녹십자의 공익법인은 허영섭 전 회장의 두 아들인 허은철·용준 형제의 영향권 아래 있으며, 두 사람은 3개 재단 모두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GC녹십자 대표직을 맡고 있는 허은철 대표는 목암연구소 기획관리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허은철·용준 형제가 갖고 있는 GC녹십자홀딩스 주식지분이 5.19%에 불과해 허일섭 회장(13.47%)과 격차가 적지 않게 나고 있음에도 허은철 대표가 차기 후계자로 점쳐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허은철 대표가 사실상 지주회사의 최대주주인 공익법인에 이사로 있으면서 기업경영과 의결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차기 녹십자그룹 경영 주자로 거론된다.


계열사 지분을 최대주주 일가에 우호적인 공익재단에 증여함으로써 사실상 후계자의 지분이 늘어나는 효과를 본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공익법인이 공익사업보다 세금부담 없이 총수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 경영권 승계, 사익편취 등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재에 들어간 상황이다.


아직은 제재가 대기업을 겨냥하고 있지만 중견기업 공익법인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어 녹십자그룹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 오너에 그 직원?’영업사원 SNS 불법판매 논란까지


엄하게 처벌할 예정말단 직원 꼬리자르기 나섰다?


“약국보다 저렴하게” 영업사원 자사 일반약 SNS 불법판매


이처럼 녹십자그룹이 각종 편법을 통해 그룹을 꾸려나가는 동안 아래에서는 GC녹십자 영업사원이 SNS를 통해 의약품을 불법판매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녹십자그룹 내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영업사원은 카카오톡 단체톡방에 10여개의 자사 일반약을 약국 판매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판촉글을 올렸다.


이 영업사원이 SNS에 게재한 판촉글을 보면 ‘설날 건강을 선물하세요, 녹십자 제품 할인행사’란 제목으로 GC녹십자의 영양제, 간장제, 철분제 등을 판매하려 했다. 이외에도 파스와 진통제 등 다수 제품을 구비하고 있으며 제품 브로슈어는 주문 시 같이 동봉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특히 판촉글에는 약국 판매가와 할인된 가격을 비교 제시했는데 대부분이 약국 판매가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10개 또는 20개 이상 구입할 시 더 큰 할인 혜택을 적용한다고 안내했다.


이 같은 사실은 약사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약준모는 해당 영업사원의 행태에 대해 약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GC녹십자 측에 즉시 문제를 제기하고 이 영업사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만약 해당 영업사원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단체 차원에서 형사고발하겠다는 뜻도 함께 전했다.


이에 GC녹십자 측은 약준모 커뮤니티에 즉각적으로 사과문을 게재하고 해당 영업사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며 사건 수습에 나섰다.


GC녹십자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지난 8일, 경력 1년의 당사 직원이 설 명절을 맞아 가족 선물을 준비하는 몇 명의 동료들을 위해 작성된 글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발생했으며, 제품이 유출된 사실은 없다.


GC녹십자는 사과문을 통해 “현재 담당자를 인사징계위원회에 회부 중이며 회사 사규에 따라 엄하게 처벌할 예정”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했고 정도투명한 영업활동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에 발 빠른 조치에도 일각에서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경력 1년의 직원이 윗선의 지시 없이 이같은 불법 행위를 자발적으로 저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동료를 위해 작성된 글이라는 GC녹십자 측의 해명에 대해 동료라면 같은 GC녹십자 직원일 텐데 자사 직원에게 브로슈어를 동봉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GC녹십자 측에서 불법 판매 관행이 적발되자 직원에 대한 징계로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증폭되고 있어 한동안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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