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이제 2018년도 한 달이 채 남지도 않은 시점이다. 매년 그 해를 되돌아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어디 있겠냐만은 유독 제약·의료업계의 2018년은 ‘다이나믹’한 해로 기억된다.


연이은 대규모 기술수출과 신약개발로 ‘차세대 먹거리’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제약업계가 때 아닌 갑질 사태로 뭇매를 맞는가 하면 일부 제약사의 분식회계 논란으로 휘청거렸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도 제약사들은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비용을 꾸준히 늘리면서 세계 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준비를 이어 가고 있다.


의료업계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따라 의료계는 새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여기에 한의계의 ‘추나요법’에 대한 보험급여문제를 둘러싸고 의료계 내에서 한방과 양방의 한바탕 논쟁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확고한 정책 기조로 보장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으나, 최근 제주도에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허가가 나면서 정책 방향성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초대형 기술수출에서 갑질 논란까지, ·온탕 오간 제약계


건보 확대한다면서 영리병원 도입? 일관성 잃은 복지정책


기술수출 계약으로 산뜻한 출발


올해 제약업계는 연이어 터진 기술수출 계약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올해에만 5조원에 달하는 기술수출의 성과를 올리며 국가 신산업 위상을 공고히 했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 따르면, 12월7일 기준 올해에만 국내 제약사 9곳이 총 4조8596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기술수출 규모가 1조4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했다.


첫 스타트를 끊은 제약사는 동아에스티다. 지난 1월 동아에스티는 미국 뉴로보파마슈티컬즈와 1억8000만달러(한화 약 2022억원) 규모로, 개발 중인 당뇨병성신경병증치료제(DA-9801)를 기술수출하는데 성공했다. SK케미칼은 2월에 사노피파스퇴르와 1억5500만달러(약 1741억원) 규모로 세포배양 독감백신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6월에는 바이오그룹 크리스탈지노믹스가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를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에(1억2500만달러, 약 1404억원), 7월에는 바이오벤처기업 ABL바이오가 암·파킨슨병 치료제로 개발 중인 4개 약물을 트리거테라퓨틱스에(5억5000만달러, 약 6176억원), 8월에는 JW중외제약이 아토피피부염치료제를 레오파마에(4억200만달러, 약4514억원) 각각 기술수출 했다.


특히 11월에는 유한양행, 앱클론, 코오롱생명과학, 인트론바이오 등이 잇따라 기술수출 성과를 올렸다. 올해 최대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의 주인공은 현재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폐암치료제로 개발 중인 ‘레이저티닙’을 얀센에 총 12억5500만달러(약 1조4092억원)에 기술 이전하는데 성공했다.


바이오시밀러 열풍…세계시장 진출 활발


올해에는 유독 국내 제약사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출시가 활발했다. ‘퍼스트무버(First Mover)’의 지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시장 특성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은 바이오시밀러를 중심으로 세계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출시했던 셀트리온이 이번에는 혈액암 항암제 ‘트룩시마’를 통해 또 한번 미국 시장을 정조준 했다. 이 약은 지난달 29일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최종 허가승인을 받았다.


현재 미국 현지에 동일 성분의 바이오시밀러가 없다는 점에서, 트룩시마가 퍼스트무버의 이점이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셀트리온은 램시마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만든 ‘램시마SC’ 허가를 유럽의약품청(EMA)에 신청했다.


종근당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도전한 지 10년 만에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를 허가 받았다. 종근당은 지난달 2세대 빈혈치료제 네스프 바이오시밀러 ‘네스벨’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종근당은 향후 네스벨의 국내 출시를 시작으로 5000억원 규모 일본과 3조원 규모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LG화학, 동아에스티 등은 일본 진출에 주력했다. LG화학은 지난 5월 일본에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유셉트’를 출시했다. 동아에스티는 지속형 적혈구조혈자극제 바이오시밀러의 일본 내 승인 절차를 준비 중이다.


잘나가던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기내 갑질’ 구설수


‘램시마’의 초대박으로 승승장구하던 셀트리온은 올해 때 아닌 ‘갑질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파문의 주인공은 서정진 회장으로, 기내에서 승무원을 상대로 막말을 하고 수차례 라면을 다시 끓여오라고 하는 등 갑질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셀트리온은 사건 직후 갑질이 아닌 소통 간 발생한 문제라고 즉각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시 셀트리온 측은 “서 회장의 투박하고 진솔한 성격에서 비롯된 소통의 차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언론에서는 서 회장의 기내 갑질 논란 이외에 그의 진솔한 성격으로 불거진 태도 문제를 여러차례 다뤘다. 논란 당시 셀트리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야기들이 사실 공식적인 의견이라기보다 익명성을 담보한 발언이기 때문에 일일이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갑질 논란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갑질 강력처벌’, ‘재벌(대기업) 총수의 갑질 처벌 엄중 강화시켜주십시오’ 등의 청원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번 서정진 회장의 갑질 파문은 비단 셀트리온뿐 아니라 제약업계 전반에 뿌리내린 보수적인 ‘오너 경영 체제’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줬다. 오너의 적극적인 리더십을 중심으로 신약 개발 등 장기적 안목의 R&D 투자가 중요한 제약업계가 향후 ‘오너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삼바 해결되니 셀트리온까지…끝나지 않은 분식회계 논란


올 한해 국내 굴지의 바이오업체들은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이며, 유독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대표적인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다. 이들 업체는 회계장부를 조작한 의혹이 불거지며 국민적인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은 기업의 경영권 승계의 맞닿아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합병한 제일모직이 당시 보유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고의로 부풀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을 승계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폐지 위기까지 몰렸다가 지난 10일 가까스로 상장 유지가 결정됐다. 간신히 한숨 돌렸다고 생각한 지난 13일 이번에는 검찰이 고의 분식회계 의혹의 후속 조치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향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가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서정진 회장의 갑질 논란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던 셀트리온이 이번에는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였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올 2분기 영업 손실을 숨기기 위해 국내 판매권을 셀트리온에 넘기고 받은 218억 원을 매출로 처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독점판매권을 판매한 수익을 매출로 잡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무형자산인 판권을 처분한 것은 영업매출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이 판매금액에 대한 적정성과 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주목해 감리에 들어갔다.



잘나가던 셀트리온갑질에 분식회계까지


수장 바뀐 의료계문케어와의 전쟁선포


올해에도 계속된 ‘문케어’…의료계, ‘문케어와의 전쟁’ 선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일명 ‘문케어’는 올해에도 계속됐다.


특히 올해는 문케어 강력하게 반발하던 대한의사협회의 수장이 바뀌면서 의료계가 ‘문케어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서, 정책 추진이 쉽지 않은 한 해였다.


올해 초 의협 회장에는 강성 단체로 분류되는 전국의사총연합 대표 출신인 최대집 회장이 당선됐다. 그동안 의료계가 얼마나 문케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의료계의 전쟁 선포에도 올해 정부는 건보 보장성 확대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올해 7월부터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의 2~3인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의 입원료 부담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2인실을 쓸 때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하루 병실료는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평균 15만4000원에서 8만10000원으로, 종합병원에서 9만6000원에서 4만9000원으로 감소했다.


10월부터는 뇌·뇌혈관 MRI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뇌 질환을 의심할만한 신경학적 증상이나 다른 검사상 신경학적 이상 소견을 보이는 모든 환자는 MRI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허리디스크 등 척추 부위는 염증성 척추병증, 척추 골절, 강직성척추염에도 보험급여가 적용됐다. 또 신생아 선천성대사이상 및 난청 선별검사도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낙태 수술 거부’…뿔난 산부인과 의사들


올해 여름 대한민국은 ‘낙태 문제’로 뜨거웠다. 정부가 낙태 시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관련 시술을 한 의사에게 자격정지 처벌을 시행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을 일제히 낙제수술을 거부하고 나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낙태 수술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우리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후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 정부는 자격정지 처분을 헌법재판소의 판별이 나올 때 까지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수술을 거부하고 있다.


의료계뿐 아니라 여성들과 시민단체도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올해 여름 서울 일대는 ‘검은 물결’로 뒤덮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낙태죄는 위헌”이라며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형법 269조 1항은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등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계획이었으나, 결정이 미뤄져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낙태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에서 헌재가 선고를 미루면서 사회와 의료계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추나요법’ 건보 적용 둘러싼 한방·양방 분열


이달 정부는 내년 3월부터 모든 한의원의 추나요법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와 한의계는 서로 갈등이 폭발했다.


추나요법은 한의사가 손 또는 신체 일부분을 이용해 관절·근육·인대 등 근골격계를 교정하는 치료요법으로, 현재 의료계에서도 활용하는 도수치료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도수치료는 수기치료의 다른 말로, 손을 주로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을 총칭하는 용어다. 다만, 정부는 추나요법 급여화로 인해 향후 불거질 수 있는 도수치료 급여화 요구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히 했다.


이번에 추나요법 급여화의 문제는 한의계의 추나요법과 의료계의 도수치료가 비슷함에도, 환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의원으로 몰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양 측의 갈등은 의료계가 추나요법 자체의 효과성과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의료계에서는 “추나요법은 현재 세계물리치료학회의 의료행위 항목에 등재돼 있지 않다”며 “급여화를 논하기에 앞서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공신력 있는 검증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의계에서는 “한방 추나요법의 급여화는 매우 환영받아야 마땅하다”며 “양방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의 분야의 보장성 확대에 어깨띠를 두른 채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의료인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예견된 ‘반발’…국내 첫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이달 초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개설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5일 제주도청에서 서귀포시 동홍동 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조건부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2년 외국인이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외국인 전용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논의 초기부터 ‘의료영리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관련 단체의 반발이 심했다. 특히 이번 결정은 제주도민을 상대로 실시한 공론조사에서 제시된 불허 권고안을 뒤집는 것이어서 강력한 반발이 예상됐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내국인 진료를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며, 진료과도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로만 제한했지만, 시민·의료계의 비난은 여전하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꾸준하게 ‘의료민영화’ 반대 입장을 밝혀온 만큼 이번 결정이 더욱 충격적이다. 영리병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케어’와 모순되는 점을 안고 있어, 향후 정책이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주도의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개설 허가는 특수한 경우”라며 “현 정부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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