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국내 최초의 영리병원이 제주도에 문을 연다. 2002년 관련 법안이 제정된 지 16년만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논의 초기부터 의료영리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관련 단체의 반발이 심했고, 특히 이번 결정은 제주도민을 상대로 실시한 공론조사에서 제시된 불허 권고안을 뒤집는 것이어서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5일 제주도청에서 서귀포시 동홍동 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조건부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녹지국제병원은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며, 진료과도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로만 제한했다.


이는 그동안 녹지국제병원은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라며 개원을 강하게 반대해 온 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원 지사는 “허가한 진료과목은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 적용이 안 돼 공공의료체계에 영향이 없다”며 “조건부 허가 취지와 목적을 위반하면 허가 취소 등 강력하게 처분하겠다”고 강조했다.


예견된 ‘반발’…“제주의 미래위한 불가피한 선택”


그동안 영리병원 설립은 시민단체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몇 년째 논의만 계속돼 왔다.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에서도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설립 여부를 두고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는 응답자가 106명으로, 전체 58.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설을 허가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38.9%(70명)였다


반대 결정 요인으로는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악화할 것 같다’는 의견이 66.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유사사업 경험이나 우회투자 의혹 등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 같다’(12.3%), ‘이윤추구에 집중할 것 같다’(11.3%) 등이 뒤를 이었다.


이같은 결과에 따라 공론조사위는 제주도에 녹지국제영리병원 개설 불허를 최종 권고했다.


그러나 그동안 공론조사 결과를 존중하겠다던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던 원희룡 지사가 돌연 입장을 뒤집으면서 관련 단체의 반발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 지사는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의 결정을 전부 수용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임을 고려해 도민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사죄했다.


이날 원 지사의 발표에 앞서 의료영리화저지와 의료공공성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와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제주도청 정문 앞에서 집회를 갖고 녹지국제병원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린 원 지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김덕종 제주본부장은 “공공의료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도민의 생명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제1호 영리병원을 허용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도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시위를 이어가려 했으나 공무원 및 경찰에 막히면서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도 녹지국제병원 개원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외국 투자자본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기관은 우리나라의 기존 의료기관 같이 환자의 건강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수익창출을 위한 의료기관 운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 지사, 왜 입장 ‘급선회’했나?


이같은 강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원희룡 지사가 영리병원을 조건부 허가한 배경에는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원 지사는 조건부 허가 이유에 대해 “국가적인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편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건전한 외국인 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활성화, 공공의료체계 근간 유지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투자된 중국자본에 대한 손실 문제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외국자본에 대한 행정신뢰도 추락 ▲사업자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손해배상 문제 ▲병원에 이미 채용된 직원 134명 고용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로써 영리병원은 2002년 12월 외국인이 경제자유구역 안에서 외국인 전용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문을 열게 됐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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