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속도 조절중인데, 남북관계만 과속…'한미동맹 악화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부터 7박 8일 동안 유럽 순방 일정을 소화했다. 순방 기간 중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정상들을 만났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도 참석했다. 고된 일정을 소화한 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한반도 평화 추진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고, 나아가 교황의 방북 언급까지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냈다.


다만,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핵무기·핵물질·핵시설 등 핵 리스트 제출을 거부하며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음에도 유럽 순방 기간 동안 북한의 대북제재 완화를 강조한 탓에 김정은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아셈정상회의 성명에도 북한이 반드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 완화에 선을 긋고 있는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의결 했다. 야당에서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동의를 거치지 않았는데, 부속적 성격의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강행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국회와 협의도 거치지 않은 문재인 정권의 일방적 조치로 대한민국 안보가 극도로 불안하게 됐다는 비판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 완화에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의 과속운전에 대해 살펴봤다.


평양선언·군사합의 비준 강행한 文 대통령


법제처 유권해석…야당 “엿장수 마음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을 방문하거나 개별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 방안뿐 아니라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폭 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특히 바티칸과 교황께서는 평양 방문 의사를 직접 표명하시는 등 최대한 지지를 보여 줬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설명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을 긍정적으로 시사했고, 유럽 정상들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유럽 순방 기간 동안 대북제재 완화를 피력했지만,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정상들은 문 대통령의 대북제재 완화 제안을 사실상 거절했다.


아셈(ASEM) 정상회의 성명에는 북한이 반드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인식이 이러한데, 북한을 향한 문 대통령의 지극정성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평양공동선언 및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심의·의결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더욱 쉽게 만들어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길일뿐만 아니라 한반도 위기 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비준 근거가 됐던 법제처 유권해석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 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는 문 대통령이 24일~25일 중으로 서명하면 북한이 재가한 ‘문본(文本-토의에서 합의한 내용을 글로 적은 문건)’을 교환한 후 관보에 게재됨과 동시에 효력이 발생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통상적으로 합의서나 조약이 체결되면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비준 및 공포 절차를 통해 발효된다.


비준은 국가원수가 조약 체결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동의하는 절차인데,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평양공동선언에 대해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 이행의 성격이 강하며, 판문점선언이 이미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밟고 있어 따로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해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입법사항이 필요한 경우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즉, 남북 경제협력 사업 추진이 담긴 판문점선언은 재정적 부담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 이행 성격이고, 군사분야 합의서는 재정적 부담이 지워지는 게 아님에 따라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 비준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게 법제처의 해석이다.


법제처의 이러한 해석에 대해 야당은 자의적 해석이라 반발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법제처가 이렇게 자의적인 유권해석을 남발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판문점선언의 알맹이에 해당하는 10·4선언은 정작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던 법제처가 껍데기에 해당하는 판문점선언은 비준동의 대상이라고 하고, 정작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도 아직 국회에서 이뤄지지 않는 마당에 부속 합의서에 해당하는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비준이 필요 없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법제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국가의 외교 안보적 중대 사안을 놓고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유권해석은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비준동의 여부는 국회 논의를 통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판문점선언보다 먼저‥先·後가 뒤바뀐 처사


군사합의 이행, 재정 부담‥안보 불안 엄습


평양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과 법률 재·개정 근거 마련


남북경협 사업이 담긴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판문점선언 부속 성격이 강한 평양공동선언이 먼저 비준되는 게 순서가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판문점선언의 경우 지난달 11일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 뒤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제는 판문점선언 이행에 적게는 수십조, 많게는 100조원까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정부는 내년 한 해치 비용추계만 제출했다.


이에 야당은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총체적 비용추계 제출을 촉구하면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체적인 비용추계 미제출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 부속 성격의 평양공동선언 비준을 강행 처리한 것이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남북은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올해 안에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고 ▶조건이 마련되는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우선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 및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문제 협의 ▶자연생태계 보호 및 복원을 위한 남북 환경협력 적극 추진 ▶방역 및 보건ㆍ의료 분야 협력 강화 등 교류협력 증대 대책들을 강구해 나가기로 했는데, 문 대통령의 비준 처리 강행으로 평양공동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과 법률 재·개정의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의 부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가 안 될 경우 평양공동선언 이행에 필요한 예산 수반이 불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의 이러한 지적에 청와대는 “평양공동선언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는 성격도 있지만 그 자체로 독자적인 선언이기 때문에 문서에 담겨 있는 내용 자체는 그 자체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펼쳐 보이고 있다.

동맹국과 사전 조율 거치지 않은 남북군사합의…한미연합군 전투력 약화 우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 및 경제분야 지원을 이행하기 위해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평양공동선언 비준 처리 강행도 문제지만, 특히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으로 대한민국 안보가 극도로 불안하게 됐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백승주 의원은 지난 23일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법제처가 졸속으로 내놓은 의견에 따르면 ‘재정부담이 없고, 안보에 주는 영향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간단한 것 같지만 GP(감시초소)철수에 막대한 철거비용이 들고 기타 수많은 군사합의 이행과정에서 재정 부담이 막대한데도 불구하고 추계조차 해보지 않고 하루 만에 무슨 근거로 재정 부담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법제처가 정말 졸속으로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남북 군사합의 전)각 군 총장이나 군 수뇌부가 전혀 의견 개진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합의했다”며 “일방적으로 북한과 합의하고, 일방적으로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일방적으로 국회를 피해서 법제처를 통해 우회하는 등 일방적 모든 조치들이 대한민국 안보를 극도로 불안하게 하고 있는데, 역사적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안보에 대한 우려감을 내비친 건 비단 한국당만이 아니었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도 남북 군사합의에 쓴 소리를 냈다.


23일자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 특수작전사령부 대령 출신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 연구원은 “남북 군사합의서에 담긴 군사분계선(MDL)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군 당국도 우려할 일”이라며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실시되어온 한미연합공군훈련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북한군을 방어하기 위한 한미연합군의 전투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북한은 한국 잠입 목적의 특수부대 훈련을 장기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DMZ 내 GP 철수 시 무인항공기나 무인정찰기(드론), 또는 헬기를 이용해 북한 측 움직임을 감시해야 한다”며 “그런데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돼 드론을 저고도로 띄우기 어렵게 됐다”고 꼬집었다.


남북 군사합의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동맹국인 미국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랄프 코사 태평양포럼 소장은 “미국은 한국과 방위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미군 역량에 변화를 주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문제는 양국의 긴밀한 사전 조율을 거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자유한국당 간사인 백승주 의원과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논의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엇박자…욕속부달(欲速不達)


욕속부달(欲速不達)이란 말이 있다. 일을 빨리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무기·핵물질·핵시설 등 핵 리스트 제출에 선을 긋고 있는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연일 미국을 비난하며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북한 언론과 궤를 같이하며 대북제재 완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내년 1월 1일로 미루는 등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고, 국제사회는 CVID 입장을 재확인 했다.


이는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것은 북한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마치 우리라도 제재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판단한 듯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비준 처리를 서둘러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비준이 남북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공동선언 비준으로 우리 국민들의 막대한 혈세가 투입될 소지가 다분해졌고, 특히 남북군사합의 비준으로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함께 안보 불안이 동시에 엄습해오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에 속도를 올림에 따라 동맹국과의 간극이 점차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한국과 미국의 70년 동맹관계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속도 조절 못하고 북한만 대변하다가는 자칫 한미 동맹이 악화될 판이다.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문재인 정권이 져야할 것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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