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제련소 논란과 ‘그린 아나키즘’

박종석 번역가 / 기사승인 : 2018-07-17 17: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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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경제=박종석 번역가]한국의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운동이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은 기성 제도권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전제로 한다. 그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대기업 자본주의의 논리에 포섭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제든지 공직자들이 대기업으로부터 로비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공정한 절차를 왜곡할 수 있고, 국민들에게 거짓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 정책에 대한 막연한 반대만으로 환경 시민단체가 영향력을 획득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자신들과 견해가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노선이 비슷한 진보 정당을 설득해 정치적으로 연대한다.


그리고 열혈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서 정부와 지자체를 압박해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길 촉구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각 지자체별로 만들어지는 ‘위원회 조직’이다. 행정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애드호크라시’(adhocracy)라고 부른다.


기존 관료 조직에서 해결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는 간담회 기구다. 과거에는 애드호크라시가 관료제의 들러리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시민단체와 준 정치인들이 모여 예산과 권한을 갖는 상시기구로 자리잡기도 한다.


한국의 환경 시민단체는 약 20년 간 노하우를 통해 수많은 위원회와 민관대책협의회들을 통해 ‘통치’하는 방법을 배웠다.


현재 낙동강 북부 지역에서 가장 민감한 물 문제인 안동댐 상류 오염 논란도 환경단체에 의한 ‘정치’가 통하고 있다. 안동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운동가들은 안동댐에서 100킬로미터 위에 있는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물 문제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환경 단체는 ‘영풍제련소 폐쇄’를 외친다. 1200명의 일자리와 한국 아연 생산량의 90%라는 수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연 광석이 더 이상 한국에서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련소가 존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비논리적인 주장도 나온다.


안동댐 상류에 펼쳐진 드넓은 불법 경작지에 대해서는 ‘과도한 침묵’이 이루어지는 반면, 낙동강 상류 유역에 위치한 공장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시선이 가해진다. 이들의 투쟁은 약 5년간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불신 제기로부터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지역 환경운동연합은 자신들의 주장이 경북도와 안동시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의 진보정당 정치인과 연대하여 안동댐 오염 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 버렸다.


한 환경운동가는 대구지방환경청을 비롯한 당국의 환경 조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민관대책협의회 주관 하에 국제 조사로 안동호 오염 원인을 파헤치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환경부는 석포제련소 주변 환경에 대해 보다 면밀한 재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국가의 영향력과 기능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는 ‘그린 아나키스트’들이 과연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생태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과 연대한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적정 기술’로 잘 알려진 독일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만 하더라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에서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큰 의문을 품었다.


슈마허의 스승인 레오폴트 코어는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아나키스트로도 알려져 있다. 수공예 운동가였던 윌리엄 모리스, 인도 독립운동가이자 산업화 거부자였던 모한다스 간디 같은 사람들이 슈마허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들은 오늘날 환경운동가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념체계를 일궈 냈다.


슈마허는 유기농법, 토양오염에 대한 대안 등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철학적 아나키스트였지만 그의 후예들은 국가, 기업과 맞서 싸우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는 투쟁 기술에 치중했다.


석포제련소 논란과 안동댐 상류 오염 논쟁에서도 이러한 급진적 환경 운동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영풍 측에서는 석포제련소 폐쇄로 인해 빚어질 일자리 위기와 제조업에 미칠 악영향을 이야기하지만 환경단체는 눈과 귀를 막은 채 거부할 뿐이다. “기업이 죄를 저질렀으니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과 함께 “일자리 대책이나 산업 생태계 파괴 문제는 영풍이 책임지라”는 무책임한 주장까지 난무하고 있다.


왜 이런 주장이 가능할까. 바로 그들의 기본적 사고방식인 ‘그린 아나키즘’ 때문이다. ‘민관대책협의회’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그린 아나키스트들은 전근대 농경사회를 터무니없이 미화하고 이상화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봉건 영주화하거나 전근대 종교 공동체의 수장으로 도약하기를 꿈꾼다. 이들은 국가나 지자체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 내고, 공장, 댐, 발전소 등을 애써 철거시키며 ‘재자연화’라는 구호를 내 건다. 그러나 재자연화는 환경운동가들이 영토화한 또 다른 토목 프로젝트이자 그들의 유사 종교공동체를 지탱하는 축이다.


환경시민단체의 이상은 겉으론 매우 순수하고 고상해 보인다. 그러나 과거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를 보면 환경운동 단체들은 중앙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종교 공동체가 권력 집단이 되고 막강한 힘을 행사했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중국의 황건적이나 홍건적, 태평천국운동, 일본 중세의 승병집단들은 처음에는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했지만 나중에는 기성 권력보다 더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집단이었다. 산업화 세력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부패를 고스란히 닮아 가는 한국의 그린 아나키스트들도 이 전철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숨겨진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꿈틀대는 그린 아나키스트들에게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두 눈 부릅뜨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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