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VS 퍼오기…과거 北 1조원 차관 지원→‘회수 불능’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통일부 관계자가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본청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북한 김정은과의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 따라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평양회담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추석 밥상머리에 중요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평양회담과 더불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도 큰 화젯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전체 재원이 수조원 이상인데 정부는 내년 1년치 예산만 계산해 국회에 제출하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1조 500억원에 달하는 차관을 북한에 지원했지만 2012년 이후 상환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또 다시 북한에 막대한 세금을 퍼주는 게 맞느냐는 반대여론이 적지 않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평양회담과 함께 추석 밥상머리에 화두로 떠오를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비용추계에 대해 짚어봤다.


대북지원 사업, 수십조 원 소요…1년 치만 계산한 꼼수


北 철도 연결, 퍼오기 준비작업‥국민 혈세 환수 불투명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의결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종료된 뒤에도 제도적 이행을 위해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요청한 것이다.


정부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과 함께 제출한 비용추계서를 보면,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내년도 총 예산은 4712억원으로 올해 예산에 준해 편성된 1726억원에 2986억원이 추가로 더해졌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북한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예산이 1864억 원으로 올해(1097억원)보다 767억 원 늘었다.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경제원조 성격의 융자)은 1087억원으로 올해(80억원)보다 1007억원 늘었으며, 산림협력 사업이 1137억원으로 올해(300억원)보다 837억원 추가됐다. 또 사회문화체육교류에 76억원, 이산가족 상봉에 216억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에 83억원이 추가로 편성됐다.


북한의 철도·도로 개보수 비용은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고, 산림협력 비용은 한반도 생태계 복원 등의 의미가 있어 무상 지원하기로 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장기프로젝트 예산을 1년 치만 계산한 정부


이처럼 올해 예산에 준한 1726억원과 추가로 편성된 2986억원 등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내년 한해에만 4712억원의 국민세금이 투입되는데, 문제는 정부가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총체적인 예산이 아니라 2019년도 사업추진에 필요한 예산만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년에는 4700여억원이 소요되지만 그 이후에는 북한에 지원되는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씨티그룹은 지난 6월 한반도 통일 후 북한의 경제를 정상화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이 약 70조 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 전망했고, 미래에셋대우는 철도에 57조원, 도로 35조원 등 총 112조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지난 2014년 금융위원회는 ‘통일금융 보고서’를 통해 철도 85조 300억원, 도로 41조 1400억원 등 총 153조 12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


즉, 금융권에서 전망한 비용추계 현실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철도·도로 등 5년 내지 10년 이상의 장기프로젝트 예산을 1년 치만 계산해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


TV조선 캡쳐화면.

추석 밥상머리 민심 의식?…강석호 “구체적인지 못한 비용추계, 비준동의 요건 갖추지 못해”


이에 대해 야당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세금 퍼주기라는 반발여론이 거세질 것을 우려해 1년치 예산만 계산한 꼼수라 보고 있다.


야당의 이 같은 인식에 정부는 “북측 지역에 대한 현지조사, 분야별 남북 간 세부합의 등을 통해 재정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이전까지는 연도별 비용추계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이러한 설명에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통과에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지난 12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비준동의안 부대의견을 통해 ‘북측 지역에 대한 현지조사 또 분야별 남북 간 세부합의 등을 통해 재정지원 방안 마련 이전까지는 연도별 비용추계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고 스스로 인정을 했다”며 “이것은 구체적인 비용추계가 아님으로 남북관계발전법 제21조 3항에 따른 중대한 재정적 부담의 근거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꼬집었다.


남북관계발전법 3항에는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는데, 정부가 구체적인 비용추계를 갖추지 못함에 따라 비준동의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송영길 “퍼주기로 본다는 것은 너무 편향적 시각”


정치권 안팎에서는 비핵화에 대한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황인데, 정부가 세금 퍼주기에만 안달이 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은 지난 13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철도를 깐다는 것은 퍼오기 위한 준비작업 아니겠느냐”며 “북한에 철도를 연결한다는 것은 퍼오기를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봐야지 퍼주기로 본다는 것은 너무 편향적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철도를 깔아야 퍼올 것 아니냐”며 “석탄도 퍼오고, 철광석도 퍼오고, 모래도 퍼 와야 하고, 여러 가지 석회석도 퍼 와야 하고, 북한에 서 퍼 올게 많다”며 “그런데 그걸 그냥 가방으로 들고 올 수 없지 않느냐, 철도를 깔아야 퍼올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왜 만주에 철도를 깔고 독일과 그리고 러시아가 왜 만주 이런 데에 제일 먼저 철도를 깔려고 했겠느냐”며 “철도를 깔아야 자원을 자기들이 산지에서 반출해 자기 나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철도부터 까는 것 아니겠나, 그렇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연결된다면 우리가 가져올, 흡수할 역량이 더 커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여러 가지로 북에도 일부 도움이 되지만 우리 남쪽에도 훨씬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왼쪽) 대표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송영길 의원을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당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차관도 아직 회수 못해”


퍼주기가 아닌 퍼오기라는 송 의원의 주장과 달리 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 막대한 예산을 차관 형식으로 지원했는데, 현재까지 자금 회수가 되지 않는 선례를 내세워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재정 지원은 사실상 퍼주기라고 꼬집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철도, 도로협력, 산림협력 사업으로 2019년에만 2986억원의 막대한 국민 세금을 북한에 대해 차관 형식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때 3억 2700만 달러(현재 환율가치로 3670억원), 노무현 정부 6억 500만 달러(6791억원)의 차관을 북한에 지원했는데, 북한에 대한 차관은 사실상 퍼주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 1조 500억원에 달하는 차관에 대해 매 분기 독촉장을 보내지만 회신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2012년 이후 상환기일을 맞았지만 상환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정부가 다시 북한에 대한 차관으로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철도·도로 북측구간 개보수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아울러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을 맡아 운용하는 한국수출입은행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한국당 추경호 의원은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을 향해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대북 차관이 1조원 이상 가 있지만 원금총액기준 회수율이 0.4%에 불과하다”며 “초기 240만 달러(약 27억원)를 회수한 것 외에 자금 회수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의원은 이어 “원금상환 기일이 도래하고 있고 이미 도래한 금액만도 2000억원인데, 지금까지 못 받은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전부 국민혈세인데, 앞으로 남북협력 상황이 호전되면 (정부가)아예 탕감해주겠다고 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질책했다.


같은 당 박명재 의원도 “원금상환이 도래한 차관에 대한 연체금만 무려 1668억원이고, 연체이자만 432억원, 이에 따른 지연이자만 20억원”이라며 “무의미하게 분기별 독촉장만 보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결국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 향후 수십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를 환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퍼주기가 아니냐는 쓴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 없는데…퍼오기라는 장밋빛 환상에만 매몰


물론 송영길 의원의 주장대로 석탄도 퍼오고, 철광석도 퍼오고, 모래도 퍼오고, 석회석 등 북한의 천연광물 자원을 퍼 온다면 판문점선언 이행에 투입된 예산을 충당할 수도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통일 후 10년간 주요 광물 수입을 북한산으로 대체할 경우 45조원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주요 광물 자원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탐사에서 생산까지 10년 이상 필요하고, 사업 과정 중 급작스런 남북관계 경색 등 각종 변수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자칫 투자대비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하지도 않은 상황에,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은 상황에 그저 퍼오기라는 장밋빛 환상에 매몰된 채 조급하게 퍼주려는 작태가 과연 상식적인 처사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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