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가득한 개편안…‘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2018년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급 보장 명문화' 등을 촉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 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비유할 때 닭의 갈비뼈란 뜻을 지닌 ‘계륵’이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지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이 딱 계륵과 같다. 2057년 기금 고갈이 예상됨에 따라 국민연금 보험료를 서둘러 인상해야 하는데 국민적 반발·저항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50%대 중후반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강단을 갖고 과감하게 추진해 볼 법도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자칫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지방선거는 역대급 압승을 기록했고, 내년에도 선거가 없지만 2020년 예정된 국회의원 총선거를 감안하면 민심을 달래지 못한 채 강단만 갖고 밀어붙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역대 정권도 국민연금 개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국민연금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에 <스페셜경제>가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국민연금 논란 및 문재인 정권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다.


두 가지 개선안…보험료 인상 불가피


정부가 지급보증에 나서지 않는 이유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재정추계위)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국민연금재정계산 장기재정전망결과에 대해 발표했다.


재정추계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기금은 오는 2041년까지 최대 1778조원까지 증가하다 2042년부터 총지출이 총수입보다 많은 적자 전환이 예상되고, 2057년에는 기금이 완전 고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 고갈 시기는 5년 전 실시한 3차 재정추계 때 보다 3년이 앞당겨 진 것인데, 저출산·고령화·저성장 등 3가지 요인이 악재로 작용하는 것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재정추계위는 두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가)안은 2007년 연금개편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 40%까지 인하하기로 한 현행 소득대체율(2018년 45%→2019년 44.5%)을 45%로 재조정 하고, 현행 보험료율(9%)에서 내년부터 2%포인트 인상한 11%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월 소득 300만원의 직장가입자는 월 27만원(현행 9%)에서 3만원 오른 월 30만원(11%, 3만원은 사업장납부)을 납부해야 하고, 지역가입자는 월 6만원씩 연 72만원을 추가로 더 내야 한다.


아울러 연금 1년치를 지급할 수 있을 만큼의 기금 적립 상태가 어려워지는 2034년부터는 보험료율을 12.31%로 추가 인상하고, 5년마다 이뤄지는 재정계산을 통해 적정 보험료율로 자동 조정한다는 것이다.


(나)안은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떨어뜨리기로 한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내년부터 2029년까지 10년에 걸쳐 보험료율을 13.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2030년부터는 연금 수령 나이를 67세로 높이거나 연금수령액을 줄이는 방안이 담겨 있다.


정부는 소득대체율 수준에 따라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내년부터 즉시 2%포인트 올리거나 10년간 4.5%포인트를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물가상승·고용감소 부작용 우려…국민 불신, 개편 최대 걸림돌


재정추계위가 제시한 (가)안과 (나)안 둘 다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직장·지역 가입자와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거나,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로 고용이 악화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보험료 인상이 원가 상승 등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가격 인상을 하지 못하는 업종의 경우 경영실적 악화로 부도가 늘어나고 인건비 부담 증가로 신규 채용이 감소되는 등 고용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현재의 9% 보험료 하에서 2016년 말 지역가입자 중 장기체납자는 104만명인데, 보험료가 인상되면 체납자가 증가하게 된다”면서 “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국민연금 미가입이 증가해 연금 사각지대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대한민국은 현재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 사회로 접어든 상황인지라 기금이 소진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개편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개편하기 위해선 주체인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국민들은 ▶더 내고 덜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자율적 의사를 무시한 강제적 가입 및 강제 징수에 대한 불만 ▶국민연금 적자 발생 시 국가가 이를 지급 보증해 줄 것에 대한 명문화 거부 ▶국가가 지급 보장하는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에 대한 개편 및 국민연금과의 통폐합 요구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 대한 불신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국민들 입장에선 국민연금 개편에 대한 취지나 목적이 합당하더라도 국가가 법적으로 지급 보증도 하지 않는 국민연금에 강제 가입하는 것도 억울한데, 돈까지 더 내라니 반발과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이 2057년에 소진될 전망이다. 5년 전 재정계산 때보다 기금 고갈 시점이 3년 앞당겨진 것이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지난 17일 이같은 내용의 4차 국민연금 장기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지급보증→국가부채 급증→신용등급 하락


그렇다면 정부는 왜 법적으로 국민연금 지급 보증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1556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845조 원 가량이 공무원연금 등 충당 부채다. 정부가 직접 빌린 돈은 아니지만 공무원이나 군인 등의 연금 기금액이 부족할 경우 나랏돈으로 메워야 하는 금액이 국가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는 62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보증을 할 경우 국민연금의 미적립부채가 국가 회계 지표상 부채로 인식돼 국가부채가 급작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부채가 급작스럽게 늘어날 경우 국가 신용 등급 하락 등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법적으로 국민연금 지급 보증 명문화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국민 설득 없는 간 보기‥국민적 저항·반발


코드인사 배제하고 고갈시기 늦추는 게 우선


언론에 찔끔찔끔…여론 들끓자 한 발 뺀 文 정부


문제는 정부가 ‘국가부채 급증→국가 신용 등급 하락’ 등을 들어 선뜻 국민연금 지급 보증에 나서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회피하면서도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만 펴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인데, ‘기금 소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돈을 더 내라’는 식이니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대국민 설득 방식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재정추계를 발표하기 전부터 일부 내용을 언론에 조금씩 찔끔찔끔 흘리며 여론의 향배를 살피더니,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거세게 일어나자 ‘자문안’일 뿐이라고 한 발 빼면서 10월 말까지 정부안을 만들겠다며 선긋기를 나섰다”고 질타했다.


함 의장은 이어 “그러다 지난주(17일) 발표할 때에는 반발 여론을 의식해 재정추계에 대한 정확한 수치 제시도 없이 내년부터 보험료율을 2% 인상하고 2034년 12.31%로 올리면 지금처럼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이라며 “진정으로 국민 노후를 생각한다면, 정부가 먼저 나서서 현재의 재정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보험료 인상을 포함한 재정추계 관련 모든 수치와 자료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한 후에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함 의장의 지적대로 불신이 가득한 국민들을 설득하기도 전에 국민연금 보험료 최대 4% 인상, 수령 연령은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와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여론이 들끓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연금 문제로 여론이 들끓는다는 보도를 봤는데, 보도대로라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면서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노후소득 보장을 확대해 나가는 게 정부 복지 정책의 중요 목표 중 하나인데, 마치 정부가 정반대로 그에 대한 대책 없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높인다거나 연금지급 시기를 늦춘다는 등의 방침을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진 연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메시지 혼선을 질책했다.


문 대통령도 대국민 설득 없이 마치 여론을 간 보는 듯한 방식을 취한 복지부를 질타하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태 “보건복지부는 정부가 아닌가…정부 납득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다만, 복지부를 질타하고 나선 문 대통령을 겨냥한 쓴 소리도 제기됐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다음날인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표단-상임위원장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내가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국민연금 문제를 덮고자 대통령이 나섰다”면서 “국민연금제도개선안이 보건복지부에 나왔는데 보건복지부는 대한민국의 정부가 아닌가”라고 쏘아 붙였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내가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를 납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김 원내대표의 이 같은 지적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정부에서 나온 안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정부를 납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제 발등 찍기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기금운용 관련 경력 전무한 코드인사가 수장인 국민연금공단…불신은 당연지사


대국민 설득에 앞서, 또 보험료 인상을 떼쓰기 전에 정부가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시간이 갈수록 연금고갈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인데, 국민연금의 고갈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국민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왜 빨리 안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기금운용본부장 왜 이렇게 오래 공석으로 놔두는 것인가”라며 “기금운용 수익률 1%를 늘리면 기금고갈 5년을 연장시킬 수 있는데, 평균 6%대 기금 수익률이 1% 대로 떨어졌다는 것은 무려 25년이나 기금 고갈을 앞당기고 있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는 모르고 있다”고 직격했다.


실제로 635조원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점을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지난 2014년에서 2016년까지는 4~5%가량이었고, 지난해의 경우 글로벌 주식시장 활황으로 7.26%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 5월까지의 수익률은 0.49%로 추락했다. 특히 국내 주식 부분에서 거둔 수익률은 -1.18%를 기록했는데, 이는 시장 수익률인 -0.2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운용수익률 하락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총괄하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 동안 공석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사표를 낸 뒤 줄곧 인선을 못하고 있다가 지난 5월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청와대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면서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이 과정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곽 전 대표에게 전화로 본부장 지원을 권유한 사실이 드러나 ‘청와대 코드인사’ 논란이 불거졌는데, 김성주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기금운용 관련 경력이 전무한 대표적 정권 코드인사로 꼽힌다.


따라서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는 능력이 출중한 기금운용본부장을 서둘러 임명함은 당연하거니와 기금운용본부의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 보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즉, 정권 코드 인사 등 정치적 개입을 아예 배제하고 독립성과 자율성, 전문성을 보장해 기금운용을 정상화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국민들 불신이 극에 달했는데도 대국민 설득 없이 그저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떼쓰지만 말고, 우선적으로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대책부터 세우는 등 국민 불신부터 해소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연금 개편으로 선거 패배의 쓴 잔을 마셨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마찬가지로 2020년 치러질 총선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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