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주 기자]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이어 배터리 산업까지, 세계 1위 기술력을 보유해 점유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뒤를 중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자국 기업에게만 배터리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 배터리들이 경쟁력을 잃고 점유율을 내주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중국이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장착된 벤츠 차량을 형식 승인했다”고 언급함에 따라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됐으나, 3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 국내산 배터리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가 보조금 대상이 되면 국내 업체들의 중국 진출 문이 열린다는 의미여서 보조금 지급 리스트에 올라가기를 바랐는데,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 안타깝다”며 “정부가 보조금 지급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기준 1위를 차지한 업체는 중국 CATL(5713.6㎿h)이었다. 지난해 점유율이 8.3%에 불과했으나 올해 상반기 19.1%까지 끌어올려 배터리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이밖에도 BYD, 파라시스, 궈쉬안(國軒), EVE 등 10위 내에 중국 기업만 5개나 포함됐다. 국내 기업은 LG화학(2762.6㎿h)이 4위, 삼성SDI(1335.3㎿h)가 6위를 기록했다.


이렇듯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이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다.


중국은 앞서 자국 기업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배터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업 57개사를 발표한 바 있다. 최종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 배터리 업체는 제외됐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판매 가격의 최대 절반 가량을 보조금으로 ‘파격’ 지원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외국 배터리 업체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정부는 자동차 업체에 전년 판매한 내연기관 자동차 대수의 10%에 해당하는 전기차를 그다음 해에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하는 등 전기차 시장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당장 중국 시장 진입이 막힌 것뿐만 아니라 제품을 차에 탑재해 테스트하면서 성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그런 기술 개발 기회조차 박탈당해 중국업체에 대한 기술 우위를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상반기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1위를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 업체 CATL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CATL은 애플 아이폰에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요 스마트폰 배터리를 공급한 암페렉스테크놀로지(ATL)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을 분리해 설립된 기업으로, 신생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관계자는 “CATL의 모회사인 ATL이 2005년 일본 전자부품 업체 TDK에 인수된 이후 CATL은 일본 기술의 도움으로 한국과의 배터리 기술 격차를 빠르게 줄여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업체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미국, 유럽 등에 판매하기 위해 시장을 개척 중이다. 국내 시장은 주요 국가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이 더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기차 시장이 확대돼야 배터리 업체들도 국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지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데, 국내 시장이 워낙 작아 그렇게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생산한 물량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폭스바겐, 다임러, BMW 등 유럽 쪽에 납품하고 있다”며 “유럽의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그나마 한숨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배터리 시장 내에서는 한국이 중국보다 기술력 부문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국내 기업은 중국의 주력 제품 ‘LFP 배터리’보다 부피가 15% 이상 작고 20% 이상 가벼운 ‘삼원계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광주 SNE리서치 대표는 “LG화학과 삼성SDI의 기술력을 100으로 본다면 중국의 배터리 회사 중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CATL은 95, BYD는 92, 나머지 기업들은 90 이하”라며 “전기자동차에서 배터리는 자동차의 신뢰성과 안전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품이라,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지만 완성품의 품질로 따지면 아직도 큰 격차”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자국 기업 지원도 영원할 수 없으며 2020년에도 기대 수준에 못 미칠 경우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조금이 폐지되면 세계 최고 배터리 제조업체 파나소닉 등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 기업들도 넘어야 한다”며 “그때부터 배터리 시장을 놓고 한ㆍ중ㆍ일 3국 간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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