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주 기자]금융당국이 계속해서 ‘즉시연금 일괄구제’로 생명보험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이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국의 요구를 수용하기엔 법적 근거가 명확치 않고 회사에 큰 타격을 입힌다는 이유다.


다만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당초 즉시연금 가입설계서에 예시된 최저보증이율(2.5%)에 미치지 못하는 연금 차액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다른 생보사들이 삼성생명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던 바,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26일 <머니투데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즉시연금 일괄구제안을 부결시켰다. 다만 즉시연금 가입설계서에 예시된 최저보증이율(2.5%)에 미치지 못하는 연금 차액은 일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생명 이사회는 ‘즉시연금 일괄구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감독원의 요청대로 민원인 분쟁조정 결과를 전체 가입자에게 일괄 적용할 경우 ‘배임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다는 의견이다.


이와 관련 삼성생명 관계자는 “향후 소송 가능성 등 법리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사회가 이같이 결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입설계서의 예시가 소비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 5만천여명 중 최저보증이율 예시액보다 적게 수령한 가입자가 몇 명인지는 산정 작업을 거쳐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 지급할 금액은 37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즉시연금 일괄구제’ 금융당국과 생보사들이 대립하는 핵심 쟁점은?


금감원과 생보사들의 대립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민원 1건에 대한 조정을 전체 가입자에 적용하는 ‘일괄 구제’의 합리성 여부와 ‘보험금 산출방법서 효력 여부’다.


먼저 ‘보험금 산출방법서 효력 여부’다. 금감원이 생보사에게 일괄 구제를 요청한 것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약관에 ‘공제’를 언급한 내용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대해 생보사들은 약관에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따라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실제로 해당 내용이 보험금 산출방법서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금감원 측은 약관규제법을 근거로 약관에 없는 사항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판매자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실제로 약관에 연금액 산정 방법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앞서 지난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은 “1차적 책임은 보험회사에 있다”며 “일괄구제가 사회적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언급해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일괄 구제의 합리성 여부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11월 제기된 민원 조정을 수용하자 금감원은 삼성생명에게 이와 유사한 사례 5만5천여건에 대한 일괄구제를 요청한 것은 물론, 전체 생명보험사에 16만건이 넘는 사례에 대해 일괄구제를 주문했다.


금감원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상품 자체의 하자를 지적하며 민원 신청인만 구제할 경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생보사들은 금감원의 요청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의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소급 적용해 일괄 지급하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약관을 검토 및 승인한 금융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사실상 사업비 등을 전혀 떼지 말고 보험 계약을 운용하라는 금감원 논리는 보험의 기본 원리와 어긋난다”며 “과거 약관을 심사한 금융감독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언급했다.


금감원?생보사, 결국 ‘소송전’ 택할까?


금감원에 따르면 즉시연금을 미지급한 생보사들은 총 20개에 달하며 관련 가입자와 규모가 총 16만명, 최대 1조원으로 집계됐다. 적지 않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를 비롯해 중소형 보험사들은 삼성생명 이사회 결정을 지켜본 후 결정하자는 눈치였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일괄구제 요청 불복 결정이 다른 생보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다가 삼성생명이 향후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금융당국과 생보사 간 치열한 소송전을 치를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적지 않은 금액도 문제지만 개별 민원 건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일반화해서 소급하라는 데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이번 건 외에도 나중에 유사한 건이 생기면 계속 일괄적용하라고 요청할까 우려된다"고 말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다른 생보사 관계사는 앞서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 당시 금감원이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보험금을 전액 지급할 것을 요구했던 사례를 들며 “금감원의 압박은 사실상 법보다 세다”고 언급해 생보사 간에도 '소송'을 두고 의견이 다소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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