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주 기자]지난해 자살보험금 사태에 이어 즉시연금 사태가 화두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제창하며 보험사들에게 일괄 지급하라고 압박하는 반면, 보험사들은 과거 금융당국이 허락한 약관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의 즉시연금 일괄지급을 두고 비상이 걸린 생명보험사들이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대형 생보사들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구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한화생명은 늦어도 내달 중순 이전까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즉시연금 미지급액 규모는 삼성생명의 경우 4300~4500억원, 한화생명은 800~900억원 수준으로 산정됐다. 이밖에 중소형 보험사들까지 합칠 경우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는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생보업계 관계자는 "적지 않은 금액도 문제지만 개별 민원 건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일반화해서 소급하라는 데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이번 건 외에도 나중에 유사한 건이 생기면 계속 일괄적용하라고 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논란’ 자살보험금 사태 재현되나?


즉시연금 일괄지급 여부를 두고 보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자살보험금 사태’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금감원은 피보험자가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약관을 근거로 자살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생보사들에게 이를 소급적용해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생보사들은 ‘약관상의 실수’라며 자살은 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섰으며, 대법원 역시 청구권 소멸시효인 2년이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금감원은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보험금 전액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고 이에 맞서던 생보사들은 일부 영업정지, 기관경고 등의 제재를 받고 결국 전액 지급했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의 압박은 사실상 법보다 세다”며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 당시와 마찬가지로 금감원의 피감 대상인 보험사 입장에서는 결국 보험금을 주라면 줄 수밖에 없다”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금감원 “금융 소비자 보호” vs 생보사 “과도한 요구”


앞서 자살보험금 사태와 현재 즉시연금 사태 모두 ‘잘못된 약관’으로부터 비롯됐다. 과거 국내 보험사들은 주로 외국 보험사의 약관을 번역해 사용하는 관행이 있었고, 이 때 금감원도 이를 허가했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이 미흡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고의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소급 적용해 일괄 지급하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고 반발했다.


게다가 당시 약관을 검토 및 승인한 금융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사실상 사업비 등을 전혀 떼지 말고 보험 계약을 운용하라는 금감원 논리는 보험의 기본 원리와 어긋난다”며 “과거 약관을 심사한 금융감독 역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요구를 따를 수 없다며 소송전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금융사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현실적으로 강력한 제재가 우려돼 소송까지 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책임 여부를 떠나 잘못을 지적하고 할 일을 한다는 것이 윤석헌 원장을 비롯한 우리의 입장"이라며 "즉시연금 미지급 건에 일괄구제를 적용하도록 보험사들을 지도하고, 소비자 보호 취지에 어긋나는 사례에 엄정히 대응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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