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주 기자]채용 비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중은행이 하반기 채용부터 필기시험을 도입했다.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금융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작 필기시험을 도입한 은행과 이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학원들만 은행권 필기시험 대비 강의를 쏟아내며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반기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은 약 2150명을 채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무려 20% 가량 늘어난 규모다.


취업의 문이 넓어진 것으로 보이나 정작 취업준비생들은 소위 ‘은행고시’라고 불리는 필기시험이 도입돼 혼란을 겪고 있다. ‘은행권 채용비리 논란’으로 한바탕 골머리를 앓았던 은행연합회가 채용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필기시험 도입을 제시한 탓이다.


필기시험을 도입하는 은행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필기시험에 포함되는 과목, 문제 수, 난이도 등을 안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은행이 외부 전문기관에 필기시험 문제 출제를 맡긴 것으로 안다”며 “당장 구체적으로 안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은행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한 취준생은 “올 상반기에 우리은행 공채에 응시해 11년 만에 부활했다는 필기시험을 치렀다”며 “예상보다 훨씬 어려워 하반기 취업에 성공하려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해 은행 필기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은행권 필기시험 부활로 은행권과 취준생이 혼란스러워 하는 가운데 취업 대비 학원, 인터넷 강의 사이트 등은 이를 반기는 눈치다. 은행 취업을 원하는 취준생들의 문의가 빗발치면서 학원가 사이에서는 심지어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은행 필기시험을 대비한 각종 강의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는 은행별로 강의가 준비돼 있으며 30일 기준 13만원대를 호가한다.


은행 취업을 준비하는 또 다른 취준생은 “5개 은행 시험을 준비하려면 수강료로 3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면서도 “부담이 크지만 불안하기 때문에 가급적 전부 들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은행과 취업준비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필기시험의 도입 취지가 ‘객관성 및 투명성 제고’라는 점에서 그동안 논술시험을 치렀던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등이 논술시험 폐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술시험의 경우 주관적 채점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는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논술, 약식 문제를 빼고 객관식으로 구성하는데 이 경우 변별력을 높여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치뤄지는 서류에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필기전형 기회를 준다는 방침이어서 필기에서 상당수가 걸러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은행권에서는 필기시험 도입으로 채용비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다양한 사고방식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필기시험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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