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반성은 없고 남 탓만’…‘적군보다 심각한 내부총질’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의 미래 포럼 세미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진태, 박완수, 심재철, 유기준, 윤상직, 원유철, 이종명, 정우택, 정용기 의원 등이 참석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자유한국당은 다음 총선에서 소멸될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 같은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20대 총선 참패에 이어 지난해 대선 패배, 올해 지방선거까지 처참하리만치 대참패를 당했으면 당을 해체하든지, 혁신 및 쇄신에 사활을 걸든지, 통렬한 자기반성을 보여주든지, 그것도 아니면 한데 똘똘 뭉쳐 분위기를 다잡던지 해야 하는데 누구 말마따나 ‘콩가루 집안’임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보니 국민들 입장에선 정신 차리긴 글렀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주군으로 삼았던 친박계는 국정농단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로 보수진영을 궤멸 위기로 몰아넣은 원죄에 대해 국민들 앞에 단 한 번도 사죄한적 없으면서, 홍준표 체제에서도 그러더니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남 탓만 하며 당내 분란만 유발시키는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보수우파를 궤멸 지경까지 이르게 한 친박의 적나라한 민낯에 대해 들여다봤다.


김성태·김무성 비토…당권 재탈환 노림수


불법·노골적인 공천 개입‥수혜 입은 친박


전쟁 시 눈앞에 있는 적군보다 무서운 건 등 뒤에서의 아군의 총질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사천(私薦)과 독선적 리더십, 막말 등을 일삼은 결과 지방선거라는 전쟁에서 적군에 압도적 승리를 헌납하는 일등공신이 됐다.


패장이 된 것이다. 홍 전 대표는 대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군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든 책임은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장군이 지는 게 맞지만, 부장급 장수라 할 수 있는 중진 의원들은 과연 책임이 없을까.


한국당 내 중진 인사 일부는 마치 전쟁에서 패배하기를 바랐던 듯 선거를 앞둔 상황에 내부 총질로 분란을 일으켜 사기를 저하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중·하급 장수인 초·재선 의원들은 또 어땠나.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 채 몸 사리기에 바빴다.


결국 한국당 일부 장수들은 지방선거라는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패장이 물러나자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부 중진 및 친박계는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친박계는 주군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격히 세가 줄어들었고, ‘홍준표 대선 후보-홍준표 당 대표 체제’를 거치면서 입지는 더 좁아진 상태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반발이라도 할라치면 ‘바퀴벌레’, ‘연탄가스’, ‘고름’, ‘암덩어리’ 등 더 센 막말이 되돌아오는 등 눈 엣 가시 같은 홍 전 대표가 퇴장한 지금이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당권을 재탈환할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그러나 부대장격인 김성태 원내대표가 패장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는 조기 전대 개최에 제동을 걸었다.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금 당장 전대를 개최하기보단 총체적 난국인 당을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수술대에 올려 당 해체에 버금가는 쇄신을 우선적으로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무성에게 총구 겨둔 친박


당권 재탈환을 노려왔던 친박계는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김성태 대행도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다며 퇴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기 전대를 개최해 신임 당 대표 및 지도부를 뽑아 당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 유일 법통을 지닌 김 대행이 조기 전대 주장을 일축하고 꿋꿋하게 혁신 비대위를 추진하자, 친박계는 김 대행을 겨냥한 총구를 유지한 채 또 다른 방향으로 총구를 겨눴다.


비박계(복당파)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6선)이 친박계의 타깃이 된 것이다.


김규환·김순례·성일종·윤상직·이종명·이은권·정종섭 의원 등 친박계 초선과 김태흠·이장우·정용기·김진태 의원 등 친박 재선 및 유기준·정우택 의원 등 친박 중진들은 김 대행의 사퇴는 물론 김무성 의원의 탈당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탈당했으니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도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나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김무성 의원이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올린 호소문을 꼬투리 잡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금은 서로 화해하고 용서할 시기이며, 남의 탓이 아닌 자기 탓을 할 때’, ‘우리 모두 자중자애하면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하자’, ‘과거에 얽매여 구성원 간에 서로 분란만 키워서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며 당 화합을 통해 과거가 아닌 당의 미래를 논의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는 “과거를 묻어두고 잊자는 이야기인데, 이는 보수가 아니다. 과거를 알아야지 미래를 개척하고 미래를 대변한다”고 반박했다.


또 “(김무성 의원은)지난 20대 총선 당시 공천 파동의 장본인이자, 특히 옥새 파동은 총선 실패의 화룡점정이었다”고도 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의 미래 포럼 세미나. 이날 세미나에는 김진태, 박완수, 심재철, 유기준, 윤상직, 원유철, 이종명, 정우택, 정용기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원칙과 기준 무너트린 막장공천


그렇다면 이들의 지적대로 과거를 알아보자. 정말 20대 총선 실패의 장본인이 김무성 의원이었는지, 나아가 누구 때문에 보수우파가 궤멸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말이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 심리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이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여론조사를 통해 이른바 ‘친박 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를 토대로 정무수석실에 친박에게 유리한 선거 전략을 수립하게 하는 등 공당(公黨) 경선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을 받고 있다.


친박 리스트 작성에 필요했던 여론조사 비용은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받아 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20대 총선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통해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정황을 털어놨다.


신 전 비서관 증언에 따르면, 당시 친박계가 최대한 많이 당선되게 할 목적으로 청와대가 공천룰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주도자는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으로, 당시 김무성 대표 주도 아래 공천룰을 정할 경우 친박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우려였다는 것이다.


신 전 비서관은 “김무성 당시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 100% 국민참여 경선을 하겠다고 주장했는데, 청와대에선 불가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 주도하에 당 사무처가 공천룰을 정하면 친박에 불리하게 짜일 가능성이 있었나’라는 검찰의 물음에, 신 전 비서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엘시티 비리에 연루돼 지금은 감옥에 가 있는 현기환 전 정무수석의 주도로 작성된 공천룰에는 ‘100% 국민참여를 실시할 경우 비박계가 현재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비박이 아니더라도 재선에 성공한 현역 의원들이 김무성 대표에게 호의적일 것’,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인적 쇄신 기회를 잃는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는 비박계를 배제하고 친박계가 많이 당선되게끔 박근혜 청와대가 공당 공천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공천룰은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전달됐다는 게 당시 청와대 근무자의 설명이다.


이날 신 전 비서관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박모 전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해당 자료는 현기환 정무수석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해 오케이(승인)를 받았다”며 “자료는 이한구 위원장이 선임된 직후 전달됐다”고 밝혔다.


신 전 비서관도 “실제 (당내)경선에서도 청와대 공천룰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결과적으로 청와대 공천룰이 (100%도 아니고)150% 반영됐다”고 말했다.


결국 20대 총선 공천은 공당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진, 그리고 당원과 국민을 무시한 박근혜 청와대의 막장공천이었다는 것.


‘과거를 묻어두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라고 지적한 친박계. 과거를 살펴보니, 박근혜 청와대의 불법적이고 노골적인 공당 공천 개입에 수혜를 입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과거 불법적이고 노골적인 박근혜 청와대 공천 개입에 수혜를 입은 자신들부터 석고대죄하고 당을 떠나야 하는 게 맞지 싶다.


2016년 3월 13일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5차 공천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공천 발표에서 김무성 대표 지역구는 또다시 발표하지 않았다.

洪 품격 없다?‥보수 품격 운운할 자격 있나?


궤멸의 단초 ‘김무성 죽이기’‥靑+친박 합작품


보수의 품격 떨어뜨린 박타령…당 대표의 권위와 품격↓


20대 총선 당시 김무성 대표는 국민공천제(상향식공천)를 주창했다.


당 대표 권한인 공천권을 내려놓고 국민들이 직접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국민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취지였다.


김 대표는 국민공천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비례대표 의원을 단 한 사람도 추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청와대는 친박계에 유리한 공천룰을 만들거나 내리꽂기 식 전략공천을 자행했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에서 호가호위했던 인사들 및 진박(眞朴-진짜 친박)들 대부분은 공천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불법적이고 노골적인 청와대 공천 개입을 통해 공천권을 거머쥔 친박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친박을 넘어 뼈박(뼛속까지 친박), 골박(골수 친박), 옹박(옹호부대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원박(원조 친박)등 별 희한한 박들을 탄생시켰고, 급기야 진실한 친박을 감별한다는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하는 등 도를 넘은 박근혜 마케팅으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홍준표 전 대표의 다소 거친 입담에 ‘품격이 없다’고 비난했던 친박계가 과연 보수의 품격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원칙과 기준을 어긴 사천(私薦)에 반발했던 김무성 대표를 향해서는 공개적으로 온갖 모욕과 수치를 안겨주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등 당 대표의 권위와 품격을 땅에 떨어뜨리는 이른바 ‘김무성 죽이기’가 자행되기도 했다.


2016년 11월 9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캡쳐.

"김무성은 피해자"…내부총질로 피멍든 대권주자


한국당 일각에서는 친박계의 내부 총질로 김무성 의원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고, 이는 보수우파 궤멸에 단초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


친박계는 이날 의총에서도 김성태 대행의 사퇴와 김무성 의원의 탈당을 촉구했다.


이에 김무성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학용 의원은 “김성태 원내대표를 찍지도 않고 반대했던 분들이 물러나라고 하고, (원내대표 경선에서)김 원내대표와 경쟁했던 중진이 (김 원내대표에게)물러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며 김성태 대행을 엄호했다.


특히 김무성 의원의 탈당을 요구하는 친박계를 향해서는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하던 김무성 전 대표를 내부에서 총질해서 죽였다”며 “김무성은 (친박계 내부 총질의)피해자”라고 날을 세웠다.


실제로 김무성 의원은 20대 총선이 있기 넉 달 전인 2015년 12월 3주차 리얼미터 주간집계 여론조사에서 20.3%의 지지율로, ‘25주 연속’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기록했다.


20대 총선 한 달 전이었던 2016년 3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정례 차기 대선주자 양자대결 지지도 조사에서는, 김무성-문재인 양자대결에서 김무성 대표는 45.0%를 기록해, 44.0%를 기록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우위를 보였다.


김무성-안철수 양자대결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44.2%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37.2%)에 오차범위(±3.1%p) 밖인 7% 포인트 더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굳이 가정을 해본다면,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취지를 살린 국민공천제를 적용해 20대 총선을 치렀다면, 청와대가 불법적이고 노골적인 공천 개입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박근혜 청와대 및 친박계가 이른바 ‘김무성 죽이기’를 자행하지 않았다면 총선에서 처참하게 참패했을까.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았다면 대통령 파면에 이어 조기 대선의 단초가 됐던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가 가능했을까.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을까.


명실상부한 보수우파의 대권주자와 그의 어젠다(국민공천제)를 적군도 아닌 아군의 내부 총질로 정치적 타격을 입힌 결과, ‘총선 참패→대선 패배→지방선거 대참패’로 이어졌고 차기 총선에선 소멸될 위기를 가져왔다.


이쯤 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고, 누가 당을 떠나야 하는지는 굳이 지목하지 않아도 자명해 보인다.


(위)2015년 12월 3주차 주간집계, (아래)2016년 3월 정례 차기 대선주자 양자대결 지지도 조사(리얼미터).

홍준표가 막말을 쏟아냈던 이유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해 5·9 대선 직후인 5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참 가증스럽다”며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친박계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지난 3월에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서울시장 후보를 영입하지 못하자 친박계 등 일부 중진 인사를 중심으로 홍준표 대표가 직접 서울시장에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자 “그들의 목적은 나를 출마시키면 당이 공백이 되고, 그러면 당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음험한 계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이 당을 이 지경까지 만들고도 반성하지도 않고 틈만 있으면 연탄가스처럼 비집고 올라와 당을 흔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지방선거 끝나고 다음 총선 때는 그들도 당을 위해 헌신하도록 (서울)강북 험지로 차출하도록 추진하겠다”고 꼬집었다.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하고 있을 때 박근혜 정권에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했던 친박들은 이처럼 홍준표 체제에서도 틈만 나면 당을 흔들어 댔다.


국민들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린 한국당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이들 눈에는 성난 민심은 안 보이고 오로지 당권만 보이는가 보다.


다 쓰러져가는 당을 위해, 또 국민들이 등 돌리고 있는 보수우파의 재건을 위한 ‘자발적 인적쇄신’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제 남 탓은 그만하고 자기반성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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