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학생 ‘자살 징후’ 등 정신적 트라우마에도 사실상 방치

파주 지산고 사태가 불거진지 2년이 흘렀음에도 피해 학생 측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지난 2016년 불거진 파주 지산고등학교 ‘허위사실 유포 사건’과 관련, 이에 피해를 입은 학생 측이 학교는 물론, 경기도교육청이 오랜 기간 아무런 대처 없이 사실상 방치했다는 주장이 다시 한 번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교육계에 따르면 파주 지산고에선 지난 2016년 학내 유언비어를 둘러싸고 학생 및 교원 간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각종 소송전이 난무하는 등 이른바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해당 사건의 발단은 2016년 4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주 지산고는 당시 1학년부 교직원 연수를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한 부장교사의 여교사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0대 한 여교사는 부장교사로부터 ‘애교를 부리며 술을 따라봐라’라는 등의 성희롱적 발언을 수차례 강요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A 부장교사가 여학생과 ‘원조교제를 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고, 진상 조사과정에서 학생인권 침해 논란이 불거져 파문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당시 지산고 학부모회 등은 A 부장교사가 특정교사의 반 학생들을 체육교사실에 가두고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거나 퇴학시킨다는 협박 등 비정상적 행위를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A 부장교사는 자신의 의혹을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지산고에선 당시 교직원만 무려 수십 건에 달하는 민원·고발을 주고 받으며 진흙탕 싸움으로 확산됐다.


결국 감사원 감사가 그해 10월 진행됐고 이를 위임받은 경기도교육청이 자체 감사에 착수했다. 최근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 해당 사건이 새 국면으로 전환됐다.


檢, 지산고 관계자 벌금형 기소…명예훼손 혐의
어른 진흙탕 싸움에 애먼 학생만 피해…“도의적 책임조차 회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지난 2월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적용해 파주 지산고 영어교사 B(여·42) 씨와 이 학교 당시 학부모회 임원인 C(50) 씨, D(48) 씨를 각각 벌금 500만 원, 벌금 300만 원,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원조교제 등 허위사실 유포’ 피해 학생 고통 확대·재생산 일로


검찰에 따르면 영어교사 B 씨는 지난 2016년 이 학교 1학년 여학생 E 양이 A 부장교사와 원조교제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학교폭력을 저지르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는데도 A 씨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C 씨와 D 씨의 경우 당시 B 씨가 작성한 전단지를 50여 명의 학부모에게 무차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이 가열되는 사이 ‘원조교제’ 등 터무니없는 허위사실 유포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여학생 E양의 경우 학교는 물론, 교육청의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방치돼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 학생 학부모 측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딸이 이번 사건으로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극심한 고통 속에 2년을 보냈지만 학교나 교육청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적기관으로서의 직무 유기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밝혔다.


이번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대로 2년 전 비방 유인문을 공모해 만든 여교사와 학부모 간부 2명에 대한 벌금형이 청구되는 동안 학교와 경기도교육청은 사실상 아무런 사후 조치 없이 ‘수수방관’해왔다는 것이다.


피해 학생 측에 따르면 E양의 학부모는 딸로부터 사건을 전해들은 직후 학교는 물론 수차례 파주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을 잇달아 방문해 자신의 자녀에 대한 보호조치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 피해 학생 측은 “당시 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에서 진행된 감사와 별개의 문제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감사 이후에도 형사 사건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비방 문건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여학생을 위한 보호조치 관련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학교폭력 사안을 유포한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경기도교육청 소속이 아닌 학부모들에 대한 조사나 조치 권한이 없다는 답변만을 했다”고 덧붙였다.


피해 학생 측, “학교 및 교육청, 공적기관으로서의 직무유기 의심”


경기도교육청의 미흡한 대응이 이뤄지는 동안 관련 학생의 정신적 트라우마 등 피해는 확대돼 갔다.

결국 경기도교육청과 학교의 ‘나몰라라’ 행보가 지속되는 사이 E양의 정신적 고통은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E양 측은 “이 사건 이후에도 학교의 아무런 제재 없이 수업에 들어온 교사에게 여전히 수업을 받아야 했다”며 “이후 해당 비방 문건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실명이 언급되며 문자, 카톡 등으로 유포되기 시작했고 학교는 물론 지역 사회, 언론 등에도 다뤄지면서 피해 사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고 주장했다.


결국 E양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었고 심지어 자살 징후까지 발견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견디다 못한 이 학생은 지난해 4월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검찰 기소 뒤 피해 학생 측 줄기찬 항의에 경기도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감사관을 보내 조사하겠다는 답변을 학부모에게 보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기교육청은 사건이 불거진 당시에도 ‘늑장 대응-제식구 감싸기’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경기교육청은 무려 4개월을 넘게 이어온 감사 결과, 파주 지산고 관계자 4명에 대한 인사 조치만을 단행, 수십 건에 달하는 민원·고소 등을 감안했을 때 ‘솜방망이 징계’ 아니냐는 지역 사회의 지적과 함께 피해학생 보호 조치 역시 미흡하단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한편, 피해 학생 측이 수차례 국민 신문고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린 데 대해 그간 대응해온 파주시교육지원청 측은 “우리가 언론에 해명하기엔 적절치 않은 사안”이라며 “상급기관인 경기교육청에 문의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1~3월 기간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 및 피해를 입은 당사자 등의 사후 치료·상담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했다”며 “당시 학교 정상화가 시급한 상태였으며 적절한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워낙 복잡한 사안인 관계로 모두 해명하긴 곤란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다만 당시 수많은 민원인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 상황이었다”고 말을 아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교사의 명예훼손 건은 민원제기 이전 명예훼손으로 수사기관에 신고, 수사가 진행 중이었던 사항”이라며 “공무원 범죄 처리 절차와 동일하게 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0조의 규정에 의한 공무원범죄 처분결과 통보를 반영해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규정’ 제4조의 처리기준에 따라 행정 처분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기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정책 약속 첫 번째로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란 문구가 ‘버젓이’ 표기돼 있다. 지산고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사진=경기교육청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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