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배후는 시진핑?…‘차이나 패싱’ 간과한 文대통령

지난해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기업인 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참석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6·12 미·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역사적 정상회담을 연출하려 했던 청와대의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 확신했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99.9% 성사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확신은 결과적으로 장밋빛 낙관론에 지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지 하루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통해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틀을 버리지 못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결국 화를 부른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포커플레이어로 지목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북한 김정은의 두 번의 만남이 이번 정상회담 무산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고, 이를 간과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도 책임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그동안 청와대가 공들여온 미북 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된 결정적 이유에 대해 진단해봤다.


트럼프, 공개서한 통해 정상회담 전격 취소


펜스 저격한 최선희…분노만 불러온 자충수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를 계기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에 이어 4·27 남북정상회담까지, 모처럼 한반도에 평화의 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인 듯하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는 6·12 미·북 정상회담 개최라는 역사적 정상회담을 연출하려 했다.


여기에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더해 한반도에 ‘종전(終戰-전쟁을 끝냄)’을 선언하는 것까지 염두에 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김정은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반도 종전을 선언하는 것만큼 평화를 상징하는 멋진 일이 또 있을까.


트럼프로부터 날아온 비보…여지는 남겨둔 美·北


문 대통령의 이러한 기대감은 곧 현실이 될 줄 알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지 하루 만에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서한을 통해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슬프게도 당신(김정은)은 최근 성명을 통해 우리에게 매우 큰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표시했다”며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나는 오랜 기간 준비해 온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정상회담 취소 의사를 나타냈다.


이어 “정상회담 개최가 중단되는 것은 전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겠으나 양측 모두를 위해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당신이 마음을 바꿔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를 걸거나 서한을 보내주길 바란다”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전 세계는 그리고 특히 북한은 영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한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이번에 놓친 기회는 역사에 매우 슬픈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정상회담 취소로 북한만 손해 볼 것이란 입장을 견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서한을 공개함에 따라, 결국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99.9%로 점쳤던 청와대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여지를 남겼거니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저격하며 ‘회담을 재고려하겠다’던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통해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언급하면서 미북 정상회담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당초 예정일이었던 6월 12일에 정상회담이 재추진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미 양국 간 신뢰에 금이 간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취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재추진을 하더라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각)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북한이 보인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역사적 정상회담을 취소케 한 최선희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날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데에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펜스 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각)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의 핵협상이 실패할 경우 북한은 리비아 같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데 대해, 최선희는 지난 24일 조선중앙통신 담화에서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를 고작해서 얼마 되지 않는 설비들이나 차려놓고 만지작거리던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펜스 부통령)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최선희는 이어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직후 비공개 컨퍼런스콜(전화회담) 브리핑에서 “어젯밤 펜스 부통령을 지목해 공격하는 내용의 성명이 도착했는데, 미국을 위협하고 미국과 회담장에서 만나든지 핵 대결을 하자는 내용이었다”며 “펜스 부통령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정상회담을 취소하게끔 했다”고 꼬집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 내 주류 세력이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그가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등 트럼프 당선의 공신이라 할 수 있는데, 회담을 앞두고 북한 차관급 인사가 이런 펜스 부통령을 저격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에서 밝혔듯 백악관이 큰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2016년 6월 22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왼쪽)이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26차 동북아 협력회의장에 도착, 쑤거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의 얘기를 듣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 참가국이 모두 참가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北…불쾌감 내비친 트럼프


두 번째 은밀한 방북에서 대체 무슨 일이?


과거의 틀 벗어나지 못하는 北의 태도


두 번째로는 북한이 약속을 어기는 등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백악관 관계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9일 방북했을 당시 양측은 지난주에 싱가포르에서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을 하기로 했었는데, 북한은 아무 말도 없이 나타나지 않아 우리를 바람 맞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에 수많은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면서 “이 같은 대화 중단은 심각한 신뢰 부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보수정당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결국 화를 불러온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도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북한의 태도는 트럼프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불신, 진실성을 의심케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펜스 미 부통령 인터뷰에 대한 최선희 외무부상의 발언이 직접 화근이 되었다고 판단하지만, 실질적으로 싱가포르 회담 준비에 북한의 무성의 한 태도가 더 큰 불씨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펜스 부통령의 팍스TV 인터뷰도 23일 새벽 한미 정상회담 전의 내용으로 최선희 부상의 직격탄은 트럼프로서는 존 볼턴까지는 인내가 가능했지만, 자신의 러닝메이트인 펜스 부통령에 대한 비판까지는 인내하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한다”고 판단했다.


은밀한 만남 뒤에 태도 돌변한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데에는 공개적으로 밝혀진 이 두 가지 외에도 중국이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세계적인 ‘포커플레이어(속내를 감추는 승부사)’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시진핑과 (북한)김정은의 두 차례 만남이 이번 정상회담 무산에 결정적 단초가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중국에 조금 실망했다. 왜냐하면 김정은이 두 번째로 시진핑 주석을 만난 뒤 태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며 “김정은이 두 번째 방중을 하고 난 뒤 차이가 생겼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김정은의 첫 번째 방중은 누구나 다 알았지만 두 번째는 깜짝 놀랐다”면서 “그 만남 뒤에 상황이 바뀌었는데, 그러니 내가 기분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불쾌감을 내비쳤다.


김정은은 지난 3월 25∼28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북중 정상회담을 한데 이어, 지난 7~8일 비공개로 시 주석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은밀하게 만난 뒤부터 태도가 변했다는 입장이다.


즉, 김정은의 배후에 시 주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


지난 9일 북한 노동신문은 7일부터 8일까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에게 회유 당한 김정은?


이에 따라 시 주석이 김정은을 만나 회유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언급한 정치권 관계자는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비핵화 일괄타결로 미국과 북한이 수교라도 맺게 되면 북한은 친중에서 친미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차이나 패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상황에 북한이 친미로 노선을 바꾸면 남·북·미·일 공조로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우려한 시 주석이 김정은 불러 정상회담을 했고, 40여일 만에 다시 만나 회유를 하는 등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나름 약속한 게 있을 것”이라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그저 장밋빛 낙관론으로 일관하며 정세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를 향해 쓴 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미북 정상회담이 무산된데 대해)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의 책임도 적지 않다”며 “패싱을 우려한 중국을 간과한 것도 그렇고, 돌이켜 보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김정은의 만남에 불쾌감을 드러냈으며 회담이 안 열릴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까지 했는데,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냉철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낙관론으로 일관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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