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K법률사무소 한태원 변호사

[스페셜경제=한태원 변호사]최근 미투 운동(#Me Too)에 동참해 성폭력 피해사실을 호소한 피해여성들이 가해자로부터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를 당하여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킬 만한 사실이라면, 비록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법률규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법률규정이 범죄피해자로 하여금 범죄사실의 폭로를 주저하게 하거나, 피해자가 이를 폭로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까지 감수하게 하는 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법률규정만으로 어떠한 표현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고, 사실의 적시행위는 대개 잘못된 행위를 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수반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바, 위 법률규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자유로운 토론이나 건전한 비판마저 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의 위헌소원 사건에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려는 ‘비방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판할 목적’과 충분히 구별될 수 있으며,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적용 가능성이 있는 불명확한 개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는바, 헌법재판소는 비방할 목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할 수 있는 표현에 대하여 명예훼손죄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 대체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문제를 제시하고 비판하려는 목적이 있음과 동시에, 잘못된 행위를 한 행위자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의 목적도 함께 수반되는 경우가 많은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서 ‘비방할 목적’과 ‘비판할 목적’의 구별이 애매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특히 비난가능성이 높은 행위일수록 사실의 공개로 인한 공공의 이익과 피해자의 명예에 대한 비난의 의도가 동시에 커지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게 되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인식에 따라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는 2001년 이후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기본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회원국들에게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는바, 우리나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관하여 이를 형사범죄로 규정하기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하여 징역형까지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규정은 폐지하거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함이 마땅하다.


나아가, 진실한 사실 중에서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하여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사실에 대한 적시행위를 예외적으로 형사적으로 규율하는 법제의 도입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함과 동시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라는 세계적 흐름에도 발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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