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코스프레 여당…바른미래당 “安, 최대 피해자”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시쳇말로 ‘이불킥’이라는 단어가 있다. 과거의 창피했던 기억이 마음 깊숙이 남아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마다 떠올라 이불을 차게 된다는 얘기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이 이불킥을 한다면 아마 이 발언 때문이지 않을까. “제가 갑철수 입니까 안철수 입니까”, “제가 MB아바타 입니까?”


제19대 대선에서 안철수는 패했지만 MB아바타는 살아남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작년 대선토론회에서 MB아바타는 공전의 대 히트 유행어가 됐다. 당시는 작년 4월로 1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안철수와 그의 정적들이 벌이는 설전에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키워드로 쓰이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심지어 민간에서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이요, 신입생 환영회, 대학MT, 산악회모임, 미팅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음 보증수표 개인기’로 활용되기도 했을 정도라 하니 안 위원장에게는 가히 잠 못 이룰 흑역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됐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연루 의혹이 번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 조명되면서 부터다. 안 위원장의 ‘MB아바타 발언’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의 세력이 근거없는 비방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니 자제시켜달라고 요청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이 당시 여론에 우스꽝스럽게 비춰졌던 이유 중 하나는 대선 과정에 댓글조작 세력이 개입했을 것이란 의심 자체가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됐던 분위기가 컷던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댓글조작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물론 ‘갑철수’, ‘MB 아바타’ 등의 핵심키워드가 드루킹(49. 본명 김동원)의 작품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안 위원장에게 MB 아바타는 흑역사가 아닌 무기로 돌아왔다. 서울시장에 도전하고 있고 차기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안 위원장의 입장에서 정권 대항마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기회로 전환된 것이다.


MB아바타 이불킥 安, 김경수 향하는 安의 분노


민주VS바른 서울시장戰 19대 대선 리벤지 매치?


지난 19일 <중앙일보>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강연하던 1월13일 외부 소개용으로 만든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경공모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37%까지 올랐을 때 5일간 ‘안철수는 MB 아바타’라는 대대적인 네거티브 공격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작년 4월 11~13일 실시) 한국갤럽의 대선 다자대결 여론조사를 보면 안 위원장은 37%를 기록했고 당시 1위인 문재인 후보와는 3%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안 위원장의 지지율은 이후 하락세를 나타냈는데 이는 ‘MB 아바타론’이 유효타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공모는 자신들의 온라인 활동이 보수진영 댓글부대 공격에 대응한 것이었으며 2016년 9월부터 (통상) 일일 기사 대응 300~400건가량, 대선 기간에는 일일 700건 이상의 기사에 대응한 것으로 밝혔다.



안철수만 이상해보였던 대선토론 ‘반전주의’


안 위원장은 지난해 4월 23일 KBS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당시 문 후보를 향해 “민주당에서 저를 ‘갑철수’라고 퍼트리라고 한 문건이 있다”며 “문 후보가 제 질문(내가 갑철수냐 안철수냐)에 즉답을 안했는데, 이번 선거에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해명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님,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질문을 살짝 바꿔 재차 물었다.


문 후보는 ‘갑철수’ 발언을 뜬금없다는 듯 받았으며 MB 아바타 질문에 대해서도 “항간에 그런 말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안 위원장은 “문 후보님 생각”이라고 했고 문 후보는 “그게 제 생각이다. 제 입에 올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자꾸 떠도는 이야기 가지고 (말) 하니까”라고 질문을 또다시 흘렸다.


안 위원장은 멈추지 않고 화제를 마무리하려는 문 후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MB 아바타 질문을 두어 차례 더 했으며 2012년 비공개 독대를 거론하면서 “민주당에서 저를 MB 아바타로 소문을 유포했다. 막아줬으면 좋겠다라고 그렇게 부탁드린 적도 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아니다. 저는 2012년에 MB 아바타라고 들은 적 없다”고 답했으며. “안 후보님. 이런 저런 SNS 공격 받는 것 말하는 모양인데, SNS상의 악의적 공격은 제가 여기 계신 후보님들 모두 다 합친 거 보다 더 많다”고 했다.


이 방송 이후 안 위원장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거론될 때면, 정치인은 물론 종편논객들까지 ‘MB 아바타의 여운이 너무 강해서’라는 식으로 비꼬았을 정도로 안 위원장의 이미지 타격은 심대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안 위원장에게 대응하는 문 대통령을 안 위원장이 칭얼거리듯이 매달리는 모양새라는 평가가 많았다. 토론회 이후 안 대표 스스로도 “제가 말은 잘 못합니다”라고 했다. 관련기사에는 ‘하라는 정책 얘기는 안 하고…’ 라는 식의 핀잔 섞인 댓글들도 줄을 이었다.


토론회에 함께 참여했던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이게 지금 초등학생들의 감정싸움인지 대통령 후보 토론인지 알 길이 없다. 안타깝다”고 개탄하기까지 했다.


대선토론회에서 ‘MB 아바타’는 일종의 촌극 대명사로써 부상했고 여론은 안 위원장을 근거 없는 비방론에 발끈해 문 후보에게 따진 어린아이 같은 이미지로 인식했다.



‘MB 아바타’ 치명적인 약점에서 최상의 공격무기로


그러나 드루킹 사건은 모든 것을 한번에 뒤집어 놓았다. 근거 없는 주장은 근거 있는 주장이 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드루킹의 존재를 알았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면서 토론회 당시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 문 대통령의 입장을 음모론적 성격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18일 “지난 대선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 그리고 집권 이후 대통령이 되신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께서는 이 ‘드루킹 게이트’에 대해서 정말 몰랐는지 오늘 당장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안 위원장에게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안 위원장이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인사라는 점을 볼 때 ‘정권의 대항마’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 중 하나가 국정원 댓글조작 연루인 만큼 문재인 정부는 드루킹 사건을 순탄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면 자신들이 적폐로 규정한 보수10년 정권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프레임에 갇힐 위험이 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문재인정권은 내개남적 정권이다. 내가 댓글조작하면 개혁이고 남이 댓글 조작하면 적폐”라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이 민주당과 한국당을 싸잡아 거대 기득권 양당으로 규정하고 중도지대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과 한국당이 ‘댓글 조작’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이게 되면 차기 대권은 물론 당장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에서도 명분적인 이득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바른미래당과 안 위원장은 댓글조작 규탄대회를 열기도 하고, 권은희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댓글조작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네이버에 항의 방문을 하는 등 드루킹 사건 및 ‘MB 아바타’를 내세워 민주당을 맹공하고 있다.


우선 바른미래당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드루킹-김경수 게이트’로 명명하고 국정조사특위와 특별검사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드루킹 사건을 조직적인 국기문란 범죄로 본 것이다.


안 위원장은 19일 “(드루킹 사건 본질은) 결국 민주당에서 사조직을 동원해 여론조작 한 것”, 김동철 원내대표는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 범죄”라고 규정했다.


특히 김동철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MB아바타라는 여론 조작을 자행해 안철수 후보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도록 만들었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자신도 드루킹의 피해자라고 하며 억지변명을 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느냐”고 공세했다.


유승민 공동대표도 “저도 지난 대선 때 후보였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갑철수다’ ‘MB아바타다’라고 하는 것을 보고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 진실이 하나씩 하나씩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나고 있다”며 “이 사건의 최대피해자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위원장”이라고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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