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새롬 기자]패션업계에서 ‘욱일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역사의식 부재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프랑스의 한 명품 브랜드가 중국에서 진행한 패션쇼에서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선보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특히 이번 사안이 더 크게 불거진 것은 이전에도 이 같은 문제가 여러차례 반복됐음에도 ‘패션업계’ 내부적으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욱일기를 안일하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 온 것이다. 이로 인해서 패션업계가 자체적으로 욱일기의 의미에 대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패션업계의 욱일기 논란에 대해 짚어보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의 상징… 무지인가, 모르쇠인가?


일장기의 붉은 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것이 합쳐져 만들어진 욱일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사용한 일본군의 군기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된 이 깃발은 갈고리 십자가 형상을 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일한 ‘전범’의 상징이다.


그러나 독일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법적으로 금기한 것과 달리 일본은 1954년 이후 육·해군 자위대 창설과 동시에 욱일기를 군기로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수 일본 기업은 욱일기를 제품 디자인에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등 몰염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문제는 서구권에서는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해외기업을 비롯해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욱일기를 디자인에 차용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패션 브랜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와 SPA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욱일기가 컬렉션에 등장하는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Dior 인스타그램 발췌

‘부채를 모티브로 삼은 것’ 해명


지난달 29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Dior)’은 중국 상하이에서 ‘2018 S/S 오뜨꾸뛰르 컬렉션’을 진행했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 색과 부채를 모티프로 삼은 이 컬렉션은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드레스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됐다.


해당 드레스는 총 두 벌로 처음 등장한 드레스는 상아색 튜브톱에 허리의 붉은 원에서 직선이 방사형으로 퍼지는 형태로 디자인 됐으며 앞과 뒤 동일한 모티프가 사용됐다.


연이어 등장한 드레스는 상아색 퍼프슬리브 톱에 배꼽 위치에 놓인 붉은 원에서 방사 형태의 직선이 드레스 하단까지 퍼지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공개된 이후 거센 논란에 디올의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이번 컬렉션의 컨셉은 ‘레드’였다”며 드레스는 욱일기가 아닌 부채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라 해명했다. 드레스 디자인은 욱일기를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 논란은 더욱 더 증폭됐다. 중국과 한국의 네티즌들은 일본의 침략에 의해 고통 받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국가에서 컬렉션을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처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부 네티즌은 이에 대해 ‘천박한 역사 인식’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다” 황당 해명에 논란만 증폭



줄무늬 패션 된 ‘욱일기’… 일본의 교묘한 마케팅 전략


패션 브랜드의 역사인식 부재(?)


이러한 논란은 비단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생로랑은 지난 2016년 S/S 컬렉션에서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재킷을 내놔 공분을 샀던 바 있다.


당시 상당수의 아시아 국가의 소비자를 비롯해 패션비평가들까지 생로랑의 재킷 디자인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으나 생로랑 측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역시 지난 같은 해 3·1절을 앞두고 욱일기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에어조던’ 시리즈 12번 째 모델을 출시했다. 앞서 2009년 ‘라이징선’이라는 이름으로 욱일기를 모티브로 한 신발을 출시한 뒤 논란에 일말의 대응도 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욱일기를 모티브로 한 신발을 출시했던 것이다.


나이키는 2009년에 이어 에어조던의 출시 논란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비판이 거세지자 출시 열흘 만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함께 지난 2014년 8월에는 스페인의 글로벌 SPA브랜드 ‘자라(ZARA)’가 미국에서 욱일기가 인쇄된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미 한인들의 분노를 샀다.


해당 제품에는 욱일기를 배경으로 동물과 사람이 합성된 그림과 ‘JAPAN’이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이에 재미 한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자라 미국 법인에 강력한 항의가 전달됐고, 자라는 미국판 홈페이지에서 문제의 티셔츠를 판매 중단했다. 그러나 자라 코리아에서도 해당 제품을 판매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내 소비자들 역시 거세게 항의했고, 한국, 중국, 미국에서 모두 판매가 중단됐다.


자라는 앞서 2007년 하켄크로이츠 논란에 휩싸였던 데 이어 2016년에도 ‘다윗의 별’과 비슷한 디자인의 노란별을 티셔츠 디자인에 차용한 바 있다. 이에 유대인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다윗의 별은 유대인들이 나치수용소에서 왼쪽 가슴에 달았던 것으로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라는 이후 해당 제품을 회수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러한 패션업계의 몰지각한 역사인식 속에 피해국가 소비자는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일본의 교묘한 마케팅


패션업계에서 지속적인 욱일기 논란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 세뇌와 더불어 정부와 민간기업 등에서는 공공연하게 욱일기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이 욱일기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해 정확한 의미와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일본 체조 국가대표팀은 런던 올림픽에서 욱일기를 차용한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가하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일본대표팀의 유니폼 역시 욱일기를 차용한 디자인으로 국제적인 공분을 샀다.


일본의 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 역시 지난 2010년에는 욱일기를 차용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판매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가하면 지난 2015년에는 고객 감사제 포스터에서 욱일기가 차용한 게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이와 함께 아사히 맥주의 표지 패키지에 욱일기가 차용되는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는 일본의 유명 만화·애니메이션 ‘원피스’와 ‘진격의 거인’, ‘명탐정 코난’ 등에서도 욱일기가 등장하는 등 일본은 욱일기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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