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고도 이용환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 33기)

[스페셜경제=이용환 변호사]만화, 웹툰계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혹은 인터넷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이라면 작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는 L모 웹툰 플랫폼과 만화가들의 분쟁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해당 플랫폼과 작가간 맺어진 웹툰 연재 계약서상 조항에 작가의 원고 마감이 늦어질 경우에 대한 지연배상금, 즉 작가가 플랫폼 측에 ‘지각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 작가가 이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문제점들도 속속 드러나 L플랫폼의 갑질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이 지각비 논란에 대해 플랫폼 측은 신속하게 해명문을 내놓았다. 유료 결제를 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독자와의 약속을 최선을 다해 지키기 위해 마련한 위약금 성격의 조항이며, 이마저도 없다면 잦은 지각연재 때문에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다는 논조였다.


그러나 위의 해명은 작가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왔다. 만화 자체의 작화 퀄리티와 재미의 상승을 위해서는 연재기간동안 수회의 마감지연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지각비조항은 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지각을 빌미로 수익을 가로채려는 플랫폼 측의 분명한 갑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논란을 시작으로 그간 있었던 플랫폼 운영진의 업무태도, 또 다른 부당대우 등 작가의 고발이 이어지면서, 일부 사안은 법정공방까지 퍼지는 등 분쟁해결에는 좀 더 긴 시간을 요할 듯 보여진다.


결국 플랫폼(연재처)과 작가간 계약서에서 모든 논란이 시작된 셈이며, 특히 이번 사건의 L플랫폼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국내 최대수준의 거대 플랫폼이라 더욱 반향이 큰 점도 있다.


혹자는 이러한 독소조항을 보고도 연재 및 출판계약에 동의한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창작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은 만화·웹툰의 창작만으로 고정적 수입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작가와 독자를 이어줄 연재 플랫폼, 그중에서도 유료 수익모델을 구성해 작가에게 수익을 지급할 수 있는 플랫폼이 절실하다.


즉, 연재계약을 위한 플랫폼과의 협상테이블에서부터 이미 작가는 을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보편적이며, 전업 창작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서상에 어떤 조항이 있더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계약당시에는 사회경험이 적은 초년생작가들이 계약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도 한몫한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료를 받아야 적정한 수준인지, 수익배분은 어떠한지, 저작권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를 악용하려는 플랫폼이 있다면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표준계약서의 존재이다. 플랫폼이 다양한 독소조항과 면책조항을 최대한 많이 삽입하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작가가 자세한 법률을 잘 모르더라도 제시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가 있다면 상호간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고, 지적 약자인 작가도 어느 정도 적정 기준을 알고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플랫폼운영진으로서도 작가란 사업의 유지를 위한 중요한 사업동반자인 만큼, 거래관계의 신뢰성확보를 위해서라도 표준계약서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업초반 인지도가 낮아 작가와의 입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스타트업 플랫폼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번 사상 초유의 플랫폼-작가간 분쟁사태의 면밀한 실태조사를 위해,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조사단이 출범하여 조사 후 정책제안 보고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현행 만화/웹툰 관련 표준계약서만으로는 업계의 관계자들의 권리보호가 어렵다는 말이 있는바, 사후 작성될 보고서에도 표준계약서에 대한 제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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