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철강→반도체·자동차 확대 조짐…韓 경제 직격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풀어달라고 하거나, 한정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접견 당시 우리 기업이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등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각국 정상급 인사와의 회담을 통해 경제관계 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실상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등에 이어 철강까지도 제재조치에 나서면서 전방위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정치권 일각에선 동맹국인 미국을 홀대하고 친북·친중으로 치우친 문재인 정부의 쏠림 외교가 낳은 나비효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통상압박에 대해 살펴봤다.


靑, 정상외교 성과 자화자찬 홍보


트럼프 행정부의 동시다발적 압박


청와대 고민정 부대변인은 지난 1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면담(지난 8일)에서 한국산 세탁기 내려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고 부대변인은 이를 두고 “청와대 참모들도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던 내용으로 문 대통령은 직접 경제문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한정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접견 당시 우리 기업이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약 11조 20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지난 1991년 수교 이래 처음으로 발트 3국과의 정상외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올해 안에 한-발트3국 경제공동위원회 출범 및 실질적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회담을 통해 경제관계 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에게 세이프가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은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회담 다음날이었던 지난 9일 언론을 통해 이미 전해진 터였다.


즉,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에게 세이프가드 해제를 요청했다는 소식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다른 정상외교 성과를 덧붙이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경제문제를 챙기고 있다는 대목에 방점을 찍는 등 문 대통령의 치적 홍보에 주력했다.


주요 우방국 중 한국만 철강제재


하지만 청와대의 자화자찬성 홍보는 미국의 전 방위적 통상압박이 거세지자 문 대통령이 경제에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 시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과 패널에 세이프가드를 발동한데 이어 지난 16일(현지시각)에는 미국 상무부가 철강 수입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 상무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역확장법 제232조 관련 철강 수입 안보 영향조사 결과와 이에 따른 3가지 권고안을 제시했는데, 무역확장법 232조는 대통령 직권으로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안보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뒤 수입량을 제한하거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제재조치다.


미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한 권고 1안은 모든 국가의 철강 제품에 일률적으로 최소 24%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것이고, 2안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브라질, 러시아, 터키, 인도, 베트남, 태국, 남아공, 이집트, 말레이시아, 코스타리카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이다.


각 국가를 대상으로 대미 철강 수출액을 지난해 대비 63%로 제한하는 방안(쿼터 설정)이 3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상무부가 제안한 3가지 권고안 가운데 최종안을 오는 4월 11일까지 채택할 예정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산 주요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3가지 권고안 가운데 어느 안이 채택되더라도 국내 철강업계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데, 특히 2안이 채택될 경우 치명타가 될 것이란 우려감이 제기되고 있다.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2안의 12개국에는 대미 철강 수출 1위인 캐나다와 일본(7위), 독일(8위), 대만(9위)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이 제외된 반면, 대미 철강 수출 3위이면서 군사 동맹국인 우리나라가 포함됐다.


다른 동맹·우방국들은 제외된데 반해 유독 한국만 포함된 것이다.


지난해 4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철강제품 수입 제한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자동차 등 통상압력 확대 우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등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바 있다.


이어 미국 기업인 한국GM은 오는 5월까지 전북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크루즈와 올란도 등의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키로 했다.


아울러 이미 한국산 주요 철강제품에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는 판국에 추가 관세를 덧붙이려 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행태에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도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한미 간 안보협력과 통상압력은 별개라는 기조 아래 WTO 제소 등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WTO 제소는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소송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미국이 이행하지 않고 버티면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등 실효적인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세탁기에 이어 TV 등 가전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및 나아가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 제품에 대한 전방위적 통상압박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FTA 체결을 두고 미국은 손해만 본 끔찍한 협정이라며 폐기까지 시사하면서 한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와 자동차 등으로 통상압박을 확대함과 더불어 한미FTA를 폐기하는 수순을 밝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가정용세탁기와 태양광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하는 결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례적인 새해 인사…조공국가 비판도


선뜻 추진키 어려운 남북정상회담<왜>


文 정부의 쏠림 외교가 낳은 나비효과?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는데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군사동맹국인 미국을 홀대하고 친북·친중으로 치우친 문재인 정권의 쏠림 외교가 낳은 나비효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원내대변인은 지난 19일 논평을 통해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제지고 있다”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한국 기계부품 최대 45% 관세 부과 ▶세탁기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TV에 대한 보복관세 예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미 수출품에 대한 제재 검토 ▶한국 GM 철수 문제에 이어 이번엔 철강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의 원인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며 “친북·친중으로 치우친 대한민국의 쏠림 외교가 낳은 나비효과인 것을 국민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우려감을 나타냈다.


이어 “최근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고용 상황이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유독 한국만 나빠지고 있다”면서 “최저임금, 부동산 문제 등 실물경제가 악화일로에 있는데, 대외 경제 환경까지 최악으로 간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파탄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국가적 난제가 가득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대통령 전용기 도입을 운운하고, 국가대표 어머니도 못 들어간 통제구역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특혜 응원을 펼치는 등 국민 눈살을 찌푸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정부와 여당이 지금처럼 나라를 곤경에 빠뜨려 놓고 위세나 부린다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미 간 경제마찰…더 신경 써야할 대상은 중국 아닌 미국”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정치권 일각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청와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일 뿐 친중·친북으로 쏠려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정부의 외교·안보 사안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설 명절을 맞아 지난 15일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민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미 간 포괄동맹에는 금이 갈 조짐이 보이는 마당에 아무리 우호적인 한중관계라 해도 중국 중앙방송에 나와 ‘따자하오’라고 중국 국민들에게 설날 인사를 한 부분은 높게 평가 받을 만 하다”면서도 “그러나 인사를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사드보복에 찍소리 한 번 못하고, 기자들은 (지난해 12월 방중 당시 중국 측 경호원들로부터)구둣발에 차이고, 대통령은 혼밥이나 하는 그런 굴욕을 당하면서도 대통령이 나서서 나라를 조공국가로 되돌리는 이런 행태를 보이는 부분은 국민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주길 바란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북미 간 북핵 갈등과 한미 간 경제마찰에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야할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무술년 설날을 맞아 설인사를 하고 있다.

‘외교의 묘’ 짜내야 할 시점


북한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자신의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파견해 문 대통령의 방북 요청을 제안하면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던 찰나,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의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해 국내외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아직 시기상조임을 내비쳤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미국과 북한 간의 실효성 있는 대화가 우선돼야 하는데, 아직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최근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대화와 함께 최대 압박 제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결국 미국의 대화 언급은 출구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즉, 북한은 남북대화를 바탕으로 북미 간 대화를 시도했는데 이를 미국이 거절했다는 식으로 향후 미국 탓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기존 입장대로 최대 압박 제재를 지속하면서 탐색전 성격의 대화에는 나설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차원이라는 것.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전에 탐색전 성격의 북미 간 대화의 장이 마련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북한이 핵·미사일 폐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실효성 있는 북미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 양국 간 대화 중재자로 나선 우리 정부를 겨냥한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압박이 더해지다 보니, 문 대통령 입장에선 김정은에게 방북 요청을 받았음에도 선뜻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어려워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2일을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못하고 있고, 미국의 통상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이에 반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1시간 16분 가량 통화를 하며 미·일 공조를 돈독히 했고, 철강 제재 국가에서도 제외되는 등 실리를 취하고 있다.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우리 정부가 친중·친북 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쏠림 외교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북한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하는 외교의 묘를 쥐어짜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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