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없던 것 보여주겠다’더니…北 응원단의 노림수

지난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가 열린 강릉 관동 하키센터에서 북한 응원단이 가면을 쓰고 응원하고 있다.(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기존에 없던 것을 보여 주겠다’더니. 그 예고를 실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일까. 아니면 논란이 일줄 알면서도 남남갈등을 목적으로 일부러 그런 것일까. 것도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이른바 ‘간’을 본 것일까.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특사로 파견된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오찬 소식과 함께 ‘김일성 가면’ 논란이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10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첫 경기가 열린 강릉 관동 하키센터. 남북 단일팀과 스위스와의 첫 경기가 열리기 직전, 북한 응원단은 우리 측에도 잘 알려진 노래 ‘휘파람’을 부르며 가면을 얼굴에 갖다 댔다.


북한 응원단이 응원도구로 활용한 가면은 마치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했다.


당연히 인터넷상에선 난리가 났고,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즉각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한다”며 “한국 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김일성 가면을 감히 쓸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 김일성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듯한 가면을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기로 한 남북 단일팀 경기에 버젓이 응원도구로 활용하다보니 이러한 비판이 나온 것이다.


정부여당 “김일성 사진에 구멍? 있을 수 없는 일”


이에 통일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현장 북측 관계자 확인 결과 (김일성 가면이라는)그런 의미는 전혀 없고, 북측이 그런 식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며 “(해당 가면은)북측에서 미남 가면으로 불리며, 북측 가요 휘파람을 노래할 때 남자 역할 대용으로 사용되는 가면으로 우리나라 탈춤 가면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통일부의 이러한 해명에 당초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CBS 노컷뉴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사과문을 냈다.


다음날인 11일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통일부를 거들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통일부가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는 것을 북한응원단에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는데도, 야당 의원과 일부 언론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여전히 볼썽사나운 트집 잡기와 색깔론으로 응수하는 야당의 행태는 옥에 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응원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와 문화를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강조했다.


청와대 역시 “북한 문화상 있을 수 없는 행위”라며 “김일성 주석의 사진에 구멍을 뚫고 훼손한다는 건 북한 문화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고 했다.


보수야당 “누가 봐도 김일성…민주당 디지털대변인 적반하장 뻔뻔”


정부여당은 한 목소리로 김일성 가면이 아니라고 했지만, 보수 야권은 한 목소리로 반발 했다.


김일성 가면 논란에 불씨를 당긴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일부 발표처럼 미남의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미남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며 “북한에서 최고 미남의 기준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라며 해당 가면이 김일성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김일성을 연상케 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예 김일성 가면으로 규정하고 통일부가 북한을 대변했다고 직격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김일성가면 등장 보도가 나가자 통일부가 나서서 북한을 대변했다”면서 “통일부는 김일성가면 기사는 억측이며 북한 미남배우 얼굴이라는 북한 측 설명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는데, 참 한심하다”고 질타했다.


이어 “누가 봐도 김일성 얼굴인데 통일부 눈에만 달리 보이는 것이냐”며 “어차피 저들에게 최고 미남은 김일성”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전 대변인은 김일성 가면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민주당 김빈 디지털대변인이 김일성 가면 기사를 보도한 기자들에게 ‘기사를 당장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한 뒤 회신 메일을 보내길 바란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서도 “언론인들도 이번 기회에 문재인 정부의 실상을 바로보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 대변인은 “당장 기사제목 바꾸라고 압력에, 가짜뉴스라는 매도에, 책임운운에 이어 적반하장으로 사과요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며 “뻔뻔하지 않느냐, 이게 정부와 언론의 정상적 관계이며 그동안 입만 열면 보수정권의 언론장악 운운했던 사람들의 모습이냐”고 일갈했다.


국민의당도 김빈 디지털대변인을 정조준 했다.


김세환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등장한 북한의 김일성 가면 응원은 국민과 언론의 우려 섞인 대중적 여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북한 측의 사실해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김일성을 연상 시키게 하고 다수의 언론에서 같은 인식을 가지게 했다면 분명 북한의 선전, 선동이 일정부분 성공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대변인도 아닌 민주당 디지털 대변인 등이 나서는 모양새는 국민들의 의혹과 우려를 풀어주기는커녕 문재인 정부의 거수기 정당을 자처하고, 우리국민과 언론마저 무시하는 처사”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처럼 북한 응원단의 가면 응원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부여당과 보수야당의 대립 등 남남갈등 논란을 낳기에 충분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北 최고 존엄 외 다른 사람 우상화 가능?…김일성은 아닌데 김일성 떠올라


일부 북한 전문가들이나 탈북자들은 정부여당 논리에 궤를 같이한다.


북한에선 최고 존엄인 김일성의 사진이나 그림을 조금만 훼손해도 즉결 처형 대상이 되기 때문에 가면에 구멍을 뚫고 응원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북한 공연이나 응원에서 이 같은 미남 가면을 활용해 응원한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북한 응원단은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에 그들이 예고한대로 기존에 없었던 미남 가면 응원을 펼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미남 가면이 비록 김일성은 아닐지라도 보는 이에 따라 마치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하는 선전 목적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김일성 주석의 얼굴을 응원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와 문화를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와 문화를 감안하면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여겨지는 김일성 일가 외에 다른 남자의 가면을 응원 도구로 이용하는 것 또한 가당키나 한 것일까.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해당 가면의 주인공이 김일성이 아니라면 북한 응원단은 다른 사람을 우상화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북한 응원단이 활용한 미남 가면의 주인공이 김일성이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국민들이 그 가면을 보고 김일성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면, 또 이로 인해 남남갈등이 초래됐다면 이를 의도한 북한의 노림수가 통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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